미군장갑차에 깔려죽은 두 여중생의 넋을 기리며

2002.07.05 | 군기지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의정부 미2사단 캠프 레드 클라우드 앞에서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 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녹색연합도 참가단체, 이하 범대위)의 주최로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양 살인사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제3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녹색연합 회원 10여명을 포함하여 종교단체, 노조, 여성단체, 학생, 정당, 네티즌, 붉은악마 회원 등 6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였다.



지난 6월 13일 전국이 월드컵의 열기에 휩싸여있을 때,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56번 지방도에서 갓길을 걷던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조양중 2년, 14세)양 두 명이 미2사단 44공병대 소속 미군전차(운전사 워커 마크 병장, 36세)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하였다. 거의 모든 언론이 단신으로 처리한 사건이었다. 미군은 발빠르게 형식적인 사과를 하며, 이 사건을 월드컵 열기 속에서 그냥 묻혀버리고자 하였다. 그들의 이런 의도는 원래 약속되었던, 유족과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간담회에서 시민단체들을 배제하는데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미군은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상황 상 어쩔 수 없었다. 규정대로 운행했다.”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그 조사내용은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선임탑승자와 운전병 사이의 무전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항에 대한 미군의 발표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미군은 6월 19일에는 장갑차량의 소음으로 인해 선임 탑승자가 피해자들을 발견하고 경고했으나  운전병이 듣지 못했다고 발표했다가 7월 2일에는 사고 당시 운전병이 중대장과 교신을 하고 있어 선임 탑승자의 경고를 듣지 못했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미군과 함께 생활했던 카투사 출신들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소음이나 무전 혼선 때문에 운전병과 선임탑승자가 교신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한다. 장갑차 운전병과 선임탑승자는 헬멧을 착용하고 그에 장착된 장치로 수시로 무전교신하면서 도로상황을 파악하여야 한다. 또 부대간, 차량간 무선교신은 주파수를 달리하기 때문에 무전이 혼선되어 교신할 수 없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운전병은 선임탑승자와 교신하며 그의 지휘에 따라야 할 뿐 다른 차량간, 부대간 무전교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7월5일자 한겨레신문에서는 기갑부대 출신들은 “운전병이 중대장과 직접 교신했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며, “설사 운전병이 외부와 통화중이었다해도 선임 탑승자가 교신 내용을 함께 들을 수 있고 중간에 자신의 의사도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장갑차 운행 전에 필수적으로 확인해야하는 탑승자 간 통신장비 이상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운행하였거나, 운전병이 규정에 위반하여 헬멧을 벗고 있어서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둘째, 미군 장갑차가 정말로 저속 운행을 했는지 여부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미군이 밝힌 사고 당시 차량의 속도는 시속 8~16km 이다. 이 속도로 주행 중 운전병은 선임탑승자의 세 번째 경고를 듣고 급히 제동을 걸었지만, 차량의 중량과 속도로 일정거리를 앞으로 이동하여 피해자들과 부딪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의 미군이 훈련 때마다 과속운전(평균 시속 40∼50km로 운행)을 해왔다는 증언, 사고 1시간여 전에도 사고 지점에서 100여m 떨어진 주유소 앞에서 미군 차량이 50km로 과속 운행하다가 사고를 낼 뻔한 일이 있었던 점과 사고 운전병이 사고 발생 직후 현장목격자인 홍기식씨에게 “오르막이라 속도를 냈다”고 말했던 점 등은 최소한 시속 30-40㎞이상 속도를 내었을 의혹을 갖게 한다.

이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이 사건을 단순 사고로 처리하고자 했으며, 실질적 책임을 회피하려 했었다. 심지어 지난 6월 28일에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미2사단 공보실장이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해 ‘어느 누구도 과실이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미2사단 공보실장의 이 발언은 즉시 네티즌의 분노를 가져왔고,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넷 게시판을 비롯하여, 관련 게시판에 항의의 글들이 쏟아져 올라왔다.
시민들의 이런 분노는 문제 해결을 위한 자발적 참여로 나타났다. 일례로 터키와의 3,4위전이 있던 날 광화문에서 붉은악마 회원들을 상대로 검은 리본 달기 운동을 추진했으며, 이 사건 내용을 영문으로 번역해 해외 사이트에 올리려는 준비도 진행 중에 있다.
이런 움직임 속에 7월 4일 집회에서, 교복을 입고 집회에 참여한 여고생은 마이크를 잡고 ‘미군이 우리한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해요’라고 수줍게 말하기도 했으며, 김장훈(가수)씨도 집회에 참여하였다. 김장훈씨는 발언 요구에 쑥스러운 듯 응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직접 쓴 위로 편지와 위로금을 유가족에게 전달해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러한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 속에 미군의 태도 변화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군은 단순 사고로 무마하려던 이번 사건이 시민들 사이에 분노를 일으키자, 어느 누구도 책임이 없다던 그들의 입장을 바꾸어 7월 3일 운전병과 통제병 2명을 미군 군사법원에 과실치사혐의로 전격 기소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건관련 책임자를 한국 법정에 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을 다분히 의식한 행동인 듯 하다.

시민들의 응원열기가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루었듯,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미군의 태도변화를 일구어냈다. 그러나 히딩크가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고 얘기했듯, 아직 우리가 해결할 일들이 남아있다.

첫째, 지금까지 범죄행위로 기소된 미군이 본토에서 처벌받은 결과를 한국 정부가 통보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미군의 기소와 상관없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형사재판권을 한국정부가 이양해 와야 한다. 참고로 SOFA에 근거하여 한국 법무부 장관이 미군쪽에 형사재판 관할권 포기 요청을 할 수 있는 기일은 11일까지다.

둘째, 우리는 단순한 책임자 처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하여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에 그 목표가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효순이와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에 항의하기 위한 서명운동, 모금운동, 검은리본달기운동, 항의·추모집회 등에 시민들과 시민운동단체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이 길에 녹색연합 회원들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글, 사진/자연생태국 서용선 간사)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범대위 홈페이지 www.antimigun.org 또는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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