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산행 – “한북정맥환경탐사”를 다녀와서

2004.12.01 | 군기지

특별한 산행, 특별하지 않은 준비
지난 토요일 27일 오후, 녹색연합의 <한북정맥환경탐사>에 참가하러 갔다. 일반 등산이 아니라 말 그대로 ‘탐사’이다. 그러나 난 단순한 등산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갔다. 배낭을 꾸리고 침낭과 매트리스를 들었다가 매트리스는 아무래도 번거로워서 그냥 놓고 왔다. 집결지인 광화문과 도봉산 중 나는 도봉산역으로 갔다. 그 곳에서 두 명의 아저씨를 만났다.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간단한 소개를 했다. 아저씨는 “우리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야.”라고 말씀하셨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홈스쿨링을 한다고 하니 운전하시는 아저씨가 “그건 또 뭐냐? 그런 것도 있냐?”고 하시면서 놀라움(!)을 감추시지 못했다.

▲ 한북정맥 6차 조사 처음부터 나타나는 군기지

오후 5시경, 우리는 야영장에 도착하였다. 포천, 가평 근처인 것 같았다. 그런데 광화문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조금은 늦게 와서 다 모이니 모두 열 명 쯤 되었다. 야영 터를 잡은 뒤, 저녁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반찬과 쌀을 꺼내고 버너를 사용해 밥을 지었다. 저녁식사는 다소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버너를 사용하다 보니까 음식이 차례차례 나왔기 때문이다. 날씨가 상당히 추워서 ‘밤에 어떻게 자지?’ 하고 걱정도 했었으나 다들 태평했기에 괜찮겠지 했다.

어느덧 잘 시간이 되어 어떤 분이 물어보셨다. “네 침낭 여름 걸로 솜이던데.”하셨다. “엇!?” 내가 오리털이라고 설명했더니 그 분은 침낭을 잡으며 “아니야, 어머니께서 잘못 아셨어.”하시면서 만져보라고 한 뒤 자신의 진짜 오리털 침낭을 꺼내셨다. 그것을 만져 보니 “와!”틀린 것이 오리털이 잡혔다. 그러나 엄마 것은 그냥 매끌매끌한 솜뿐이었다. ‘헉! 그래도 어떻게든 잘 수 있겠지.’싶었다. (집에 온 후, 내가 침낭을 가져가지 않을까봐 엄마가 날 속인 거라는 걸 알았다. ㅡㅡ;) 자세히 보니 이분들은 환경운동을 하느라 돈벌이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등산 장비는 모두 비싼(?) 장비인 것 같았다. 희안했다. 산에 다니면 장비의 기능이 중요한가 보다.

밤이 깊어 졌고 우리는 텐트에 들어가서 잤다. 생각보다 춥지는 않은 게 텐트가 바람을 막아주어서 그런가 보다.
새벽 6시, 잠에서 깨었다. 보통 때 보다 2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것이다. 벌써 밖에서는 밥을 짓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눈곱을 먼저 떼었다. 주변은 산중이고, 겨울이어서인지 아직은 어두웠다.
우리는 아침밥을 먹고 부랴부랴 짐을 쌌다. 그리고 출발~!하려고 했는데 고속도로 같은 국도에, 도로 중간이 막혀 있어서 건널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차를 타고 건넜고,  건너간 후부터 곧바로 한북 정맥 탐사는 시작되었다!!!

▲ 한북정맥 등산로 조사 중

처음 만난 부대, 또 부대, 또…
한북 정맥 탐사를 시작한지 10여분, 처음으로 본 것은 바로 군 부대였다. 남한의 북쪽이라서 부대가 많다고만 짐작을 했다. 그러나 부대는 아예 길을 막고 있었다. 어떻게 가나 했더니만 옆으로 올라갔다.(-_-;) 나는 선두의 아저씨를 따라서 곧장 올라갔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다른 분들은 참 느릿느릿 올라오고 있었다. 왜 그렇게 늦게 오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손에 들린 기계가 눈에 띠었다. 아저씨는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다. 고도 200m마다 고도, 좌표 등을 적고, 산의 훼손 사항 등을 적었다. ‘아참! 등산이 아니라 탐사였지.’

우리는 계속 부대를 따라가게 되었는데 엄청난 규모였다. 우리의 코스는 부대를 지나가야 했기에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부대 옆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참호, 벙커 등이 자주 발견되었다. 군대에서 쓰는 전화선도 보았다. 아저씨는 “일명 삐삐선.”이라고 하셨다.
대규모의 부대를 지나친 후 아스팔트 도로를 밟았다. 다음 목적지는 ‘수원산’이었다. 해발 700m라고 하는데 가팔라 보였다. 선두 아저씨는 지도를 들고 길을 찾으셨다. 올라가다 보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나타났고 그곳으로 올라가시곤 하셨다.

▲ 등산로 곳곳에 있는 시설물들. 버려진 막사

수원산은 오르기가 참 힘들었다. 무엇보다 산의 경사도가 높았기 때문에 다소 힘든 점이 있었다. 보통 이렇게 힘들게 산을 올라갈 때면 올라간 후의 기쁨을 맛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산은 조금 달랐다. 올라가니 정상에 떡하니 레이더 기지가 버티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옆에서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는데 다른 사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조금 아쉬웠다. 산 정상의 전망을 바라보며 느끼는 통쾌, 상쾌함을 맛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공 잣나무 숲과 창공의 매 그리고 채석장
어느 정도 걸어가니 공터가 나왔다. 군인들이 사용하는 훈련장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안 쓰는지 입김으로도 시설이 부서질 것 같이 낡아보였다. 여기서 누군가가 밥을 먹자고 하였다. 나는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은 배가 고팠는지 많이 먹었다.  

밥을 먹고 계속 걸었는데 능선길이라 경사가 완만하여 가기가 수월했다. 가는 도중에 헬기장을 여러 개 볼 수 있었고 두더지 흔적도 볼 수 있었다.
이즈음에 나의 도전은 시작된 것 같다. 그 도전이란 하산할 때 까지 몇 시간 동안 똥을 참는 것이다.(-_-;)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의문점이 있지만 당시에는 이상하게도 나는 참았던 것 같다. 앞에 가던 아저씨가 큰 것을 해결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로 가시는걸 보면서, ‘대체 나는 왜 참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갔다.

▲ 헬기장

그리고는 잣나무 숲을 지나갔다. 아저씨께서 인공적으로 심어놓은 잣나무들은 숲을 망친다고 하셨다. 그늘 때문에 다른 잡풀들이 자라지 못하며 나중에는 산불로 이어진다고 하셨다. 잣나무로 가려진 곳은 어두워서 밤을 연상케 하였다. 단순히 무조건 숲이 좋은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무위자연! 그냥 내버려 두라.

산 정상 부근에 거대한 송전탑이 있었는데 옆에서는 찌직! 소리가 나기도 했다. 그때,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산 위로 매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엔 까마귀 인 줄 알았는데 날개의 크기와 색깔이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날개가 정말 컸다. 그 매는 우리의 시선을 어느 정도 즐긴 뒤 사라졌다. 우리의 행군도 계속되어 산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 공사 중인 수원산 정상의 군기지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에 채석장을 보았다. 막말로 정말 무식하게도 깎아놓았다. 사람들은 자연을 망치는 것이 자멸하는 지름길인 것을 모르고 막 개발을 해놓았다. 지난 5월 녹색 순례를 할 때 보았던 자병산 한라 시멘트 채석장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이곳도 엄청난 규모였다. 채석장 바로 위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철조망을 넘어서 보았다. 나는 처음 보는 검은색 석탄 같은 돌을 주었다. 그 돌을 만져도 손에 검은 물질은 묻지 않았다. (집에서 엄마에게 보여 드리니 산에 있는 것은 산에 그대로 두는 것이라고 구박을 하셨다)

▲ 한북정맥을 따라 쭉 늘어선 송전탑들

3시 30분 쯤, 우리들은 거의 다 내려왔다. 그곳엔 6.25 참전 용사 기념비가 있었다. 나에게 가장 급한 건 화장실!! 나는 재빨리 휴지를 챙긴 뒤 나를 조급하게 기다리고 있는 푸른색 간이화장실로 뛰어갔다. 순간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냥 산에서 처리할 걸 왜 여기서 처리하고 있는지 후회가 막심했다. 그런데 그 큰 것을 참은 것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 첫 번째는 그것을 참느라 힘든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1~2시간은 참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산도 역사와 함께
이번 탐사에서는 군 부대시설을 가장 많이 본 것 같다. 처음으로 본 것이 부대였고, 그리고 참호와 벙커, 교통로도 있었다. 바로 그런 군 부대시설들이 이번 산행 도중 심심찮게 보았다. 게다가 하산 지점에 있는 ‘6.25 참전 용사 비’까지 말이다. 왜 그렇게 다른 곳에는 흔치 않은 것들이 많을까?
그것은 휴전선에 가까운 곳이기에 그럴까. 이런 군사시설들은 쓸모가 없을뿐더러 환경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뭐 분단이란 것으로 인해 DMZ는 환경보존이 되었다고 하지만 더 파괴되고 오염된 것이 많다. 한국 전쟁이 없었더라면, 또 부대만 없었어도 나무가 베어지지 않고 참호가 없고, 벙커도 없을 것이며, 외국 부대도 없었을 것이며 자연을 더 잘 보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큰넓고개 가기 바로 전 능선 바로 아래 보이는 채석장

나는 이번 탐사로 새롭게 알게 되었다. 환경파괴라는 것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개발로서만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대와 철저한 방어시설, 군 훈련시설은 결코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며 북한과의 전쟁을 위해서 해놓은 것으로 우리 민족의 분단이 가져온 것들이다. 지난 날 빨치산과 토벌대와의 전투도 생각났다. 빨치산을 잡기 위하여 군인들은 산불을 질렀고, 또 많은 파괴를 일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군 문제도 있다. 한강에 독극물 흘리기 라든지, 저번에 녹색 순례에서 본 태백산 미군 폭격장 등도 그렇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된다면 이런 문제들이 조금이나마 해결되지 않을까?

군시설을 많이 봐서인지 나는 산행 중 지난 목요일의 ‘홈스쿨러 공동수업’이 생각났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감상과 ‘아우슈비츠 재판’과 관련한 것이었다. 감상 후 감독님과 대화도 했는데 이것이 떠오른 이유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사람들은 거의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총을 들지 않는 다는 것이 그런 의미일 것 같아서 이다. 평화가 온다면 대립도, 전쟁도 없을 거고, 그렇게 된다면 군 시설로 인한 자연 파괴가 줄어들 것이다. 그런 날이 머지  않아 오리라고 기대한다.

나, 녹색연합 회원
이번 산행은 산행이라는 의미보다 탐사의 의미가 강했다. 200m마다 측정은 예외 없이 진행되었고, 훼손에 관한 것도 기록되었다. 산행이라면 대체로 명산, 절경을 즐긴 나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비록 내가 측정하는 데에 있어서 아무 역할을 맡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배운 것은 있었다. ‘눈으로 배운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함께 한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녹색연합의 환경산행은 월 1회 진행된다고 한다. 다음 탐사때는 일원으로 한 부분 거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_-?) 만약 그렇게 되서 내가 기록한 것들이 유용하게 쓰인다면 매우 뿌듯해질 것 같다.
작년에 새만금에서의 회원 한마당 행사와 백두대간 순례, 지난 달 속리산에서의 회원 한마당 그리고 탐사~. 역시 나는 ‘녹색연합’ 회원 인 듯.! ^0^

글 : 이종건
한북정맥환경탐사에 함께 한 종건이는 녹색연합 회원이며 열다섯의 건장한 청소년이다. 넓은 세상을 모두 학교라고 생각하는 홈스쿨러 종건이에게 녹색연합이 좋은 학교가 되기를.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