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특이하게 남은 서울 마지막 녹지, 이렇게 쓰면 된다

2020.09.13 | 군기지

[용산공원을 상상하다②] 생명의 숲 최승희 선임활동가 인터뷰

용산은 오랫동안 군사기지였던 탓에 ‘금단의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2019년 12월, 용산기지 반환 협상이 시작되면서 오래도록 미뤄졌던 용산기지 공원화에 대한 논의가 이제 막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한 세기 넘게 군사기지였던 땅이 생태역사공원으로 거듭난다고 합니다. 새롭게 들어서는 공원에 우리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요? 깨진 유리 조각 맞추듯 오랫동안 용산이라는 공간에 천착한 사람들을 만나 담장 너머 펼쳐질 공간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역사, 생태, 예술, 환경 분야의 전문가와 활동가를 만나 용산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기자말]

용산기지 공원화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오래된 숙원사업이다. 1980년대 후반, 수도 한복판에 위치한 외국군(미군) 기지를 더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하에 노태우 정권은 미군과 용산기지의 이전 협상을 시작한다. 이전 계획 자체가 백지화되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용산기지 이전은 2020년 현재 평택기지로 미군의 90% 이상이 이동하며 마무리 단계에 있다.

한편 시민사회는 지지부진한 용산기지 이전을 촉구하는 용산기지 반환 운동을 펴는 동시에 용산기지를 뉴욕 센트럴파크와 같이 생태공원화하자는 의견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2007년 용산공원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반환될 용산기지는 ‘제1호 국가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용산기지는 북한산부터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녹지축과 동서수경축인 한강이 만나는 중심에 있다. 국토부가 발표한 용산공원의 중심줄기도 남산-용산-한강으로 이어지는 생태축 연결이다. 용산은 오랫동안 외국군이 주둔한 덕에 모순적으로 서울에서 개발되지 않고 남아있는 마지막 녹지공간이기도 하다. 

대기질 악화와 기후변화로 대도시 서울의 미세먼지와 폭염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대비하여 도시숲은 미세먼지를 줄이고 온도를 낮추어주는 기능이 있지만 서울 시내 생활권 숲의 면적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도시숲으로 조성될 80만 평의 거대한 땅은 대도시 서울의 숨 쉬는 허파가 된다.

용산공원은 남북녹지축과 동서수경축의 중심에 있다 (출처 :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 ⓒ 서울시

한편 용산참사, 용산 마스터플랜으로 대표되는 용산의 재개발 열풍과 초대형 개발계획으로 용산 일대의 땅값은 치솟고 있다. ‘제2의 강남’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용산 일대 부동산 수요와 투기 압력은 굉장하다.

최근 정부의 수도권 주택 공급대책에는 용산기지의 산재부지 중 하나인 캠프킴이 포함되었다. 공공재건축으로 무려 50층의 고밀개발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서울에 주거지도 부족한 마당에 용산공원에 임대주택을 짓자는 댓글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30년 넘게 정부 주도로 계획해온 용산공원은 과연 개발로부터 안전할까?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서울에는 숲이 필요하다. 코로나 시대, 기후위기 시대다. 갈수록 열악해질 도시환경에서 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지켜줄 곳은 숲이 ‘유일’하다고 최승희 생명의숲 활동가는 말한다. 생명의 숲에서 10년간 일하며 도시숲 운동,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활동,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등의 분야에서 활동해온 생명의숲 최승희 선임활동가를 만나 숲의 중요성과 용산공원의 생태적 가치에 대해 물었다.

용산기지의 공원화가 필요한 이유

길동 생태공원 ⓒ 길동 생태공원 홈페이지

– 용산미군기지 자리에 들어서는 용산공원은 ‘생태와 역사가 살아있는 자연공원 조성’을 목표로 생태역사공원이 만들어질 계획이다. ‘생태공원’은 일반적인 도시공원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도시공원과 생태공원은 초기 만들어진 배경과 목적, 법적 지위에서 차이가 있다. 법적으로 정해진 도시공원은 법률에 의해 도시를 만들 때 필수적으로 계획, 설치해야 하는 시설 중 하나로 근린공원, 소공원, 어린이 공원이 이에 속한다. 생태공원은 법적으로 명명되어 있지 않고 해석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는데, 생태계의 복원과 재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기 생태공원은 이용자들에게 자연관찰과 학습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도시 지역에서 생태적 원리에 의해 운영하는 공원을 뜻했다. 서울시는 생태공원을 생물서식공간의 조성으로 생물다양성을 증진하고 시민의 휴식, 생태학습을 목적으로 설치하는 공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생태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보전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지가 반영된 곳이라는 점이다.”

– 서울에 있는 공원 중 참고할만한 생태공원 조성 사례가 있을까?
“서울에는 22곳의 생태공원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성된 생태공원은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1997)이고 두 번째가 길동 생태공원(1999)이다. 길동 생태공원은 생태공원의 목적에 맞게 잘 관리되고 있는 점도 참고할 수 있겠지만, 공원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시민자원활동가들, 길동지기가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이들이 생태학습 프로그램과 모니터링을 운영해 지금까지 20년간 공원을 자발적으로 관리해왔다고 한다. 원래 논이었던 곳을 그대로 습지로 살려서 만들었고, 습지를 따라 나오는 길과 주변의 자연환경이 서울에서 흔히 접하는 도시공원과는 다른 모습이다. 꽤 의미 있는 공간이니 한번 방문해보면 좋겠다.”

– 용산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만큼 개발압력이 높은 곳이다. 모순적이지만 오랫동안 군사기지였기 때문에 서울의 개발 광풍에서 비껴가 현재 대규모로 숲을 조성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아직도 임대아파트를 짓는 등 개발에 대한 요구가 있는데, 서울에 왜 도시숲이 필요할까?
“도시숲은 도시 미기후 조절, 소음 완화, 생물서식처 제공 등 도시 환경을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앞으로 기후위기나 전염병 등 여러 문제로 도시의 환경이 열악해질 텐데 그 속에서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치유, 휴양, 놀이, 교육 등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숲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 미세먼지, 폭염 등 악화되는 도시 환경 속에서 도시숲은 더욱 확대해야 할 공간이다. 

하지만 도시숲, 녹지를 개발유보지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린벨트를 개발해 아파트를 짓는 것이 대표적이다. 도시숲이 가지는 환경적 기능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휴식, 치유, 운동, 교육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생각했을 때 무엇이 우선인지는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판단해야 한다. 생태적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와 평화를 상징하는 곳이자 그 의미를 전달하는 교육공간으로도 용산기지의 공원화는 필요하다.”

– 현재 서울의 녹지 면적은 부족한 편인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1인당 생활권 도시림은 9㎡로 정하고 있고 우리나라 도시공원법에는 6㎡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1인당 생활권녹지면적은 전국 평균 8.32㎡로 WHO권고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서울은 4.35㎡로 파리 13㎡, 뉴욕 23㎡, 런던 27㎡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 녹지 현황(출처 : 서울시 공원녹지 생물다양성 지표개발과 적용방안 2015)
ⓒ 서울연구원

– 용산공원의 큰 개념 중 하나가 남산-용산-한강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생태축의 연결이다. 녹지가 파편화되어있고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된 서울에서 생태축을 연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생명의숲에서 2015년에 후암동 마을숲 가꾸기 프로젝트를 했다. 주민들과 함께 대상지를 정해 남산과 용산공원의 생태축을 잇는 활동을 했는데, 사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플랜터를 넣는다거나 벽걸이형 화분을 만들어서 연결될 수 있는 녹지를 만들었다. 후암동의 길이 좁고 주거지로 꽉 차있다보니 공간이 없어서 이런 식으로 진행을 했다.

서울에서 생태축을 연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도시공원분포현황에서 보면 녹지가 전반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있지 않다. 한 곳에 사는 생물이 다른 녹지로 가기 위해서는 먼 거리를 이동해야하는데 그럴 수 없을뿐더러 징검다리처럼 그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녹지도 부족하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작게라도 플랜트형으로 녹지를 만들거나 옥상녹화, 소공원 등을 통해서 녹지축을 만들어주는 노력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용산공원과 같은 큰 녹지가 생기는 것은 야생동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넓어지는 의미가 있다. 

더 넓고 다양한 생태적 환경이 조성되면 다양한 생물들이 들어올 거고, 도시의 생태 건강성도 높아질 것이다. 도시라는 공간은 자연과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생태적 건강성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파트나 주차장을 짓는 대신 녹지를 선택하고, 학교의 운동장 대신 녹지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면 훨씬 다양한 생명이 살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

남산~용산공원을 연결하는 후암동 마을숲 조성 대상지 ⓒ 생명의숲
벽걸이형 화분으로 후암동 마을숲을 조성했다. ⓒ 생명의숲

– 용산공원이 들어서면 그 주변 사람들만 땅값이 오르고 좋은 전망을 가지는 등 이익을 사유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서울숲이 만들어지면서 그 주변의 땅값과 아파트값이 굉장히 올랐다. 녹지가 주는 혜택 중에는 부동산의 가격을 올리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그 주변의 상승한 지가의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환원하게 하는 정책도 있다. 필요한 정책이라고 본다. 

공원이 가지는 공공적 기능뿐 아니라 시민에게 휴양, 치유, 건강, 교육 공간으로 공원이 주는 순기능은 훨씬 많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고 해서 공원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공원이 주는 다른 효용보다 집값이 올라가는 현상만 주목한다는 점은 안타깝다.”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이 찾는 공간, 공원

만든지 20년이 지난 화랑초등학교 학교숲 ⓒ 생명의숲

– 생명의숲에서는 도시숲 운동 외에도 학교숲, 사회복지숲 활동을 통해 숲의 다양한 기능을 알리고 있다. 공원이 가진 생태적 기능 외에도 사회문화적 기능과 의미는 무엇이 있을까?
“생명의숲은 나무를 심고 가꾸고 보전하는 시민단체다. 학교숲운동은 2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운동이다. 학교에서 학생, 선생님, 학부모가 함께 나무를 심고 가꾸는 활동을 한다. 학교숲은 아이들이 쉬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자연체험학습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아이들과 나무를 그리거나 숲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어떤 생물이 숲에 오는지 관찰일기를 쓰는 등 교육 장소로 활용한다.

사회복지숲 운동은 녹지 공간에 대한 사회적 격차를 줄이고자 시작되었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살거나,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숲에 가기에 제약이 많다. 시설 내에 숲을 함께 만들어서 그곳에서 쉬기도 하고 관찰, 체험활동을 한다. 나무에 잎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 주제가 되는 등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인다. 

이처럼 공원이 갖는 사회문화적 의미는 주로 공원을 이용하는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용산공원을 통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지는 공간의 특성에 맞게 앞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 코로나 시대에 도심속 녹지, 공원의 중요성이 높아질 것 같은데.
“코로나 시대에는 지역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 예전에는 멀리 있는 설악산도 가고 싶을 때 갔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심리적 불안감 때문에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도시공원과 생활권 공원의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실내에서 하던 활동들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이지만 야외에서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여건이지 않나. 사회활동이 위축되면서 사람들이 점점 우울해지기 때문에 뭐라도 가꾸고 바라보는 활동이 필요하다.

이번에 나온 구글 이동성 보고서나 국내외 공원 이용 조사, 인터뷰를 보면 코로나가 본격화된 시기에 사람들의 야외활동과 공원 이용률이 급격히 늘었다. 이처럼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은 공원이지 않을까. 생태성을 회복할 수 있는 자연의 공간이 더 소중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글 : 녹색연합 이다예 정책팀 활동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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