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과 환경운동

2006.08.09 | 군기지

특별히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작품이라 개봉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 것이 사실이다. 물론 내가 잘 아는 사건이 영화의 소재 또는 영감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더욱이 관심을 끌만했다. 개봉하자마자 녹색연합 활동가들과 영화를 보았다. 은근히 시사회 초대장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역시 돈 주고 마음에 드는 영화를, 그것도 우리 한국영화를 보는 것은 큰 보람이고 즐거움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사건이 영화 첫 영상으로 시작되니 지나 온 미군기지 환경오염감시운동의 역사가 시나브로 쌓이더니 모든 것이 현실인양 긴장하고 있었다. 괴물의 출현에 몇 번이고 얼굴을 감싸고 소스라쳐 놀라기도 하다 급기야 딸 현서가 괴물에 희생되는 순간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흰눈이 곱게 내리는 한강변 작은 콘테이너 안에 일상으로 돌아 온 ‘가족’을 보고서야 긴장이 풀렸다. 아! 한편의 만화를 나의 오감이 충만하게 잘 본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기를 기대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보았으면 좋겠다. 권력은 국민이 진실이라 믿는 것을 너무나 먼 거리에서 외면하고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권력을 앞세워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구속하는 것을 보고 느꼈으면 한다. 주인공 강두는 “노 바이러스, 바이러스는 없어”라고 외친다. 아무리 그들이 그들만이 아는 현란한 언어와 첨단기술을 들이대며 진실을 숨기고 국민의 눈귀를 막아도 강두는 ‘노 바이러스’라는 진실을 들었다. 그러나 권력은 생명이 위기에 놓인 급박한 진실을 말하는 국민 강두를 못난 정신병자와 바이러스 감염자로 몰아 구금하고 세균전을 치루기 위해 미국의 힘을 앞세워 ‘옐로우 에이전트’ 독가스를 살포한다. 소수 권력과 지식인에 의해 왜곡되고 잘못된 정보가 진실로 둔갑하여 이 땅의 어여쁜 딸과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었다. 괴물은 우리 사회 안에 엄연하게 힘으로 존재하여 국민을 주눅 들게 하는 권력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또 다른 권력의 오만함이 낳은 결과이다.

용산 미8군기지 영안실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영안실 부소장 맥팔랜드의 지시로 먼지가 가득 쌓인 480여병의 독극물 포름알데히드가 싱크대를 통해 한강으로 무단 방류되었다. 그리고 독극물의 영향으로 자라난 괴물이 한강에 출현한다. 영화는 상상력으로 창조한 가상의 세계이다. 물론 그 가상세계는 세상의 사람과 생명들이 살아가는 회노애락을 담은 공감과 향기가 묻어나고 그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괴물의 시작은 사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와 같다. 영화는 2000년 2월 9일 용산 미군기지내 미군무관이 고의로 방류한 한강독극물 방류사건에서 시작한다.

이 사건과 미군기지 환경오염 실태를 세상에 알린 환경단체 활동가로서, 한미간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하기 위해 열정을 바친 환경운동가로서 이 영화를 즐기는 감정과 감상법은 내게 조금 남다른 것이었다. 2천만 수도권 시민의 상수원인 한강에 버려진 독극물 방류사건에 대한민국 사법부는 재판권을 행사하여 맥팔랜드에게 실형을 선고하였다. 분노한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주한미군사령관은 머리 숙여 한국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고 재발방지를 위해 2001년 SOFA 환경조항을 신설하여 ‘주한미군은 대한민국의 환경법을 존중하고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한다’고 약속하였다. 2003년 ‘주한미군은 반환기지 환경오염을 미국이 책임지고 미측의 비용으로 정화한다’ 고 절차합의서에 서명하였다.

한강독극물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로부터 6년이 지난 2006년 7월 15일, 그동안 50년 이상 무상으로 빌려준 우리 땅을 돌려받는 반환미군기지 정화책임과 환경기준을 놓고 한미간 이견으로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던 끝에 19개 미군기지 반환에 한미당국은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게 왠일인가? 그동안 협상 당사자인 환경부가 주장한 오염자부담원칙과 국내 환경기준은 오간데 없고 미국이 6월 15일 최후통첩처럼 전달한 서신에 담긴 미국입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국방부가 19개기지 열쇠를 덜컥 받은 것이다. 기름범벅이 된 토양오염 그대로, 중금속과 발암물질 그대로 기지를 돌려받았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며 뛰어 놀 학교가 될 수 있고, 시민들이 향유할 생태공원이 될 수 있고, 씨를 뿌려 알곡을 거둘 생명의 땅이 될 수 있는 귀한 우리 땅을 이토록 심각하게 오염시킨 것도 분통터지는데 미국의 입장을 받아 국방부가 누르고 앉아 한국의 환경주권을  포기했으니 괴물을 보며 부르르 몸을 떤 이유이다.

2000년 ‘한강독극물 사건’ 그리고 2006년 ‘환경오염 정화없는 반환미군기지’ 달라진 것 없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미국의 오만함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토환경을 위협할 ‘괴물’을 또 다시 출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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