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에게

2006.07.14 | 군기지

태풍이 할퀴고 간 생채기에 또 다시 폭우가 퍼붓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처한 우울한 상황을 슬퍼하는 하늘의 마음인 듯합니다.

주한미군이 7월 15일에 미군이 철수한 일부 기지를 한국 정부에 반환한다는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한미군이 만약 스스로 절차에 따라 미군기지반환을 강행하는 카드를 뽑아든다면,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처럼 최악의 카드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몇 차례 연설과 대담자리를 통해 한국정부가 반환미군기지의 땅을 1950년대 이전으로 되돌려달라고 요구한다며,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반환미군기지의 땅을 1950년대 이전으로 되돌려 달라고 요구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다만 미군이 저지른 환경오염이 한국 환경법의 기준을 초과하였으니, 그에 대한 정화를 요구한 것뿐입니다. 주한미군이 ‘오염자 부담 원칙’이라는 진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한 한국 정부의 요구는 과도한 내용이 아니라 너무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요구입니다.

당신이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합리성과 원칙을 중시한다면 환경오염 정화 문제에서 ‘오염자 부담 원칙’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원칙이 무너진다는 것이, 인권이 짓밟히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데도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파나마, 비에케스, 필리핀, 일본 오키나와, 캐나다 등 많은 국가의 국민들이, 미군이 저지른 환경문제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세계 평화를 지킨다면서, 인권을 유린하고, 환경을 파괴시키는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지금은 일시적인 힘의 논리에 따라 미군의 세계 주둔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을지라도 그 힘의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댐의 균열이 순식간에 댐을 무너뜨리듯, 미군의 오만한 태도는 세계 곳곳에서 미군의 몰락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미군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동안 주한미군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우방이 아닌 규탄의 대상으로 취급된 것은 주한미군이 일으킨 온갖 범죄에 대해 책임지지 않은 자세를 보여 왔기 때문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주한미군이 자신이 저지른 환경오염을 정화하지 않고 반환하는 것은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고 뺑소니를 치는 파렴치범과 다름없습니다. 미군이 저지른 환경오염은 그것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미군이 책임지고 정화해야 할 몫입니다. 운전자가 길을 가다 사람을 치었을 때, 아무리 경미한 사고라 하더라도 뺑소니를 치는 순간 그는 범죄자가 되듯, 주한미군이 자신이 저지른 환경오염 정화의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주한미군 전체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범죄자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한국 국민들의 주한미군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을 적대적 인식으로 뒤바꿀 수 있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합니다.

당신은 주한미군이 최선을 다해 반환예정인 미군기지를 정화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당신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주한미군이 지금까지 반환예정 미군기지 오염 정화와 관련하여 행한 것은 미군이 내세우는 지하유류저장고(UST) 제거, 전기제품에 사용된 PCBs 제거 등 대부분이 주한미군의 환경관리기준(EGS, Environmental Standards)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EGS가 기지 폐쇄에 따른 정화조치가 아니라 미군이 기지를 사용할 때 적용하는 환경 기준이라는 점은 그 누구보다도 당신이 잘 알 것입니다. 따라서 평소 관리가 되지 않은 부분을 폐쇄할 때 처리한다고 해서 그것을 정화라 할 수 없다는 것에 당신도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한국에서 환경정화를 인정하는 순간 다른 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요구가 봇물 터지듯 터질 것을 당신이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오염 정화 책임을 언제까지 발뺌할 수는 없습니다. 21세기를 환경의 세기로 부를 만큼 환경의 중요성은 세계 각국에서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며, 미군이 지난 20세기처럼 주둔국에서 일으킨 환경오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자세를 보인다면, 미국 본토를 제외하고 그 어느 곳에서도 미군이 발붙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해외주둔 미군기지에서 미군이 책임지고 환경오염을 정화할 수 있게 미국 내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도록 미국 의회와 정부를 최선을 다해 설득해야 합니다.

당신이 반환되는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을 미군이 책임지고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기대합니다.

2006년 7월 12일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윤기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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