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60년, 생명과 평화의 땅 DMZ

2013.06.24 | DMZ

호랑이를 닮았는지 토끼를 닮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모양새가 뭐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건 그곳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 하나 무시될 수 없는 존재, 스스로 깨치기 이전부터 마땅히 누려야할 행복의 권리를 타고난 존재, 그 개인들이 모인 우리가 한반도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종종 안타깝게도 우리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어긋납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꼭 63년입니다. 3년여를 끌어오던 전쟁은 지금으로부터 딱 60년 전인 53년 7월27일 그 총성을 멈췄습니다. 2013년 올해 정전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삼십팔 강원도 양구의 여러 곳엔 ‘한반도의 정중앙’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경도128도02분02.5초/ 북위38도03분37.5초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번지. 양구의 상징입니다. 1945년9월2일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시 제1호에 따라 38선이 한반도의 중앙을 가로로 갈랐습니다. 분단의 서막이고, 전쟁의 단초였던 38선은 우리가 뻔히 살고 있던 우리의 공간을 둘로 나눈 것입니다. 양구의 남면 도촌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졸지에 같은 마을에 살던 김아무개는 남한, 이아무개는 북한이 된 것입니다. ‘자주’라는 말이 매번 선의로만 쓰이지는 않는 시절입니다. 고리타분한 민족주의, 폭압적인 국가주의는 항상 ‘자주’를 등에 업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비근한 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주’의 개념이 완전히 무가치한 것만은 아닙니다. 남쪽엔 미군이 북쪽엔 소련군이 진주했던 해방 후 한반도에서 ‘자주’는 무엇보다 절실했습니다.

칠십 1·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이라크전 그리고 그 외 수많았던 전쟁과 분쟁들이 20세기를 관통합니다. 하지만 한국전쟁만큼 파괴적이고 참혹했던 전쟁은 없습니다. 전쟁 전 2천5백만 명에 달했던 한반도의 인구는 2천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전쟁 전후를 비교해봤을 때 5명 중 한 명은 사망한 셈입니다. 그리고 1천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전쟁의 참혹성은 민간인 사상자 비율에서 나타납니다. 2차 세계대전 땐 민간인 사상자 비율이 40%였습니다. 전체 희생자 중 40%가 민간이었다는 말입니다. 10년 가까이 계속된 베트남전은 30%였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전은 무려 70%입니다. 요즘 간혹 ‘전쟁불사’라는 말이 들립니다. 전쟁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의당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입니다.

육십 영화 ‘고지전’에서 은표(신하균)와 수혁(고수)이 있던 애록고지는 백마고지입니다. 1952년10월6일 저녁부터 15일 오전까지 10일 동안 12차례의 공방전이 벌어진 백마고지 전투를 ‘고지전’은 영화로 그렸습니다. 총 27만4954발의 포탄이 쏟아졌고 국군 3500명, 중공군 1만 명의 사상자를 낸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한국전 발발은 차치하더라도 10일 동안 12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고, 무수한 사상자를 낸 백마고지 전투는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비극입니다. 정전회담이 처음 열린 건 전쟁이 일어난 지 1년여가 지난 51년7월10일의 일입니다. 그 후 2년 동안의 시간을 하세월로 허비하고 나서 53년7월27일 연합군 총사령(Mark Wayne Clark)과 북한군 최고사령관(김일성) 그리고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펑더화이[彭德懷])이 최종 서명함으로써 정전협정이 체결됐습니다. 이 기간 동안의 모든 전투는 백마고지 전투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습니다. 양쪽 모두 지금의 휴전선 근방에서 큰 실익 없이 주고받기를 반복한 것입니다. 책상머리 2년을 허비한 올해로 60년이 되는 정전협정은 그래서 더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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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전쟁이 멈춘 지 60년입니다. 물론 여전히 남과 북은 서로에게 총구를 향하고 으르렁대기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전쟁의 비극은 천혜의 자연인 DMZ도 만들어냈습니다. 전쟁이 자연에겐 평화를 가져다준 것입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DMZ세계평화공원을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에게 대립의 상징인 DMZ를 평화의 공간으로 바꾸고 싶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그것만 놓고 보면 환영할만합니다. 하지만 생태의 개념과 의미를 등한시한다면 비극의 유산을 반쪽짜리로 만드는 일입니다. 비극을 상징하는 DMZ는 2013년 현재 생태와 그로인한 평화 또한 의미합니다. DMZ가 가진 이중성은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평화로 환원되어야 합니다. 윤도현이 목청 높이던 ‘철망을 거두고’가 현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로인해 비로써 우리에게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은 희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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