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우에 전국 곳곳이 큰 피해를 입었다. 녹색연합은 홍수와 산사태 등으로 돌아가신 모든 분들을 애도하며,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의 빠른 회복과 복구에 힘쓰는 모든 분들의 안전을 바란다.
평년 같은 기간에 두배 이르는 기록적 폭우에 50명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오늘(19일) 오전 6시 기준, 44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5월 19일 범정부 여름철 자연재난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다. 일상화된 기후변화에 따라 자연재난 대책의 최우선 목표를 ‘국민생명 보호’로 설정하고, 여름철 자연재난 대책 기간을 운영, 인명 보호를 위한 신속한 사전통제·대피와 폭염 취약분야 집중관리를 약속했다. 위험 기상으로부터 소중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재난 대응에 임하겠다는 비상한 각오가 무색하게 두 달 만에 참사가 발생했다.
2011년 서울 우면산 사고 이후 ‘산사태 취약지역’을 지정·관리하기 시작했지만 여름철 폭우로 인한 산사태 인명피해는 이어졌다. 2020년 최장기간의 장마 속에서 발생한 가평과 곡성 등의 산사태 대부분이 부실한 산지 관리로 인한 인재임이 드러났다. 2022년에는 수도권과 중부지방의 집중호우가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며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재해재난 대비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올 여름도 집중호우가 예상되었지만 정부의 대책은 부실했다. 충북의 침수 피해는 명백히 인재임이 드러났고, 경북의 산사태 피해 역시 기후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정책의 실패다.
수해도 산사태도 원천 차단은 어렵지만, 인명피해를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경북의 산사태, 충북의 침수 피해 앞에서 정책 실패 면피를 위해 기후변화를 이야기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도 이제 기후위기 적응에 나서겠다는 선언을 넘어 기후재난으로부터 국민 안전을 지키는 책임감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 기후재난 예방을 중심으로 정부 조직과 예산을 배치하고, 국민의 생명이 최우선이 되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정책을 정비하고 강화해야 한다.
산사태를 비롯한 수해 대책의 원칙과 기준은 명확하다. 국민의 생명이 최우선이라는 점에 정책과 현장 조치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산사태를 기후위기의 적응 차원에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접근하며, 예방 중심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기존의 국유지를 중심으로 한 사방댐 등의 구조물 대책 대응은 한계가 있었다.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을 전면 개편해야하고, 예천 백석리와 벌방리 피해지역처럼 위험이 있는 곳에 적재적소 산사태 방지시설의 설치를 해야 한다. 아울러 비구조물 대책인 점검 및 예찰 시스템을 구축하고 예방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산사태에 대한 입체적이고 전면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먼저, 기후위기 재해재난을 대비한 산지 재해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산사태 대응에서 요구되는 핵심 과제는 마을과 주택 인접 산지의 산사태 예방이다. 국유지, 사유지를 망라하여 산사태 방지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또 산지 인허가 제도의 전면적 개선이 필요하다. 2020년 가평 산사태의 교훈처럼 산지 전용 절차에서 면적과 함께 산지의 경사도, 주변 입지도를 평가하고 산사태와 같은 재해재난을 고려한 인허가 제도의 도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산지와 산림 주변 및 자락에 위치한 기존 주택과 건축물 등의 산사태 위험을 정밀 전수 조사하고, 위험 시설물 소유자 및 입주자에게는 재난 위험요인에 대한 고지와 경고 등이 필요하다. 더불어 산림청은 관할 지자체의 적절한 조치를 지도·감독하고, 이를 재난 대응 정책과 지침에 구체적으로 반영 시켜야 한다.
또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 대피를 위한 재난 경보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국가산사태정보망의 구축과 전파 체계를 현실화 해야 한다. 산사태 예방 및 대피와 관련된 정보통신 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 산사태의 안내문자를 시군 단위에서 읍면 단위로 정밀도와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이번 산사태 피해를 겪은 예천군 면적은 661.56㎢로 서울시 면적 605.24k㎡ 보다 넓다. 이런 곳에 대상 지역과 대피 장소의 구체적 내용이 없는 경보 문자는 실제 대피와 예방 효과가 떨어진다. 읍면 단위로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WS)를 활용한 실시간 강수량 측정을 기반으로 한 안내 문자를 발송해야 한다. 산사태 경보는 해당 지역 당일 시간대별 강수량뿐 아니라 2~3일 누적 강수량이 중요하다. 예천은 7월 15일 오전 12시 30분 전후, 봉화는 7월 15일 오전 4시 전후 산사태가 발생했다. 두 곳 모두 읍면 단위에서 2~3시간 전에 강수량을 바탕으로 산사태 경고 문자를 발송하고, 대피 장소를 공지했다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국내에 이런 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는 곳으로는 군부대가 있다. DMZ는 자동기상관측장비를 활용해 50㎜ 가까이 비가 오면 주변 지역 모든 생활관의 장병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킨다. 1996년 철원 군부대 산사태 참사 이후 오랫동안 유지해온 시스템을 참고하고 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취약계층, 취약지역에 대한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 이번 경북 산사태 피해는 대부분 농산촌이라는 취약지역에서, 노인층이라는 취약계층에 집중되었다. 정보통신에 취약한 주민과 농산촌의 분산 거주 특징에 맞춘 재난 대책과 대피 계획이 필요하다. 또한 재해재난 예방 긴급조치 등의 역할과 권한 등이 명확하게 설정되고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나아가 산사태 관련 대응의 고도화를 위해 기존에 발생한 산사태 현황과 실태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모든 산사태의 발생부터 조사, 복구까지 공간정보화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국내 산지 전반에 걸쳐 일관된 기준과 원칙에 의해 산사태 현황 정보를 파악하고 분류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산림공간정보시스템에 연동하여 산사태를 비롯한 재해재난 정보를 빅데이터로 관리해야 하며, 타기관과 지자체를 넘어 모든 국민의 정보접근성까지 높여야 한다. 정보의 체계적 관리와 투명한 공개는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적 재해재난을 통제·관리하는 기본이다.
기후위기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예외없이 자연과 인간사회 전반의 변화와 대응을 요구한다.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적응의 핵심 과제로 재해재난의 대응과 예방을 꼽았다. 주요 국가들은 이미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재난에 상당한 역량과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적 대응이 필요한 기후재난은 산불과 산사태로 드러났다. 산불은 예방과 진화에 있어 비교적 일관성 있는 정책과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고 있다. 하지만 산사태의 대비는 부족했음이 이번 참사로 드러났다. 기후위기 시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강도의 산사태 대응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6월 23일, 정부는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 수립을 발표했다. 기후재난 사전 예·경보를 강화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피해 최소화 대책을 추진하는 한편, 모든 주체가 함께하는 기후적응 추진을 통해서 적응 정책의 이행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채 한달도 되지 않아 발생한 폭우 앞에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할 정부의 무능이 드러났다. 수만년 온대기후에 적응해온 우리 국토와 산림이 구체화되는 아열대 기후 속에서 다양한 양상의 재해재난의 위협을 받고 있다. 여름철 폭우는 더욱 빈번해지고 규모는 커지고 있다. 재해재난 대응의 기본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피해복구 보다 예방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의 시대, 정부는 진정으로 위기를 느끼고 국민 생명을 지키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해야 할 것이다.
문의 : 자연생태팀장 박은정(070-7438-8503, greenej@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