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를 버려야 하는 이유

2014.11.25 | 기후위기대응

[온실가스배출 ②] 강화된 목표관리제와 탄소세 도입을 고려해야

한국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한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감축정책들을 시행하거나 예정 중에 있다.

2011년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를 도입했고, 2015년 배출권거래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 또한 탄소세 도입에 관한 논의가 국회와 관련부처, 전문가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들을 어느 정도의 강도로, 어느 분야에, 얼마 동안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온실가스·에너지목표관리제와 배출권거래제, 탄소세 등 각각의 정책이 도입될 시기에 따라 정책 시행을 코앞에 두고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논의만 진행될 뿐이다. 최근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둘러싼 논란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물론 산업계의 반발로 한차례 제도 시행이 연기됐음에도, 내년 시행을 앞두고 또 다시 산업계의 거센 반발에 대해 온실가스 감축 허용량을 10%나 늘려주는 등 정부는 산업계의 요구는 적극 반영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에 따른 산업 업종별 할당량에 맞춘 기존 안대로 정책을 추진하라는 환경단체들의 요구를 무시했고, 온실가스 감축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배출권거래제도 자체에 대한 에너지·진보 진영의 비판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게 배출 할당량을 주고 그 안에서 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에 따라 시장친화적인 온실가스 감축 메커니즘으로 등장했고, 유럽연합(EU)이 주도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유럽에서도 실패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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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40여 개 단체가 함께 펴냈고, 최근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가 번역한 ‘유럽연합 배출권 거래제도 신화 깨기’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거래제 1단계(2005~2007)에서 증가했고 2단계(2008~2012)에서는 감소했는데, 이는 유럽 배출권거래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위기 때문이다.

유럽 배출권거래제는 친환경 재생 에너지나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 변화를 촉발하지 않았고, 복잡하고 반응이 없는 메커니즘으로 스스로의 목적 달성에 실패했으며, 공공과 소비자 양자에게 비용 효율이 좋지 않았고, 사기꾼들의 천국이며 세금회피, 사기 등의 범죄행위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배출권거래제는 이처럼 유럽에서조차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30유로까지 올랐던 배출권가격은 2013년 3유로까지 급락했고, 최근에도 5~6유로에 불과한 수준이다. 배출권이 과잉 할당된 데 따른 것으로, 배출권 공급 과잉->배출권 가격 하락->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요인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출권거래시장의 문제를 분석하고 어떻게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산업계의 로비에 의해 온실가스 할당량을 더욱 늘려주면서 일단 제도를 시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내년부터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다면, 유럽 사례의 전철을 밟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산업계의 로비에 의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과잉 할당되고,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보다는 무상으로 받은 배출권으로 이윤을 얻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국내 산업 불황 전망…배출권으로 이득?

지난 18일 김철현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중국 자체 중간재 생산능력이 개선되면서 한국의 중국을 경유한 가공·중계무역 중심의 수출증가율이 2000년~2011년 연평균 19.8%에서 2011년~2013년 4.3%로 급락했다.

또한 한국의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인 조립금속·철강·석유화학부문의 전력수요증가율은 2000년~2011년 기간 동안 연평균 7.3%에서 2011년~2013년 3.4%로 하락했다.

향후 세계 경제 불황과 중국 요인으로 인해 국내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들의 구조변화가 야기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3일 내년도 국내 산업 경기의 특징으로, 조선·철강·석유화학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자동차·IT업종은 다소 후퇴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철강·석유화학의 최대 불안요인으로는 ‘차이나 리스크’를 꼽았다.

지난 5일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전망이 제기됐다.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에 따르면, 국내 최대 단일 전기소비업종인 전기로제강의 경우 건설업 수주의 하락,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 건설 추세하락 및 중국의 잉여물량까지 겹쳐 2020년대까지 전기로제품 공급과잉이 예상돼 관련 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동부제철과 같은 주요 전기로제강업체들은 100억 원대의 전기요금을 체납할 정도로 부도직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와 국내 산업의 변화 가능성을 감안할 경우 배출권을 과다하게 할당받은 기업들이 산업 불황의 여파로 추가로 줄어든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권 시장에 과잉 공급해 배출권 가격이 급락할 수 있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 없이 추가 이득을 얻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확실성과 실패 가능성이 높은 배출권거래제를 버려야 다른 온실가스 감축정책들을 시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11년부터 시행 중인 온실가스·에너지목표관리제와 탄소세를 들 수 있다.

강화된 목표관리제와 탄소세 도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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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관리제는 대표적인 직접규제 방식으로 각 기업에게 온실가스를 어느 시기까지 어느 정도를 줄이라고 강제하는 제도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 제도를 배출권거래제로 넘어가기 위한 이행단계로 시행했기 때문에,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강제 수단이 되지 못했다.

기업별 온실가스 배출량 할당시 각 기업별 예상배출량(BAU)을 고려해 감축목표를 설정하면서 기업들의 절대적인 감축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또한 감축목표 미달시 제재수준도 최대 1천만원 과태료(정액)에 불과했다. 앞으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따른 보다 강화된 형태의 목표관리제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수량규제 방식인 목표관리제와 함께 가격결정 방식인 탄소세를 도입해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존 에너지세제를 개편하면서 탄소세를 도입하고 그 세수를 에너지효율 개선이나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배출권거래제보다는 목표관리제와 탄소세라는 2가지 제도를 조합하는 확실하고 입증된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목표관리제는 이미 시행 중이고 강화된 형태로 변경할 수 있으며, 탄소세 도입을 위한 논의는 수년 전부터 이뤄져 왔고, 이제는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향후 두 제도의 시기와 대상, 강도 등은 사회적인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논의는 배출권거래제를 폐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유럽 배출권거래제의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 오마이뉴스에 연재됩니다.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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