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종교인 2500만명과 기후변화

2009.03.06 | 기후위기대응

남극 세종기지 주변에 풀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지의류와 이끼류만 자라던 남극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지난 100년 동안 0.74도의 지구 온도 상승은 북극의 40%를 녹여 버렸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13년이면 북극해 만년빙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삶을 ‘규제’ 해야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계·정부·시민들도, 목표를 정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여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양적인 성장’을 갈급하는 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종교계가 나서야 한다. 세상 모든 종교는 우리에게 ‘소박한 삶’과 ‘배려하는 삶’을 가르친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하느님도 인간들이 지구를 끝장내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생태신학자 숀 맥도나 신부는 “교회가 생태문제, 특히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나라 종교계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낯선 감이 있다. 전에 살던 집 근처에 교회가 있는데, 일요일이면 그 교회는 근처 학교 운동장을 빌려 신도들을 위한 주차장으로 제공했다. 대형교회가 있는 여의도는 일요일이면 주차 전쟁터가 된다. 산사 깊숙이 자리잡은 절은 무분별한 증축으로 숲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고즈넉함을 찾아간 절간에서 불사 증축을 위해 무수히 잘려나간 아름드리 나무를 보고 발길을 돌린 적도 있다.

한편으로 환경단체보다 더 열심히 기후변화 대응 운동을 하는 곳도 있다. ‘청파교회’는 지난해 교회건립 100주년을 맞아 교인들의 헌금으로 지붕 위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했다. 비행기로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온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탄소발생 부담금’을 헌금으로 낸다. 청파교회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도 남기는 법이 없다. 목사님은 녹색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차 없는 교회’를 실천에 옮기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예 교회 주차장을 공원으로 바꾼 교회도 있다.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을 구현하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는 2년 전 지리산생명문화교육원에 햇빛발전소를 세웠다. 교육원과 실상사 작은 학교는 햇빛이 만든 전기로 자립한다. 도법 스님은 축하 법문에서 “작은 햇빛발전소가 에너지 자립과 환경 순화를 위한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다. 전력공급이 여의치 않은 사찰 중에서 태양광에서 전기를 얻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설악산 영시암·오세암·봉정암과 문경 봉암사의 암자인 백운암에는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부안에는 부안성당과 원불교당에 태양광 시민발전소 2·3호기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부안지역에 햇빛발전소를 만들 때 앞장선 분들이 신부님과 교무님이시다.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와 성당에서 기후변화 교육을 하고, 더불어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기후변화는 인간의 과도한 경제활동이 만들어낸 ‘재앙’이다. 자연을 착취하는 ‘인간의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이자 ‘윤리’에 관한 문제다. 그렇기에 물질보다는 정신적 가치, 양적 충만함보다는 행복과 조화로운 삶의 방식을 전파하는 종교계가 해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4700만 인구 중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이 2500만에 이른다. 2500만이 기후변화 대응 실천에 나선다면, 지구 생명 공동체 복원도 가능할 것이다.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

한겨레 신문 3월 7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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