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제로 주택 가능한가?

2010.09.18 | 기후위기대응

Beddington (Fossil Fuel) Zero Energy Development
하나 뿐인 지구를 위한 주택 디자인, 베드제드(BedZED)

2006년 ‘생태발자국’에 관한 책을 번역했다. 캐나다 학자 마티스 웨커네이걸이 고안한 생태발자국은 인간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데 드는 비용을 땅 넓이로 환산한 것이다. 그래서 생태발자국이 크면 클수록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면적은 1인당 1.8헥타르씩 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생태발자국은 평균 3.73헥타르이고, 미국인은 9.02헥타르이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나 미국인처럼 산다면 지구 하나로는 부족한 셈이다. 생태발자국의 교훈은 간단하다. 좀 덜 소비하고 살자는 것이다.

런던 시내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50여 분을 달리면 지붕 위에 닭볏 모양의 환기구가 있는 주택단지 베드제드에 도착한다. 이곳이 바로 ‘생태발자국’을 반영해 지은 생태주거단지이다. 영국인의 생태발자국은 6.12헥타르인데, 베드제드에서의 삶은 1.8헥타르로 지구하나에 맞춰 살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렇다면 베드제드는 누가 어떻게 지었을까? ‘도시에 자연을 담는 건축가’ 빌 던스터(Bill Dunster)가 설계했고, ARUP사 건설 팀이 결합했다. 건축을 해서 분양을 한 곳은 피버디 트러스트(Peabody Trust)로 공공주택을 보급하는 준정부기관이다. 생태발자국을 비롯한 환경 컨설팅은 바이오리저널 디벨로프먼트(BioRegional Developments)에서 했다. 이들은 1999년 ‘화석에너지’를 쓰지 않는 주택단지를 만들자는데 의기투합했고, 2002년 베드제드를 완성했다.

먼저 새로운 땅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재개발지역을 택해 3층짜리 건물 3개동으로 82가구가 입주할 수 있도록 지었다. 인근 브라이튼 역에서 철거한 건물의 철근과 폐목재를 이용해 건축자재의 80%를 조달했다. 나무로 외관을 마무리해 커다란 배처럼 보이는데,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지붕 위 태양광 시설 사이로 군데군데 풀과 관목이 자라 집 자체가 숨을 쉬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우선 화석에너지 ‘제로’를 위한 에너지시설부터 살펴보자. 베드제드에서는 겨울철 난방비 걱정이 없다. 벽 두께가 30cm 이상으로 단열을 철저히 해 에너지 소비량을 최소로 했다. 창문은 모두 삼중창이다. 지붕에 있는 닭볏 모양의 환기구는 열교환기 역할을 한다. 바깥에 있는 찬 공기가 실내로 들어올 때, 실내에서 밖으로 나가는 더운 공기와 만난다. 이때 열교환기는 찬 공기가 더운 공기의 열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장치들로 화석연료 없이도 난방을 해결한다. 지붕에는 태양광발전기와 태양열온수기를 설치했다. 건물을 남향으로 지어 창과 천창을 이용해 채광을 한다. 낮에 전등을 켜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방식이다. 도시의 현대식 건물들은 디자인을 우선으로 설계하고, 조명과 냉난방은 에너지로 해결해왔다. 최근에야 석유가격이 오르고 기후변화 문제가 부각되면서 자연을 활용해 채광과 난방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부엌에는 똑똑한 계량기가 달려있다. 집 안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의 전력 사용 총량, 가스 사용량을 보여준다. 전기 사용량이 일정량을 넘으면 경보가 울린다. 경보를 막으려면 집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 수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 대형 냉장고나 대형 텔레비전은 엄두도 못 낸다. 집이 에너지 소비를 제한하는 셈이다.

집을 지을 때 에너지소비를 최소화하도록 지은 다음엔 단지 내에 우드칩을 이용한 열병합 발전소를 운영해 전기와 열을 생산한다. 인근 마을에서 수집한 목재를 분쇄해 가스화 시켜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제드라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현된 것은 아니다.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면서 모든 과정을 자동화하려다 보니 오히려 기계고장이 잦았다. 더 큰 문제는 나무를 분쇄하고, 발전소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음’ 이였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산하다 보니 주민들이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이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적인 도시생활을 하면서 지구 하나에 맞춰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과 우리가 그동안 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을 얼마나 손쉽게 다른 지역에 의존해서 얻어 왔었는지를 보여준다.  

자 집안으로 들어가 보자. 집안의 모든 가재도구가 지구에 흔적을 덜 남기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재활용한 가구, 새를 해치지 않은 벽지,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 세제가 놓여있다. 지붕이 빗물을 흡수해 천천히 땅 밑 탱크에 저장하고, 그 물을 화장실에서 사용한다. 변기와 세면대는 크기를 줄여 물을 적게 쓰도록 했고, 절수형 사워기와 수도꼭지를 달았다. 이렇게 해서 물 사용량을 65%나 줄였다. 부엌 붙박이장으로 아예 재활용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부엌 찬장을 여니 유기농 식품으로 가득하다. 지역 농가와 연계해 유기농채소 박스를 공급받고 있다. 공동체 강당에서는 정기적으로 파머스 마켓을 열고, ‘ZED bar’에서는 유기농 와인과 맥주도 판매한다. 이곳 사람들은 음식물을 버리지 않고, 육식과 유제품을 줄이며, 지역·제철·유기농 먹을거리를 애용한다. 또 집집마다 옥상정원이 있어 자기가 먹을 토마토와 채소는 직접 재배한다. 공동체 문화교실에서는 ‘텃밭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도시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이 교통부문이다. 아예 개발을 할 때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이 자리 잡았다. 개인 자가용 사용을 줄이기 위해 카 쉐어링 제도를 도입했다. 35명이 3대의 차량을 함께 사용하는 식이다. 누가 언제 차를 쓸지는 온라인으로 등록을 해서 사용한다. 그래도 차를 타야 할 때는 전기자동차와 자전거를 이용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주택단지 안에 사무실을 지어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분양한 점이다. 자동차나 교통수단을 이용해 출퇴근하지 않도록 아예 교통수요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베드제드 생태주거단지의 핵심은 커뮤니티에 있다. 단지 내에는 다양한 지역사회 교육과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홀이 있고, 동아리 모임이 만들어져 있다. 여기에서 요가나 파티를 하고, 로컬푸드 판매를 위한 장터도 열린다. 각자의 집에서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교환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정보는 베드제드 거주자를 위한 뉴스레터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자 그렇다면 궁금한 점은 화석에너지 제로에 가깝게 디자인을 했는데, 실제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바이오리저날 디벨로프먼트는 매년 사람들의 삶을 모니터링 한다. 2007년 모니터링 결과는 놀라웠다. 열병합발전소가 운영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영국 평균 대비 난방연료 81%, 전기 45%를 줄였다. 쓰레기의 60%를 재활용하고, 주민의 86%가 유기농 식품을 먹는다. 물 소비량은 보통 영국인 평균 사용량의 절반, 자동차 이용도 절반으로 줄었다. 더불어 베드제드 주민들은 단지 내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름을 최소 20명이상 알고 있다고 한다. 한 주민은 150명의 이웃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웃의 이름을 몇 명이나 알고 있는지.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베드제드 주민들의 생태발자국은 4.67헥타르였다. 여전히 세상 모든 사람이 베드제드 사람처럼 살면 지구가 2.6개가 필요하다. 열병합 발전소를 작동하면 4.32헥타르로 낮아진다. 그래도 가야할 길이 멀다.

영국 정부는 2020년까지 베드제드와 같은 ‘에코타운’ 10개를 건설할 예정이다. 베드제드의 실험이 영국 주택 에너지 혁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더불어 정부는 앞으로 에코타운에 살게 되는 거주자들의 교통, 난방, 음식물 쓰레기 등을 구체적으로 모니터링해 정말로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는지를 관찰할 계획이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라는 ‘빅 브라더’ 논쟁을 일고 있지만, 주택만큼이나 생활습관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영국은 2016년부터 모든 신규 주택은 ‘탄소 제로’로 지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제 자원을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있다하더라도 스스로 ‘소비’의 욕망을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한국에 베드제드가 있다면, 어떻게 우리는 베드제드에 살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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