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앙과 생태정의

2010.12.02 | 기후위기대응

기후재앙과 생태정의

-2010년, 최악의 기후재앙의 해로 기록될 것

2010년 9월, 예년이면 추수의 기쁨과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식구들끼리 오순도순 즐거운 담화가 이어져야 할 시기인 추석 연휴 기간에 뜻하지 않는 기록적인 폭우가 서울 한복판에 쏟아졌다. 여지껏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집중적인 호우로 인해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 거리를 비롯하여 서울의 절반이 물에 잠겼다. 대부분의 가정들이 명절을 보내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피해는 더 컸다. 가장 무서운 것은 예측하지 못한 기상재해였다는 점이다. 서울에서도 이제 기후재앙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만하다. 한반도의 경우 지난 1910년에 비해 평균기온이 1.5도 상승했다. 지구 전체 평균 온도 상승인 0.74도의 두배에 달한다. 서울의 경우는 그보다 더 큰 2.5도 상승했다. 지구 전체의 기온상승보다 더 큰 폭으로 한반도가 더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아열대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태풍, 폭우, 폭염 뿐만 아니라 농작물 피해, 어업피해, 병충해 피해 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기후변화로 인한 전 세계 곳곳의 피해가 유독 심각한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은 그야말로 기후변화가 지구촌을 강타한 해이다. 러시아에서는 7월 말 낮 최고 기온이 1주일 이상 연속으로 35~38도를 기록하는 130년 만에 최고 기온을 기록하는 폭염으로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되었다. 파키스탄에서는 하루 반나절 만에 무려 300mm 의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이 1달간 지속된 유례없는 대홍수로 전국토의 1/3이 수몰되었다. 파키스탄 정부에 의하면 피해액이 국가 GDP의 1/4, 사망자는 1,600여명, 이재민은 남한 인구의 절반수준인 2,000만명에 달한다. 또한 중국 역시 남부지방에 집중된 홍수로 1억 20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남미에서는 혹한과 추위가 덮쳐 200여명이 사망했고, 남아공에서도 이상저온 현상으로 수백 마리의 펭권이 얼어 죽는 일이 발생했다. 미 CNN은 2010년 8월 12일, 현재 발생하는 전 세계 이상기온 현상은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 시스템 내 에너지가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러시아의 고온 현상과 파키스탄의 대홍수 현상이 모두 하나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도한바 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이제 기후재앙에 더 이상 대비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기후재앙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 또한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전 세계 기후운동 네트워크인 CJN(Climate Justice Network)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서 자신의 삶 터를 이전하는 기후난민이 1995년까지 250만 명이었으며, 이는 현재 500만명으로 추정하고, 2050년 경에는 10억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생태정의와 환경정의, 그리고 기후정의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은 ‘기후정의(Climate Justice)’의 개념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다. 기후정의라는 용어는 ‘생태정의와 환경정의’라는 용어에서 태동하였다. 환경정의 운동은 1982년 ‘워렌 카운티’ 사건이 발단이 되었는데, 이는 한 기업이 무단으로 불법 투기한 유독물질 폴리염화비페닐 3만 1천 갤런을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가 또다시 흑인 거주 비율이 높은 ‘워렌카운티’  지역에 매립하기로 결정하면서 전개되었다. 당시의 운동가들은 환경과 생태문제를 둘러싼 불평등과 부정의한 상황을 고발하고 정치적으로 소외받거나 낙후된 지역의 환경권 문제를 사회적 여론으로 상기시켰다.

‘기후정의’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기후변화로 인한 전 세계의 피해가 급증하고, 기후변화를 최전선에서 느끼는 기후변화 취약국가들의 암울한 미래와 불운이 확실해지면서 부터이다. 기후변화의 대비책을 얘기할 때 정의 (justice)라는 개념이 들어간 것은 환경정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로 고통받고있는 사람들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 때문이다. 그들은 기후변화를 일으키지 않았고, 심지어 기후변화라는 용어도, 온실가스라는 용어도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원주민이 될 수도 있고, 인도나 아랍권 최빈국가들의 아이들이 될수도 있고, 동남 아시아의 여성들이 될수도 있다. 히말라야가 녹아서 수자원의 고갈로 고통받는 아시아 10억명의 민중들일수도 있다. 국내적인 관점에서는 농사 주기가 바뀌거나, 병충해의 증가로 고통받는 농민들, 수온의 증가로 급증하는 해파리와 바다에서 시름하는 어민들, 그리고 기후변화로 뜨거워진 지구를 물려받는 미래세대들이다.

반대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은 너무나도 명백히 선진국에 있다. 세계자원연구소(WRI: World Resources Institute)가 2010년 7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을 포함한 선진 20개국 모임인 G20은 2005년 한해 지구상에 내뿜은 온실가스 중 약 73%를 배출했다. 같은 해 선진 8개국 모임인 G8은 32%를 배출했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역사성을 따져보면 더 흥미롭다. 1850년부터 2002년까지 G20 국가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62%를 배출했고, G8 국가는 무려 82%를 배출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뼈아픈 고통과 삶을 위한 몸부림의 원인은 미국, 유럽, 일본 등과 같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들에게 있다는 지적은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다.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정치적인 해결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풀어쓰면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이 있는 선진국가들은 더 많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안에 동의하고, 더 나아가 모든 국가들은 자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구와 지구인들이 생존할 수 있는 범위까지 최대로 줄이는 방안에 각 나라가 정치적으로 합의하는 것이다. 기후변화 취약국가들에게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것 또한 빠질 수 없다. 역사적으로 선진국의 눈부신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은 개발도상국 민중들의 피같은 자원공급과 민중들의 고통없이는 이룩하기 힘들었다. 이를 누구는 생태부채(ecological debt ) 또는 기후부채(Climate debt)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를 가장 현실적으로 풀어나갈수 있는 공간이 기후변화협약(UNFCCC: 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이다. 1992년 1차 모임이 시작된 이래 매년 열리는 국제 기후변화 총회로 올해는 16번째로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다. 이 협약 아래서 개최되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는 참석자 수만 연 2만~4만명이 몰리는 대규모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회의이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결정된 교토의정서 역시 UNFCCC 체제 안에서의 국제적인 협약이었다. 올해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16차 당사국총회에서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한 국제적인 공약인 교토의정서가 만료됨에 따라 2013년 이후의 교토의정서를 뛰어넘는 실질적이고 과감한 감축 방안이 합의될지가 쟁점이다. 이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재정지원금 마련, 탄소 배출권 거래제와 같은 시장주의적 해결에 기반한 교토메커니즘의 운영방안, 개도국 지원방안, 그리고 지구 온도 상승 억제 기준과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수렴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정치문제가 그러하듯이 올해 역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혁신적인 온실가스 감축 약속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UN 차원의 실질적인 재정지원은 지지부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취약국가들을 위해서 2012년까지 300억 달러,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를 모금하기로 선진국들이 약속한 ‘코펜하겐 펀드’는 300억 달러중 실제로 지급된 금액이 겨우 26%에 그치며, 그나마 새롭게 추가된 금액은 전체 예산 중 17% 밖에 되지 않아 기후변화 문제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금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의 지원금 역시 생겨나고 있다. 기독교 국제구호단체인 티어펀드(Tear Fund)는 작년 제 15차 코펜하겐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를 맞이하여 기후정의펀드(Climate Justice Fund)를 개설했다. 기독교 단체를 기반으로 자발적인 재정지원금을 마련하여 기후변화 취약국가를 지원하는 선행을 보인 것이다. 이를 통해서 마련된 기금은 지역 사회가 기후변화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탄자니아와 우간다, 콩고 민주 공화국에 지원된다. 각 국가의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난항을 겪는 상황에 교회를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에서 발 벗고 나서고 있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할까?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자연재해는 점점 많이지고, 북극의 빙하는 점점 녹아가고, 동식물들의 멸종 위기 속도도 빨라지고,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은 점점 물에 잠겨가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쯤이 되어서야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할 수 있을까. 각 나라의 협상 대표단들이 지지부진하고 눈치보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사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위한 행동의 마지노선을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북극의 빙하가 모두 사라지는 지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인류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대응한다면, 사계절이 없어지고 여름과 더 뜨거운 여름으로 구분되는 미래가 오지 않을까? 전 세계 감축 노력을 위한 각 나라의 정치적인 결단력과 효과있는 재정지원을 기대하면서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제 16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를 조금이나마 기대해보고자 한다. 올해 총회장에서 2013년 이후의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다시 기간을 논의하고 누가 얼마를 감축할지를 논의해야 하는 지지부진한 3~4년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다. 이쯤에서 가슴속에서 떠오르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글에서 보았던 글이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라고

글-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손형진
*위 글은 기독교환경연대에서 부설연구소인 한국교회환경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새하늘 새땅19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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