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곰 천사, 날개를 달아주다

2009.11.27 |

곰아 미안해

지난 여름이었던가. 곰사육정책에 반대하는 버스정류장 광고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늘 ‘곰’하면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이나 기껏해야 동물원의 곰을 떠올려 왔기 때문이다. 곰이 사육된 지 20년이 넘었고 녹색연합도 2004년부터 반대 운동을 해왔다는데, 부끄럽게도 아주 뒤늦게 사육곰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그제야 곰 복원 사업에 열을 올리던 정부와 언론에 마치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무책임한 환경부와 인간의 이기심에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한 두 마리도 아니고 1400여 마리나 되는 사육곰의 존재조차 모르던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 그들이 아직도 사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받는 건 혹시 사람들의 이런 무관심 때문은 아닌지, 그저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뿐이었다.

사육곰 천사 되기
사육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우선은 광고에 적혀있던 대로 서명을 하기 위해 녹색연합의 홈페이지를 찾았다. 녹색연합은 곰사육정책 폐지를 위한 사이트 ‘http://bear.greenkorea.org’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미 6만 명이 넘는 네티즌이 서명에 동참한 상태였다. 이곳에서는 서명 이외에도 사람들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부터는 이전의 활동들과는 좀 다른, 특별한 ‘미션’이 주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총 다섯 개의 미션을 수행했는데, 이른바 곰사육정책 폐지를 위해 ‘사육곰 천사들이 해야 할 미션’이다. 기존의 사육곰 천사 활동은 주로 서명을 하거나,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사육곰 문제를 알리는 등 사람들의 힘을 모으는 데 주력해왔다. 이에 비해 이번 한 달간의 미션 활동은 그 힘을 정책 윗선의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좀더 적극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첫 번째 미션과 다섯 번째 미션은 환경부 소속 관계자들에게 항의메일을, 두 번째 미션은 환경노동위원회 국회의원들에게 도움요청 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사육곰 문제는 잘못된 정책을 추진한 정부에게 책임이 있는데도, 담당 기관인 환경부는 지난 20년간 사실상 이 문제를 방치해왔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에게 항의메일을 보내 곰 사육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동시에 국회의원에게 폐지 법안 마련을 요청하는 것은 사육곰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필수적인 단계라 할 수 있다.
이어 세 번째 미션은 청와대에도 우리의 이런 생각을 전하는 것이었다. 메일을 보낼 때도 인사말에 실명을 언급했지만,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남길 때에는 반드시 본인 확인을 거쳐야만 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사육곰을 위한 글을 하나 하나 써나가는 과정은, 내게 더 많은 책임감을 요하는 동시에 그만큼 큰 자부심을 갖게 했다.

네 번째 미션은 그 의미가 더욱 특별했다. 도움요청메일 미션을 통한 사육곰 천사들의 진심이 통했기 때문인지, 지난 국정감사에서 홍희덕 의원이 사육곰과 관련해 환경부에 서면 질의를 한 것이다. 이에 홍희덕 의원의 블로그에 응원글을 남기는 것이 네 번째 임무였다.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귀찮을 수도 있는데, 블로그 방명록에는 온통 사육곰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어 감사하다는 내용뿐이었다. 나 역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사육곰 문제는 우리의 관심과 노력으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모두의 작은 마음이 모여

이런 우리의 활동은 지난 녹색연합과 홍희덕 의원의 면담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홈페이지의 공지에 따르면 홍희덕 의원은 면담 자리에서 곰사육 정책 폐지에 동의하는 서명과 더불어, 내년에 녹색연합과 함께 입법캠페인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직 사육곰 문제가 뚜렷하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다섯 번의 미션 수행을 통한 이 결과물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감동이었다. 사실 나 같은 한 사람의 개인이 뭔가 그럴듯한 일을 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런 개개인이 모이면 얼마든지 의미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맛봤기 때문이다.

처음 사육곰을 알았을 땐 그저 미안한 생각에 무엇이든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맘먹었었다. 그래서 나부터 서명을 하고 사육곰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를 권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사육곰 천사들이 좀더 의욕을 갖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명에 참여한 6만 명의 귀한 마음 하나 하나 모두가, 사육곰 정책 폐지를 가능케하는 더욱 직접적인 힘으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기에 이번 미션은 참여자의 수를 떠나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활동의 본보기를 제시했고 그 나름의 값진 성과를 거둬, 참여한 모든 이에게 더 큰 동기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모두, 사육곰이 그 감옥 같은 사육장에서 벗어날 수 있게 각자의 목소리를 들려 주자. 참 다행스러운 건 내가 그들을 위해 그래도 조금씩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 다음 미션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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