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칼럼]계양산 도롱뇽의 죽음

2009.04.07 | 생명 이동권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호령하며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극동을 주름잡던 아무르호랑이는 왜 멸종위기에 처했을까?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자연자원연구소 마이칭 박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호랑이 수가 줄어든 원인은 밀렵도 밀렵이지만 만주사변, 러일전쟁 같은 이 일대의 잦은 군사 충돌 때문이라는 것이다. 쏟아지는 포탄세례에 사람도 죽고 호랑이도 죽었다는 것이다. 야생동물의 생사가 인간의 역사와 같이 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한반도에서도 이 땅의 민초들만큼이나 야생동물들의 삶도 기구했다. 일제치하 일본이 ‘해수구제’ 명목으로 호랑이, 표범, 반달곰을 대량 사냥했고, 동해 바다에선 고래를 싹쓸이해갔다. 지구상에 300여마리밖에 남지 않은 귀신고래도 일본이 남획한 결과이다. 일제강점기를 버텨낸 야생동물들은 한국전쟁으로 또 한 번 멸종위기를 겪는다. 전쟁이 끝나자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도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단절됐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남한에선 급격한 경제개발로 여우와 늑대가 사라졌다. 공단을 조성하고, 도시를 만들고, 골프장을 건설하면서 사람들마저 토지를 강제수용 당해 쫓겨나는 판에 야생동물은 관심 밖이었다. 사통팔달 뚫린 도로로 서식지가 조각나면서 교통사고로 죽는 야생동물이 늘어났다.

지난달 이 땅의 야생동물이 처한 현실을 상징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요즘 잘나간다는 대기업 롯데건설이 골프장을 짓기 위해 몇년째 공을 들이고 있는 계양산에 살고 있는 도롱뇽 이야기이다. 인간의 소용이 닿은 땅에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살고 있었기 때문일까? 도롱뇽 수십마리가 꼬리가 잘리고 허연 배를 드러내고 뒤집혀 죽은 채 발견되었다. 환경부가 계양산 골프장 건설에 대한 환경성 검토 심의를 위해 현장조사를 하기 직전에 골프장 예정지의 도롱뇽이 ‘의문의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개발을 위해 환경영향평가에 희귀야생동물들을 고의로 누락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직접 훼손하는 경우는 드물다. 계양산은 급격한 개발로 공원녹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천에 남은 마지막 ‘녹색지대’이다. 지금 반딧불이가 살고, 도롱뇽과 버들치가 서식하는 인천의 마지막 ‘숲’과 ‘야생’이 소수를 위한 골프 놀이터로 바뀔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개발 욕구 앞에 생명이 짓밟히고 있다. 그러고보니 죽은 도롱뇽의 모습은 이 땅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뉴타운, 골프장 등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사람들과 서식지를 잃어 멸종에 처한 야생동물은 서로 꼭 닮아있다. 멀쩡히 살고 있는 생명을 짓이겨가면서 개발을 추진할 정도로 생명과 자연에 대해 폭력적인 사회라면, 과연 살 만한 곳일까? 야생동물의 생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다. 우리가 사라져가는 야생동물과 서식지 파괴에 대해 돌아보지 않는다면, 인간 역시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야생동물들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에선 인간 또한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유진 | 녹색연합·기후에너지 국장>

경향신문 생태칼럼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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