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사회(녹색 강령에 담긴 생명사상)

2006.01.17 | 환경일반

                      -녹색연합 강령에 담긴 녹색생명사상-

                                                                   최승국(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강령은 해당 조직의 비전이나 정책방향을 규정하고 있으며, 모든 활동의 기본 지침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령을 통해 조직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목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녹색연합의 강령은 어떤 목표와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 녹색연합 강령에 담긴 녹색생명사상을 확인하는 것은 우리 운동의 방향을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녹색연합의 강령에는 녹색생명운동과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사회상에 대해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우선 강령에 나타난 녹색생명 사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강령 전문 첫 구절을 보면  “자연을 거스르는 문명에는 인류와 생태계의 미래가 없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녹색생명운동의 깃발을 들고 뭉쳤다. 녹색은 생명과 평화이다. 녹색은 다양성 존중과 생태계 순환에 바탕을 둔다.”고 하였다.
또한 “우리는 지구와 생태계,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긴다. 숲과 나무, 하늘과 바다, 물과 갯벌, 우주에 깃든 존재는 우리와 한 생명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강령 전문의 앞 구절에서 녹색연합(우리)은 인류와 생태계의 미래를 위협하는 문명, 즉 자연을 거스르는 문명에 대항하기 위해 ‘녹색생명운동’을 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녹색의 정체성으로 생명과 평화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4대 강령의 머리 부분에 ‘생명존중’을 올려놓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현재 한국 사회를 비롯한 인류 문명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연을 거스르는 문명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의 미래뿐만 아니라 생태계, 즉 지구공동체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는 기존에 존재하는 어떤 형태의 철학이나 이념, 사회구성체로는 극복할 수 없으며 녹색생명사상(녹색생명운동의 바탕이 되는 사상)을 통해서만 극복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사회구성체와 그 바탕이 되는 이념으로는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 부분에 대해선 강령에 직접 언급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강령이 담고 있는 내용이 일정정도 논리의 비약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강령(綱領)이라는 단어의 사전에서 담고 있는 의미가 ‘일의 으뜸 되는 줄거리이며, 정당이나 단체의 기본 목표 ․ 정책 ․ 운동 규범 등을 정한 것’이고 보면 이 같은 논리 비약은 불가피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강령해설서’ 작업을 할 때 충분한 풀이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의 입장에서 기존의 사회형태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이유를 아주 간편화시켜 보고자 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물론이고 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까지, 이들 국가와 사회가 추구하는 최우선의 목표는 오직 경제 측면에서 풍요를 누리는 것이며, 강성대국을 만드는 것이다(물론 일부 국가는 이렇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이 부분은 녹색생명운동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렇기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연의 파괴는 물론 전쟁도 불사한다. 그들의 눈에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그리 소중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자연의 질서를 지키는 것은 더더욱 불필요한 잔소리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녹색연합의 강령은 이러한 현존 질서를 부정하고 과감히 새로운 사상, 새로운 운동방식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4대강령의 첫 부분인 ‘생명존중’ 편에서 이러한 녹색생명운동(사상)과 관련하여 좀더 구체성 있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생명의 가치와 권리를 존중하여 생태계 질서의 보존과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자연과 생물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들의 서식지인 자연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활동한다.”
    “우리는 다른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간섭과 통제를 거부하며, 생명체가 인간과 시장중심의 논리로 이용되는 것을 반대한다.”
  …중략…
    “우리는 모든 생명을 위해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여 육체, 정신, 영의 건강을 되찾는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녹색생명사상은 모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함은 물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한다. 또한 다른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간섭과 통제를 거부하며 인간을 위해 다른 생명체가 이용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즉 녹색생명 사상에서는 우주를 구성함에 있어서 인간만이 중심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가치를 똑 같이 존중하고 함께 중심이 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존 환경운동과는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 분영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이루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모든 생명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녹색생명사상은 현대문명과 과학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향하고 있는 방향에 대한 대단히 강력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비록 강령에서 담고 있는 녹색생명사상의 틀이 완결성을 갖추고 있진 못하지만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녹색생명운동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규정하고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다음은 녹색생명운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사회상과 이를 실현해 나가는 방안에 대해 확인해 보기로 하자.  녹색연합은 녹색생명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이지만 강령에서 추구하는 바는 부문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이나 변혁운동의 영역을 뛰어 넘는다. 그렇다고 정당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정치형태를 규정하고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녹색세상을 꿈꾸고 있으니 정당보다 한 차원 높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시민단체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의 근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녹색연합이 추구하는 운동의 종착지이자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녹색세상>이다. 녹색세상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녹색생명운동을 통해 이루어 내야 한다.  녹색세상은 다양성을 존중하며 생태계가 순환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녹색세상의 정치형태는 시민참여와 생활 자치를 통해 이루어내는 녹색정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참여민주주의와 자치, 분권의 실현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생태마을, 생태도시, 녹색공동체를 통해 이루어내는 환경자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눈여겨 볼 점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폭력과 전쟁을 반대한다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기존에 존재해왔던 사회구성체와 분명한 차이점을 보이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경제구조를 살펴보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왜곡된 경제체제를 극복한 ‘생태순환형 사회’를 모델로 제시하고 있으며, 다양성의 존중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절제된 녹색소비를 통해 소박하고 작은 것이 아름다운 생활양식을 정착시켜 나갈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경제구조에 있어서의 구체성은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한 생태마을, 생태도시 등의 환경공동체도 경제구조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녹색세상이 바라는 문화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문화이다. 이러한 문화의 모델은 오래된 미래에서 찾고 있으며 이를 계승 발전할 것을 요구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녹색세상은 기존의 사회질서를 부정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어떤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로도 설명하기 힘든 새로운 세상을 담고 있다. 이 꿈을 이루려는 활동은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는 실로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나의 고민, 아니 녹색연합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녹색세상은 부문운동으로써 환경운동만 잘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또한 조직에 속한 사람들만 환경 친화성이 강한 삶을 실천한다고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녹색세상을 이루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국제 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 내야 한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 내야 한다. 신자유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현재 존재하는 정치, 사회 구조 속에서 녹색세상의 그림을 그려낼 수 없음은 앞에서 이미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녹색세상에 집착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오늘과 같은 운동의 형태로는 이 사회를 제대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시민운동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회의 근본을 바꾸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아니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전체 사회상에 대한 그림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운동이 대중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야 하고, 전체보다 부문 운동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각 운동들이 지향하는 공통의 방향이 무엇이며,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사회에 대한 상을 그려내지 못할 경우 각 단위 운동들의 성과를 모아낼 수 없고, 각 단위 운동을 지탱해 줄 뿌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의 술수에 의해 전체 운동이 좌초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일본의 운동이 그러했고 현재 한국의 상황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신자유주의 파고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고 그 앞에 농업, 어업, 노동, 문화 부문 등 모든 가치가 파괴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힘은 갈수록 분산되고 약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론에 대항할 논리마저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젠 우리 곁엔 기득권 세력의 논리에 항변할 제대로 된 전문가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 많던 과거의 논객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내 이야기가 지나친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운동진영이 힘을 합쳐 녹색세상의 그림을 그려내는 것의 필요성은 굳이 강령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겐 절박한 과제인 것이다.

또 한 가지 고민(질문)이 더 있을 수 있다. 그럼 이 일을 왜 녹색연합이 시작해야 하는가? 녹색세상은 우리만이 이룰 수 없는 과제이고 전체가 같이 움직여도 될까 말까한 일인데 말이다.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가 먼저 고민을 시작했고 감히 녹색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창립선언문과 강령에서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만이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하면 주변이 움직일 것이고, 주변이 움직이면 지역사회가 움직이고, 이러한 움직임에 전체사회 사회가 공명할 것이고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모아질 것이다. 첫 출발은 ‘녹색세상’이라는 것의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녹색생명위원회를 만들고 오늘과 같은 활동을 하는 것은 녹색세상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는 아주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위에서 우리 사회에 흩어져 있는 지혜를 하나로 모아내면 녹색세상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그림의 초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 그림이 만들어지면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에 대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분명히 녹색연합이 녹색세상을 만드는 역할의 다 끌어안고 갈 수는 없다. 전체 운동 조직들 사이에 역할분담이 있을 것이고, 녹색연합도 녹색세상이라는 퍼즐을 맞추는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또한 녹색세상이라는 상이 되어가는 모습을 살피고 발전시켜 나가는 정책 집단을 별도로 구성하게 될 것이고 이를 사회 속에 투영시켜 나가는 조직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우리가 할 수 없는 큰일이라고 손 사례를 칠 필요도 없다.

‘녹색이 희망이며, 녹색생명운동이 그 희망을 현실로 바꾸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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