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녹색연합이 간직했으면 하는 녹색운동의 열쇠말

2013.03.11 | 환경일반

※ 이 글은 2011년, 녹색연합 후원의 밤에서 발표한 녹색연합 운동이 간직할 다섯가지 열쇠말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 내 아이가 간직했으면 하는 열쇠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살아가는 열쇠말은 무엇인가요?

녹색연합이 꿈꾸는 세상은 하나의 가치관으로 획일화된 사회가 아닙니다. 서로가 다른 꿈을 꾸는 세상, 서로가 다른 가치관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세상. 그러나 차이를 존중하며,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가며 함께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다양한 빛깔이 어울려 아름다운 가을 산을 만드는 것처럼 차이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세상. 짓밟고 빼앗는 세상이 아닌, 채우고 나누는 세상을 향한 여정을 여러분과 함께 걷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그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기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한 어르신이 계십니다. 이 어르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가요?
저는 그분들이 흘려온 땀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삶을 보잘 것 없다고 여기시는 많은 어르신들을 뵙습니다. 현 사회가 들이대는 세상의 잣대와 견주어 그런 감정을 느끼시는 많은 어르신들께, 아니라고 당신들께서 흘린 땀의 가치로 지금 세상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한 아이의 아빠로 한 사회의 어른으로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자존감을 지킬 때, 우리는 자본이 유포하는 허황된 잣대에 자신을 맞추며,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차이를 존중하며 다름의 공존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아이들이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경험을 체득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흘린 땀의 가치를 지금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온 몸으로 깨달을 때 우리는 올곧은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1991년 각기 다른 3단체가 세상에 첫걸음을 뗍니다. 부지기수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실패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이 온전히 보전된 현장이 주는 경이로움을 경험하며, 파괴되는 자연의 아픔을 경험하며, 그 속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회노애락을 같이 했던 이웃들과의 반목에 아파하는 지역 주민들의 삶을 경험하며, 단체는 20년을 살아냅니다. 단체가 살아온 20년의 경험은 지나간 경험에 머물지 않습니다. 몸으로 체득한 경험은 오늘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현실에서 재해석하며, 나아갈 방향의 나침반으로 작용합니다. 녹색연합이라는 이름에 자존감을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다양한 현장 안에서 부대끼며, 체득한 경험이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자존감. 이것이 우리가 함께 걸어갈 여정에 있어서 첫째 열쇠말입니다.

녹색연합은 시민들이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그래서 진정 녹색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데 함께 하고자 합니다. 녹색연합이 2011년 새롭게 시작한 녹색아카데미, 그린컨퍼런스-전환의 상상력은 하나의 사례입니다.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 스스로 자존감을 높여가기 위한 다양한 매개체를 만들어갈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녹색연합의 20년의 핵심은 현장을 중심으로 한 활동에 있습니다. 우리가 발딛고 사는 현실을 떠나서 올곧은 자존감을 세울 수 없기에 앞으로도 녹색연합은 현장을 중심에 둔 활동을 펼쳐나가고자 합니다.

1994년 3단체가 모여 하나의 단체를 만듭니다. 녹색운동이 낯선 시기, 단체는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많이 해내고, 그것을 실천해 냅니다. 수질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추운 겨울날 한강물에 들어가기도 하고, 지금은 일반화되어 있으나 당시에는 낯설었던 깃대종과 백두대간의 개념을 운동의 한 분야로 끌어와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친근한 단어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어렸을 때 항상 입던 내복이 어느 시점 부끄러운 일로 치부되던 사회분위기에 명동과 종로 거리 한복판에서 내복입기 캠페인을 벌여, 지금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겨울에 내복을 꼭 입어야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상상력. 이것이 우리가 함께 걸어갈 여정에 있어서 둘째 열쇠말입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계를 긋지 않고, 다양한 시도들을 해야 합니다. 기존의 관습, 시각을 뛰어넘기 위해 우리는 상상력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습니다. 상상력은 아주 기발한 그 무엇이 아닙니다. 기존의 방안을 약간 비트는 것일 수 있으며,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의 결합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궤도를 이탈하는 것, 상식이라 받아들이는 것에 의문을 품고 새롭게 바라보는 것. 이 모든 것에서 상상력은 시작됩니다.

녹색연합은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더 이상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를 자연에 돌려주는 일, 한국, 북한, 중국, 일본의 청소년들이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를 바라보며, 전쟁의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동북아의 평화를 함께 노래하는 일, 지역에너지디자인학교를 통해 에너지자립을 꿈꾸는 마을들이 전국에 뿌리내리는 일 등. 하나의 시각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시각으로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우리 사회에 생기를, 한반도의 생태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2000년 녹색연합은 하나의 영역이 아닌 독립된 부서로서 시민참여국을 만듭니다. 이는 더 이상 기발한 아이디어나 활동가들의 노력만으로 세상을 녹색으로 물들이기가 어렵다는 깨달음의 표현입니다. 회원들과 소통을 통해 ‘녹색은 생활이다’라는 멋진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지역주민들과 부단한 소통을 통해 참여를 이끌어낸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을 여러 숲길 중 단연 돋보이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통과 참여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며, 이제 막 첫발을 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소통과 참여. 이것이 우리가 함께 걸어갈 여정에 있어서 셋째, 넷째 열쇠말입니다.

소통은 공유와 공감을 통해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입니다. 소통을 위해서 우리는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차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어느 쪽이든 자신이 제시한 결론을 그대로 관철하기보다는 차이를 존중하는 속에서 나오는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합의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전제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서 우리는 편견을 버려야 하며 현재 상황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 하나가 거대한 태풍이 될 수 있다는 나비효과이론은 무한 피드백과 초기조건의 민감성을 강조합니다. 이를 우리의 운동에 적용하면, 소통이 끊이지 않고 계속될 때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과 소통을 임하는 우리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나비효과이론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변화의 가능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확정적 단어가 아닌, 여지를 열어놓는 이야기를, 생각이 넘나들 수 있는 소통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결론을 함께 만들어갈 훌륭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소통이 가능할 때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을 움직여, 변화를 일구어낼 수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지난 20년 녹색연합이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씨앗이었다면, 앞으로 녹색연합은 녹색의 씨앗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대지이고자 하며, 자연과 사람, 지역과 도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녹색연합은 녹색운동의 플랫폼이 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진행할 계획입니다. 아직 무엇이 정답인지 찾지는 못했으나, 회원, 시민들과 가능성을 확장해나가는 소통의 방안을 만들어갈 것이며, 회원, 시민들이 직접 운동을 기획하고 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는 시공간을 확대해나갈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2011년은 녹색운동 진영이 해결해야할 과제가 모두 쏟아져 나온 한해였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짓밟으며 사육되는 공장식 축산업이 불러온 구제역 재앙, 핵발전소의 위험을 전세계인들이 다시 한번 깨닫게 한 후쿠시마 원전폭발, 한 나라에 주둔하는 외국군의 환경문제를 일깨운 캠프 캐롤 고엽제 불법 매립 증언, 그리고 대형토건 국책사업의 폐단을 보여주는 4대강 사업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단체가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알기에 녹색연합은 연대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 활동해 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연대는 쉽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네 가지 열쇠말이 빛을 발할 때, 진정한 연대도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대. 이것이 우리가 함께 걸어갈 여정에 있어서 마지막 다섯째 열쇠말입니다. 한 단체의 힘만으로 개개인의 힘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 하나의 물방울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흐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연대입니다. 진정한 연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구슬을 꿰는 실처럼, 개개의 물방울들을 하나로 잇는 줄기가 필요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회가 부여하고, 스스로 쌓아 올린 권위와 권력을 버리는 것입니다. 헛된 명성, 권위, 권력을 버릴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를 변화시킬 흐름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지배가 없는, 권위와 권력이 없는,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자치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는 개개인들의 진정한 연대. 여기에 연대의 힘이 연대의 즐거움이 있음을 압니다. 지난 20년의 역사와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 미래를 준비함에 있어서 녹색연합은 이러한 연대의 가치를 놓지 않고 더 풍부하게 해 나갈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땀 흘린 만큼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세상,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공존하는 세상,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 그 세상을 향해 다섯가지 열쇠말을 가슴에 품고 녹색연합은 여러분과 함께 점점 활기차게 나아갈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