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네 13년차 캠핑이야기

2013.06.24 | 행사/교육/공지

직장을 그만두고 쉼이 필요했던 시기,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 가족 캠핑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가족 캠핑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첫 캠핑에 동행하신 친정 엄마는 불편하셨는지 다시는 안가겠다고 선언하셨고, 시부모님과 형제들은 함께 하다가도 잠 잘 시간만 되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캠핑의 선호도는 달라지지 않았고, 남는 건 우리 4식구뿐이다.

희미한 불 빛 아래 머리를 맞대고 모여 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보면 그 자리는 서로의 요구사항을 협상하기 위한 회담장이 되기도 하지만, 늘 즐겁게 마무리된다. 이 시간만큼은 핸드폰이 없어도, 시계가 없어도 세상일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러진 나뭇가지와 돌멩이, 솔방울 하나로 즐겁게 노는 방법 터득한다. 캠핑장에서는 마주치는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이웃이 되고, 세상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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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여름에는 계곡 트래킹을, 봄과 가을에는 산으로 들로 캠핑을 다니는데 캠핑의 백미는 단연 겨울캠핑이다. 추위로 이겨내는 극한의 기쁨이랄까? 최근 캠핑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추위를 견디기 위한 방법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 눈에 띈다. 몇 년 전부터 각종 난방용 전역기구들이 심심치 않게 늘어나고 있다. 전기스토브와 전기장판까지 등장했다.

우리 가족은 캠핑 초기에 난방용 보일러를 직접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설마 되겠어’ 하는 주위의 시선을 무시하고 천막지, 실리콘 호스, 청 테이프, 시댁에서 버리려던 압력밥솥 얻어 수증기를 이용한 수제 난방보일러를 제작했다. 성능도 탁월한데다 둘둘 말아 차에 실어 버리니 그만이나 보관도 간편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 장비를 사지 않고, 고장나면 고치고, 붙이고 하는 사이 우리 보일러는 세상에 둘도 없는 골동품이 되었다. 초등학생이었던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우리 가족이 함께 한 자연의 추억의 고스란히 담긴 골동품이다.

캠핑장마다 편의시설과 전기시설을 넉넉지 갖추다 보니 마치 조그만 도시를 옮겨온 것 같다. 집에서 누리는 모든 편리함을 캠핑장에서도 누리려 하는 모습들도 자주 눈에 띈다. 밤에도 텐트마다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고, 전기 커피 머신을 들고 와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기고, 일회용품과 음식물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자연 속에 들어온 모습이 도시에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잠시 휴식을 즐기다 시간이 되면 떠나버리는 도시인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10년 전 개인 선산 일부를 개방하는 곳에서 두 밤을 묵게 되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지는 낙엽과 바람소리가 환상적인 곳이었다. 갑자기 눈이 오고 추워지니 따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낮에 밭에 뽑지 않고 남아있던 배추 생각에 주인어르신께 여쭤보니, 능력이 되면 다 뽑아가도 된다며 진담을 농담처럼 하셔서 우리도 다 뽑아가겠노라 호언장담을 했다. 이른 아침부터 빨리 배추를 뽑으라는 어르신의 성화에 배추를 뽑긴 뽑았으나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결국 캠핑 장비를 다 어르신께 맡기고 배추를 한 차 가득 싣고 돌아오게 되었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그곳은 우리가족과 많은 추억을 함께한 휴식처가 되었다. 그런데 주인어르신이 돌아가신 이후 각종 편의시설과 큰 매점이 들어오고, 번호표까지 붙여진 캠핑장으로 변하게 되면서 우리는 이제 그곳을 찾아가지 않는다.

캠핑 13년차 우리 가족의 모습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모닥불을 피우는 횟수도 예전보다 줄었고, 고기대신 고구마나 옥수수를 구워 먹는다. 아이들도 익숙해졌는지 핸드폰이 없어도 불평하지 않는다. 장비도 점차 간소하게 줄여가고 있으며, 되도록 고쳐 쓰려고 한다. 상차림도 최대한 조리가 간단한 것으로 바뀌었다. 합성세제 대신 이엠 비누를 가지고 다니며, 사용 후에는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놓고 온다.

우리가 잃어버린 녹색을 자주 보게 해주는 캠핑. 바람이 있다면 우리 가족과 더불어 모든 이들이 녹색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자연에 다른 색을 물들이지 않고, 스쳐 지나가기만 했으면 좋겠다.

 

글과 사진 / 이정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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