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차없는 날] 오늘부터 “실례합니다”

2013.09.09 | 행사/교육/공지

“뭐야~”

주위 사람의 불쾌지수를 한꺼번에 확 끌어올린,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신경질적인 말이다.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퇴근시간, 빡빡한 사람 속에 정차할 때 한쪽으로 쏠려 중심을 못 잡은 아저씨가 손잡이를 잡으려다 그녀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은 왼쪽 30도로 비틀며 눈동자는 온 힘을 다해 왼쪽으로 흘기며 “뭐야~” 라고 하였다.

나보다 한참 어린 대학생 같은데 참 대단한 용기로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껴서 겨우겨우 두 발로 자기 영역을 세우고 가고 있는데 그냥 툭 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런 눈초리로 “뭐야”를 내뱉을 수 있다니. 오~

그 후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된 50대 아저씨가 저음의 굵직한 목소리로 그 젊은 여성을 나무랐다.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툭 건드렸다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젊은 사람이 참…”

아저씨의 높아진 음성을 듣고 함께 있던 남자친구(로 보이는 이)가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자신을 혼내는 아저씨를 계속 흘겨보았고 다시 아저씨는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 무엇이 잘 했다고 그렇게 계속 보냐며 그녀를 나무라고 있었다. 그녀의 활활 타오르는 눈빛도 사그라지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녀를 끌어 옆 칸으로 이동하면서 상황은 한 단락 마무리 되었다. 아저씨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이 상황의 분통함을 토로하면서 그 역시 목소리가 커져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있었다.

출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말싸움을 하는 광경을 여럿 보고 있었지만 다툼이 있은 후 주변 사람에게 사과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 핸드폰을 보는 척하며 두 귀를 쫑긋 세워 아저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을 가보면 살이 부딪히기만 해도 “I’m sorry” 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말을 어색해 한다. 우리도 배워야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그 인연을 너무 반갑지 않게 생각 하는 것 같다. 같은 시간에 같은 칸에 타, 같은 목적지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면 모두 인연이 아닐까.

급정차할 때 몸이 한쪽으로 쏠리면 서로 넘어지지 않게 받쳐주는 거다. 혹시 정차할 때 옆에 사람이 중심을 못 잡아 툭 치기라고 하면 “뭐야~” 대신 난 다 이해한다는 의미로 방긋 입 꼬리를 올려주는 거다.

그리고 문이 열릴 때 급하게 밀치며 “아우 잠시만요!” “잠깐만요!” “저 좀 내릴게요!” 대신 “실례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

여름철 땀으로 끈적한 살이 부딪쳐서 상쾌하진 않아도 어쩌겠는가? 상대방도 나의 끈적한 살이 닿아 마찬가지로 불쾌할 텐데.

겨울철 쾌쾌한 앞 사람의 패딩 냄새를 맡아도 어쩌겠는가? 내 패딩 모자 복슬복슬한 털이 내 뒤의 사람 코를 간지럽히고 있을 수도 있는 걸.

비 오는 날 남의 젖은 우산이 내 다리를 적시어도 어쩌겠는가? 걸으면서 튀나 남의 우산에 젖나 똑 같은 비인걸.

지하철에 이해심을 더해서 타야 할 것 같다.

바로 오늘부터, 실례합니다.

바로 오늘부터, 방긋!

글 / 김은선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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