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야생고양이와 함께 겨울나기

2018.02.09 | 행사/교육/공지

밥을 챙겨주는 길고양이가 생겼습니다. 녹색연합 사무실 텃밭과 자담을 드나드는 고양이입니다. 유난히 춥고 혹독한 이번 겨울,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고양이에게 사료와 물을 챙겨주기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라도 피하라고 스티로폼 박스와 현수막, 담요로 고양이 집을 지었습니다. 어쩌다 마주칠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가기 바빴던 고양이는 이제 아침마다 뒷문 앞에 앉아 야옹야옹 녹색연합 활동가들을 부릅니다. 소박한 사료 그릇과 물그릇은 우리에게 ‘관계’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뒷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

 

#1 길고양이 무지랭이 활동가와 길고양이의 관계

야생동물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지속해온 야생동물 보호 활동 덕분에,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야생동물의 발자국이나 똥만 봐도 그가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 대강은 알 수 있었거든요. 그러나 길고양이와 관계를 맺으며 알게 된 것. 도시의 야생동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길고양이가 임신을 한 것 같아 큰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바람과 눈, 비를 막을 수 있는 재질로 집을 만들고, 두툼하고 폭신한 패딩을 넣어주었습니다. 이정도면 새끼를 낳아 기를 수 있겠지 하며 뿌듯해했는데, 사실 길고양이 집은 그렇게 크게 지어주면 안된다고 합니다. 경계심이 많고 주변 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하는 길고양이에게는 커다란 집보다 자기 한 몸 꼭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의 집이 알맞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사료나 물그릇을 놓아주는 위치마저도 그들의 생존 본능과 나란한 방향으로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 그들은 야생동물이니까요.

날이 추워 꽁꽁 언 고양이 물

열심히 만든 고양이집. 세 채나 있습니다.

#2 활동가와 활동가, 겪어보지 않았던 문제

녹색연합 활동가 가운데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활동가가 있습니다. 고양이가 자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활동가는 뒷문출입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지만, 녹색연합 활동가들의 책상에는 개인 쓰레기통이 없습니다. 쓰레기는 뒷문 밖의 쓰레기봉투와 재활용품 분리수거함에 나누어 버립니다. 일을 하다가 한 숨 돌리기 위해 찾는 곳도 이 자담입니다. 뒷문 출입이 어려워지며, 활동가는 많이 불편한 상황입니다. 다른 활동가들이 집과 사료의 위치를 조금 멀리 옮겨보았지만 여전히 고양이는 뒷문 앞에서 기다립니다. 고양이를 보고 놀라는 활동가와, 놀라는 활동가를 보고 함께 놀라는 고양이. 서로를 해치지 않는 거리를 배우고,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고민하지만, 아직 신통한 해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밥 주는 곳을 조금 뒤쪽으로 옮겼어요

#3 도시의 야생동물과 인간동물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면서도 걱정이 됩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가 길고양이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추운 겨울만큼은 좀 덜 힘들게 보내도록 신경 쓰고 있지만 언제까지 길고양이를 챙겨줄 수 있을까. 야생의 동물에게 우리는 먹이를 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돕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도시의 야생동물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할까요?

 

아침마다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치는 비둘기, 좋아하시나요? 비둘기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을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사실 별 관심 없는 사람이 제일 많겠지요. 다음에 비둘기와 마주친다면, 발을 자세히 보아주세요. 발가락이 하나 없거나 반쯤 남아있는 비둘기가 많을 거예요. 도시에 가득한 보도블럭에 끼이고, 사람들 발에 밟혀 발가락이 하나 둘 잘려나간 흔적입니다. 우리는 비둘기의 삶에 크게 관심이 없지만, 사실 비둘기는 도시의 커다란 사람들 속에서 작은 몸을 지탱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야생동물’하면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영상들과 먼 산, 바다가 떠오르지만 사실 우리는 도시에서도 이런 비둘기와 같이 수없이 많은 야생동물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연민은 주로 개나 고양이에게만 집중되지만요.

햇볕 아래 식빵굽는 고양이. 옆에는 활동가가 놓아준 핫팩이예요.

추운 날씨는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동일하겠지요. 너무나도 추운 날씨에 동상에 걸린 채로 구조되어 병원에 가는 개와 고양이가 많다고 합니다. 이토록 추운 날씨에 도시의 야생동물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고 걱정됩니다. 연민과 혐오 사이, 그들과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이 됩니다. 다가올 봄을 길고양이와 함께 기다리며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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