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녹색의 눈 / 2001녹색연합 두만강녹색순례

2002.05.29 | 녹색순례-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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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에 ‘푸른 물’은 없다
                                                                          
                                                                           녹색연합 정책실 국제연대 이유진

녹색연합과 중국연변록색연합회 활동가 14명이 6월18일부터 6박7일 동안 두만강 중류인 개산툰에서 백두산 천지까지(250km) 두만강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5월, 비무장지대(DMZ)녹색순례에 이은 두만강녹색순례는 통일시대 한반도의 환경문제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 첫발걸음으로 녹색연합은 두 지역을 온전히 걸어서 순례하는 방법을 택했다. 발로 디디면서 온 몸으로 느끼고 경험한다는 것.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자체를 몸으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와 두만강이 지금은 국경이지만 모두 우리 겨레의 삶터인 우리 땅이다. 현재 비무장지대는 유엔사군사정전위의 관리아래 있고, 두만강은 러시아, 중국, 북한이 공동 관리하는 국제하천으로 두 지역 모두 1개국 이상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있다. 남북화해분위기에 맞춰 비무장지대 개발계획이 속속 발표되고 있고, 두만강도 UNDP두만강개발계획의 중심에 있다. 우리가 비무장지대와 두만강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통일된 푸른 한반도’를 꿈꾸기 때문이다.
두만강의 초여름, 산과 들은 온통 푸르다. 막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 초록색의 어린 모는 가을의 결실을 기약하며 한들거리고 쟁기를 끄는 소 뒤를 따르는 농부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산세도 그 산을 휘감는 강물도 강원도 영월의 뭇 산골과 다르지 않다. 돌팔매질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건너편 마을이 처절한 피바다의 소용돌이 속에 갈라진 북한 땅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개산툰에서 처음으로 두만강을 만났다. 두만강물에 손을 적셔보려고 강둑으로 달려갔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코를 감싸쥐게 만드는 지독한 악취와 개산툰화학섬유펄프공장(이하 개산툰펄프공장) 하수관에서 뿜어 나오는 엄청난 양의 폐수에 모두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수구 아래는 화학성분이 덩어리 째 굳어 썩어있고, 짙은 황색과 보라색의 폐수가 유입된 두만강은 색색의 물감을 푼 것 같다. 이것이 두만강의 오늘이었다.
일년에 3천만 톤의 폐수를 쏟아내는 개산툰펄프공장은 하류에 위치한 석현종이공장과 더불어 중국에서 두만강에 흘러드는 산업폐수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공장의 유일한 정화시설인 여과기에 ‘펄프찌꺼기’만 대강 걸러낸 채 시커먼 물을 그대로 두만강에 흘려 보내고 있다. 중국정부가 2000년까지 정화시설을 갖추지 못한 공장에 대해 폐쇄명령을 내려, 실제 연변과 두만강유역의 소규모 화학, 제지 공장이 속속 문을 닫았다. 하지만 개산툰펄프공장과 석현제지공장은 공장을 폐쇄할 경우 주정부의 재정수입이 큰 타격을 받는데다 실업에 대한 부담 때문에 연변자치주에서 중앙정부의 특별고려를 요청한 상태다.
“개산툰펄프 공장의 직원이 6천 8백 명이고 이 공장에서 지급하는 퇴직연금으로 살아가는 퇴직자가 3천3백 명입니다. 그 중에서 68퍼센트 정도가 조선족인데 공장을 폐쇄하면 당장 1만 명이 굶어죽을 판입니다.”
순례에 동행한 연변인민방송국 편집부주임 리창순 씨의 말대로라면 공장을 폐쇄해도 죽고, 이대로 강이 썩어도 죽는 것이다. ‘환경’과 ‘생존’의 문제를 같이 풀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중국의 가장 큰 화두는 돈을 버는 것이다.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산간 오지에서 도시로, 돈을 벌기 위한 대이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그 변화의 물결 속에 조선족 동포들도 예외가 아니다. 민박을 했던 마을에서 한국으로 돈벌이를 나간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행여 불법체류자로 잡히지나 않았는지 조바심에 마음 졸이며 사는 조선족들을 수없이 만났다. 어떤 마을은 한국으로 돈벌이를 간 가족을 둔 가구가 반 이상일 정도였다. 두만강에 대해 물으려고 밭가는 한 아저씨에게 말을 붙였더니, 대뜸 자식 대학 보내려고 한국으로 일하러간 아내가 몇 달째 소식이 없다며, 어떻게 좀 연락할 수 없겠냐고 통사정한다. 차마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지금도 한국정부는 한국이란 나라가 두만강 너머 연변조선족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족 마을마다 부서진 큰 건물은 죄다 ‘학교’다. 백금소학교의 김웅기 교감은 “1992년까지 150명이던 학생이 해마다 20명씩 줄더니 이제 78명밖에 남지 않았다”며, “작년 1학년 입학생이 9명인데 올해는 입학대상자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게다가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려면 용정으로 가야하는데, 졸업생의 반은 돈이 없어 소학교 졸업으로 그친다. 입학금 천 위엔(16만원)을 농사짓는 변방의 시골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게다. 이 와중에 북흥희망소학교에는 한 일본인이 사백만 엔을 학교에 기부했다는 기념비가 운동장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 또 한번 우리를 낯뜨겁게 했다.

아픈 다리만큼이나 저린 가슴을 안고 순례단은 두만강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갔다. 무산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두만강은 마치 연탄 몇 트럭을 강물에 부어 휘저어 놓은 것 같은 잿빛이다. 철광을 분리하고 남은 돌가루를 그대로 두만강에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무산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등성이는 층계층계로 깎여 있고, 그 단 위로 수십 여대의 불도우저가 노천에서 철광석을 캐 올리고 있다. 이곳이 바로 아시아 최대의 철광산지인 북한의 무산철광이다. 무산 철광은 한 해 생산능력이 5백만 톤인데, 철함량도 높아 100kg의 암석을 채굴하면 65kg의 철을 얻을 정도라고 한다. 인수동에서 만난 김일룡(53)씨에 따르면 두만강에 돌가루 물이 내려오기 시작한 것은 69년도부터라고 한다. 그 때 당시 두만강은 천지만큼이나 새파란빛이었고, 말십조개와 뱀장어가 강바닥에 깔린 자갈만큼이나 많았다 한다. 조개는 73년 이후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두만강의 오염은 안 그래도 살기 힘든 변방 주민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들고 있었다. 두만강 가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허보옥(56)씨는 “두만강 물로 농사지으면 논바닥에 온통 깡치(돌가루)가 꽉 차서 못 써. 예전엔 이 일대에 논농사가 그득 했는데, 지금은 물도 오염되고 또 물이 없어서 논농사가 안돼.”하며 한숨지었다. 허씨의 논밭 가에는 논에서 퍼내 쌓아놓은 돌가루가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두만강 물이 처음으로 유입되는 논은 아예 농사를 짓지 않는다. 농사도 안될 뿐 아니라 돌가루를 1차적으로 침전시키기 위해 그냥 땅을 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돌가루가 들어와 땅이 굳어버리면 벼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해 수확량이 줄어든다.
돌가루는 농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생산한 전력 모두를 북한에 공급하고 있는 두만강 중상류에 있는 백금 발전소에서는 8년에서 10년에 한번 가는 터빈을 해마다 교체하고 있다. 돌가루가 터빈을 마모시키기 때문이다. 일 년에 터빈을 교체하는 데만 10만 위엔이 들어 당연히 이문이 적다. 발전소 직원들이 터빈에 쌓인 돌가루를 날마다 물로 씻어내고 삽으로 치우는 것이 큰일이라고 한다.

설마 이렇게 시꺼먼 물만 보다 순례가 끝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의구심이 들 무렵, 순례 6일째에  우리는 드디어 두만강의 넘치는 ‘생명력’과 ‘희망’을 보았다. 천혜의 원시림 속에 둘러싸여 강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디맑은 두만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순례단은 환호성을 질렀다. 지난 DMZ 녹색순례를 끝내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자연이 아픈 곳을 내디딜 때면 우리 의 몸과 마음이 함께 아파 오고,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이 살아있는 곳에서는 우리 역시 숨통이 트이고 다리에 힘이 붙는다고, 기실 사람과 자연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그 말이 정말 사실인 듯하다.
백두산 기슭, 두만강 발원지에서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난다. 중국과 북한의 공동경비구역에 위치한 이곳은 두만강(강이라고 할 수도 없다) 폭이 채 30cm도 되지 않아 폴짝 뛰면 넘나들 수 있을 정도다. 흐르는 물, 바람, 구름, 그리고 야생동물에게 있어서 인간이 정치적으로 나눈 국경이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두만강 녹색순례는 아마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었나 보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아버지들의 애창곡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처럼 두만강은 여전히 푸르다. 하지만 지금 두만강에는 ‘푸른 물’도 ‘뱃사공’도 없다. 두만강은 그 푸른 빛깔을 이미 30년 전에 잃어버렸으나 두만강만이 여전히 푸르고 낭만적이길 바라는 우리의 바람만 있을 뿐이다. 냉정히 보면 지금 두만강에는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을 만큼 오염된 물과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조선족 동포들이 있다. 두만강녹색순례는 끝났다. 하지만 두만강을 가슴 가득 담고 돌아온 우리의, 맑은 두만강을 찾기 위한 또 다른 순례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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