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이틀째 – 산과 강은 하나였다

2004.05.14 | 녹색순례-2004

태백산 도립공원 입구에서 출발하여 하루 종일 걸었건만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태백시를 벗어나 삼척시 경계로 들어왔다. 태백산의 중심에서 덕항산을 지나 댓재 아래까지 들어왔다. 삼수 발원지라는 피재(삼수령)를 지나서 한강 발원지 검용소 옆을 지나고 광동댐의 한 자락을 스치며 삼척 번천리까지 들어왔다.

아침에는 광산에서 관광지로 변모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개발열풍에 휩싸인 동네에서 순례를 출발했고, 저녁에 도착한 곳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없이 농사에만 열중인 동네로 들어왔다. 다만 과거에 비해 농사를 좀더 규모 있게 짓고 있는 것을 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변화가 더딘 동네인 셈이다.

※ 순례여정
태백산 당골 광장 – 태백시내 – 피재 – 건의령(한의령) – 태백 상사미동 – 광동댐  – 번천분교(삼척시 하장면 번천리)

태백산 도립공원 입구에서 출발하여 하루 종일 걸었건만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태백시를 벗어나 삼척시 경계로 들어왔다. 태백산의 중심에서 덕항산을 지나 댓재 아래까지 들어왔다. 삼수 발원지라는 피재(삼수령)를 지나서 한강 발원지 검용소 옆을 지나고 광동댐의 한 자락을 스치며 삼척 번천리까지 들어왔다. 아침에는 광산에서 관광지로 변모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개발열풍에 휩싸인 동네에서 순례를 출발했고, 저녁에 도착한 곳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없이 농사에만 열중인 동네로 들어왔다. 다만 과거에 비해 농사를 좀더 규모 있게 짓고 있는 것을 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변화가 더딘 동네인 셈이다.



오전에는 태백 시내의 번화한 지역을 지나쳐 왔다. 31번 국도 태백-삼척 구간으로 접어든 뒤부터 시가지의 모습은 조금씩 사라지고 전형적인 강원도 산골의 모습이 나타났다. 태백 일대에는 백두대간 자락이건 어디건 도로와 가까운 곳은 예외없이 조림지가 나타났다. 일본잎갈나무를 심은 곳이 대부분이고, 간혹 자작나무나 아까시나무를 심었다. 70년대와 80년대 한창 석탄 경기가 좋았던 시절, 광산개발 때 지하갱도용 버팀목으로 쓰기 위해 산자락이나 도로 근처의 많은 숲을 베었다. 주로 태백, 정선, 영월, 삼척 같은 백두대간 자락이었다. 이때 나무를 베고 난 뒤 정부가 빠른 시간에 산림녹화를 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산림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생태계에 대한 눈이나 이해가 없어서 수많은 우리네 자생종을 뒤로 하고 대표 외래수종인 일본잎갈나무(낙엽송) 위주로 나무심기를 하여 숲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지금 태백에서 삼척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자락에는 많은 외래수종들이 우리네 자생종을 포위하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폐광지역의 사면이나 경사지의 흉물스런 검은 흙을 녹색으로 뒤덮기 위한 방편으로 심은 것이다.



태백시내를 지나서 피재(삼수령)을 넘어 가는 길은 그저 고개를 하나 넘는 길이 아니었다. 낙동강 발원지를 뒤로 하고 한강 발원지로 접어드는 길이었다. 특히 피재는 두 물줄기의 시원이자 삼척에서 동해 바다로 접어드는 오십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피재를 이곳에서는 세 물줄기의 시원이 모여 있는 곳의 고개라 하여 ‘삼수령’이라 이름 붙었다. 물론 삼수령 역시 태백산의 일부다. 사실 백두대간에서 태백산이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은 여느 산과는 그 격이 다르다. 조상들은 태백산의 범위를 남쪽으로는 영주 소백산 부석사까지로 이해했으며, 북으로는 청옥-두타산까지로 바라보았다. 서쪽으로는 동강 근처까지로 삼았고, 동쪽으로는 울진 소광리나 왕피천 근처까지도 모두 태백산으로 보았다. 그래서 태백을 ‘천하의 중심’이라 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태백산을 너무 좁게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 역시 모두 태백산의 깊은 골짜기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본래 백두대간은 산과 강을 하나로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모든 물줄기의 출발은 산지에서 비롯된다. 또한 하천의 범위가 되는 유역권의 경계가 바로 산줄기가 된다. 그래서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의 경계가 구분되는 것이다. 산과 강이 다르지 않고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백두대간이다. 이런 관점이야말로 땅을 가장 생태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백두대간은 산도 강도 온전한 것이 없다. 오늘도 한강 발원지 바로 아래 강을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있는 현장을 보았다. 골지천의 하천정비 공사는 생태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하천을 파헤치고 난도질하는 공사였다. 수해복구라는 이름으로 토목사업이 얼마나 자연을 유린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한 현장이었다.
태백산 창죽동에서 삼척 하장의 광동댐으로 흘러내려가는 골지천은 골병이 들어 있었다. 지금 하천의 심장과 허파를 도려내는 공사가 물줄기 위와 아래 구별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하천의 발원지 일대도 이 모양인데 다른 수많은 강 본류와 지천은 더 말할 것도 없을 정도다.
골지천 따라 가는 태백시 창죽동 일대는 하천 정비뿐 아니라 채석광산도 만만치 않았다. 국도를 따라 가면서 눈앞에 나타난 모습은 산허리를 완전히 잘라낸 모습 그 자체였다. 백두대간의 핵심구역이라 할 수 있는 곳이지만 산을 파헤치고 생태계를 절단하는 사업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걸었다. 장장 30km에 달하는 긴 발품이었지만 어느 한 사람 낙오자 없이 무사히 삼척 번천리 폐교에 도착했다. 비가 내린 뒤 개인 하늘은 점심때가 되어서야 햇살을 비춰주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랫동안 걸은 탓에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저리지만 순례단의 표정은 밝다. 백두대간 자락마다 싱그럽게 피어나는 초록빛과 보드라운 새싹의 힘, 바다를 향해 고요히 흘러가는 냇물의 기운을 온 몸 가득 받은 탓이리라. 백두대간은 그렇게 위용한 자태와 넉넉한 품으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 현장사진은 녹색순례 2004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pilgrim.greenkorea.or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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