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여드레째 – 꼬리치레도롱뇽의 고향, 아침가리골

2004.05.20 | 녹색순례-2004

오대산 자락에서 점봉산 자락으로 넘어갔다. 백두대간에서도 가장 두메산골로 꼽히는 아침가리골을 넘어간 것이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이 백두대간에서 으뜸으로 울창한 숲 터널이라면, 아침가리 숲 터널은 그 길이와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맛에 으뜸이라 하겠다. 어디를 가도 서너 시간 숲 터널을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아침가리는 그렇게 숲 터널이 이어졌다.

마치 태백이나 정선의 탄광 지하갱도가 수백 미터 이어지듯이 숲으로 터널이 펼쳐진 것이다. 신갈나무, 졸참나무를 비롯하여 거제수, 사스레, 고로쇠나무, 음나무, 까치박달, 물박달 같은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이 터널의 대열에 줄지어 서 있었다. 오대산 아래인 홍천군 내면 광원리 월둔에서 출발한 녹색순례단은 구룡덕봉 고개를 넘어 아침가리를 거쳐 진동계곡이 내려오는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방동약수 아랫마을까지 걸었다. 오대산 자락이나 점봉산 자락이나 이 일대의 모든 계곡은 내린천에서 다시 만난다. 한마디로 백두대간의 가장 두메에 해당하는 물줄기의 집결지가 바로 내린천이다.

그런데 지난 97년 정부는 이 좋은 내린천에다 댐을 지으려 한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침가리의 생태계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다행히 인제군민들의 ‘죽기 아니면 살기’로 투쟁한 결과, 문민정부 말기인 98년 1년 김영삼 대통령의 백지화 발표로 없던 일로 되버렸다. 사실 정부가 댐을 만들려고 한 만큼 내린천 상류지역은 물이 많고 아울러 맑은 곳이다.

이 수계에 있는 지역 어디를 가나 열목어를 쉽게 볼 수 있으며 한강 최상류지역의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금강모치나 어름치도 자주 만날 수 있다. 더불어 물고기가 살고 있는 곳 더 위쪽에는 꼬리치레도롱뇽의 서식지다. 내린천으로 모이는 대부분의 지천 상류쪽 계곡에는 어디나 할 것 없이 꼬리치레도롱뇽이 노닐고 있다.

이것은 이 계곡이 1급수 중에서도 최고라는 얘기다. 우리의 친구 꼬리치레도롱뇽은 여름철에도 수온이 15℃ 내외의 차고 맑은 물에서만 서식한다. 계곡 둘레의 숲도 자연림상태의 울창한 숲이 있는 곳에서만 산다. 그러니 이런 곳은 국내에서 가장 청정한 곳이요, 생태계에서는 아주 안정된 곳이다. 이런 곳이 바로 백두대간의 계곡이자 숲이다. 그래서 꼬리치레도롱뇽은 백두대간을 상징하는 양서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 아무르 강부터 시작해서 연해주를 거쳐 백두산부터 백두대간을 타고 한반도 남단까지 서식지가 이어진 꼬리치레도롱뇽은 동북아가 하나의 생태통로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종이기도 하다. 특히 작년에 천성산 고속철도 반대운동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톡톡히 알렸다. 자연권소송의 당사자로 도롱뇽이 당당히 법정에 서기도 했다.

백두대간의 두메산골은 ‘한반도의 생태축’이란 표현처럼 우리나라에서 자연생태계가 가장 잘 어울린, 훌륭한 곳이라는 것을 뜻한다. 또, 산림이 우거진 상태가 가장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사이에 백두대간도 많이 개발되었다. 사람들의 간섭이 거의 없는 곳, 그래서 산속의 주인들인 동물과 식물들이 행세를 제대로 하는 곳이 백두대간 자락에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중 아직 개발의 소용돌이가 덜 불어온 곳이 바로 아침가리골이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산 20번지, 그런데 이 아침가리를 두고 국가를 공식 대표하는 건교부 산하 국립지리원은 좋은 우리말을 두고 애써 일본식 표현인 ‘조경동’이라 써 놓았다. 아침 ‘조’자에 경작할 ‘경’인가? 좋은 우리말 두고 그것도 수백 년된 지역주민들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표현을 두고 왜 하필이면 말과 글을 스스로 자승자박하는 일본식 혹은 한자식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다. 아침가리골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백두대간 산과 고개의 지명 중 식민지 시대 때 일본사람들이 바꾸었거나 해방 이후 우리 정부 국가공식지도를 제작하면서 스스로 일제 잔재를 받아들인 것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건교부의 국가기본지도인 1/25,000지도나 1/50,000지도에는 ‘백두대간’이라는 표현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위치도 부정확한 ‘태백산맥’이나 ‘소백산맥’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주방향과 주능선이 어딘지도 모르는 태백산맥을 지도 여기 저기 대충대충 그려 놓은 것이 산맥식 표현이다.

지상낙원이 별 것인가, 바로 아침가리가 지상낙원이지. 무당개구리가 길가의 웅덩이에서 마음껏 사랑을 해도 방해받지 않고, 먹구렁이가 길바닥에서 숲 속을 헤치며 다니다가 나무에 타고 올라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곳. 우리 땅 어디나 다 인간 위주로 되어 있지만 아침가리만은 인간이 아닌 뭇 생명들이 주인인 곳이다. 가끔이 인간들이 이상하고 요란한 차들을 끌고 와서 더 이상 맑기도 어려운 계곡물을 횡단하고 그것도 모자라 세차를 할 때도 있다. 이런 상식 이하의 짓거리를 하더라도 아직은 아침가리의 푸르름을 위협하지는 못한다. 정부는 더 미루지 말고 아침가리에 대한 종합 관리를 해야 한다.

지금은 너무 대응 아닌 대응을 하고 있다. 차를 가지고 누구나 들어 올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자연자원을 훔쳐가는 일도 가능하다. ‘산림 유전자원 보호림’ 안내판 앞에 많은 산나물을 한꺼번에 채취하려는 트럭 서너 대가 서 있었다.

‘이곳만은 지키자’가 절실한 현장이 바로 아침가리다. 전기도 없고 물도 계곡물을 그대로 먹는 곳, 아침가리의 마을에는 3가구가 살고 있다. 과거 마을에는 분교도 있었고, 가구도 수십 가구 이상 살았다. 다 떠나고 남은 집과 새로 들어온 집이다. 뜨거운 햇살이 비추고 등 뒤로 흘러내린 땀방울은 아침가리 계곡물처럼 옷자락을 적셔도 방동리 내려오는 발걸음은 한없이 상큼했다.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루 종일 숲 터널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침가리는 가슴 한 귀퉁이에라도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다.

※ 현장사진은 녹색순례 2004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pilgrim.greenkorea.or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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