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녹색순례] 여섯째날 : 묵계리에서 반천리까지 – 지리산에서 사라지는 …

2006.05.04 | 녹색순례-2006

서당이라고 다 같은 서당은 아니다?

묵계초등학교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이 곳은 청학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하동에서 진주 쪽으로 가다가 횡천에서 묵계리로 난 좁은 산골짜기로 포장길 반 비포장길 반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나타나는 두메산골 중의 두메산골. 게다가 상투를 튼 사람들이 서당에서 공부하며 유교적인 전통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던 마을.

그러나 2006년 오늘. 청학동 코 앞까지 뚫린 관광도로로 더 이상 청학동은 두메산골이 아니다. 우리가 만나는 청학동의 모습은 요즘 지방자치단체마다 열을 올린다는 영어마을과 닮은 한자마을을 연상케 한다. 청학동 사람들이 다니던 서당엔 이젠 청학동 아이들보다 외지에서 한자공부와 예절교육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로 채워지고 있다. 천명이 넘는 학생들을 수용하는 서당도 있고 외지인들이 들어와 차리는 서당까지 우후죽순 생기다 보니 경쟁도 치열하다. ‘서당이라고 다 같은 서당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전단지를 돌리며 서당 학생 유치에 열을 올린다. 훈장들의 약력을 전시하고 언론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알려주는 전단지는 흡사 대도시 입시학원의 전단지를 연상케 한다. 순례단이 묵은 묵계초등학교는 여느 시골마을의 초등학교와 달리 학생수가 100여명에 이른다. 원래부터 묵계리에 살던 아이들은 50명도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아이들은 학교를 파한 후 청학동에서 기숙생활을 하는 외지 아이들이라고 하니, 청학동에까지 교육열이 불어닥친 것일까?

잃어버린 이름, 고운동

고운동 계곡으로 향하는 길. 삼신봉 터널을 만났다. 삼신봉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한 낙남정맥이 제일 처음 만나는 산봉우리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13개의 정맥 중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해 하동, 진주, 함안, 마산, 창원을 지나 낙동강 하류까지 흐르는 낙남정맥은 한반도 최남단의 산줄기다. 삼신봉터널은 국립공원구역인데도 불구하고 터널을 뚫는다는 이유로 환경영향평가를 피해갔다.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불법도로공사의 대표적인 사례다. 삼신봉 안은 터널로 관통되고 낙남정맥 능선은 양수발전소 진입 도로로 끊어져 있다. 우리나라 산줄기 곳곳이 이렇게 훼손되어

통일신라 말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의 호를 따 이름 붙인 고운동 계곡.
지리산에서 이상향 청학동을 찾아 헤맨 사람들 중엔 삼국유사에서 말한 청학동을 찾아가는 방법을 좇아 이곳이 정말 청학동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다. 최치원도 그들 중 하나였다고.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을 고운동 계곡이라 부르지 않는다.  ‘산청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새로운 이름이다. 순례단의 눈 앞으로 짙은 녹색 물이 고인 댐이 나타났다.
양수발전은 위아래로 두개의 댐(상부댐, 하부댐)을 건설하여 아래의 물을 위로 끌어 올렸다가 낙차를 이용해 내려보내는 방식으로 전기를 만든다. 양수발전소를 만들며 상부댐 고운동 계곡과 하부댐이 있는 시천면 내대리가 물에 잠겼다. 녹지자연도 8~10등급에 해당했던 산림이 사라졌고 댐구조물에 필요한 토석을 조달하기 위해 채석장을 조성한 후 제대로 복구하지 않아 2차적인 피해가 계속 생기고 있다. 댐의 호수로 안개가 끼고 기온이 낮아져 계곡 아래 반천리 마을의 농사도 피해를 입고 있다. 이곳에서 만든 전기를 경남 의령으로 보내기위해 송전탑을 건설하며 무리하게 7,8부 능선에 작업로를 만들어 2002년 태풍 루사 때 대규모의 산사태가 발생하여 집들이 부서지기도 하였다. 요즘엔 밤이면 바람에 송전선로가 내는 쇠 비비는 소리로 잠을 이루기 힘들 지경이라 한다.

이상향 청학동은 사라지고
태평성대 이상향을 만들자고 이뤘다는 지금의 청학동 마을. 진짜 청학동은 다른 곳에 있다 믿고 지리산을 찾아 헤맸던 역사속의 많은 사람들. 그러나 그들 모두를 꿈꾸게 했던 지리산은 이제 도로, 터널, 골프장, 펜션, 댐 등으로 파헤쳐지고 있다. 더 이상 우리에게 이상향을 꿈꾸게 할 성산(聖山)의 전설을 기대할 수 없다. 녹색순례단이 걷고 있는 지리산 곳곳, 저마다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지 않은 곳이 없다. 마을 이름, 바위 이름에도 모두 나름의 뜻과 이야기가 있는 곳이 바로 지리산이다.

‘개발’이 진행되며 사라지는 것은 야생동물과 나무와 풀뿐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꿈을 만들어 주던 전설도, 이야기도 사라지고 그 자리엔 얕은 호기심의 일회용 관광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직도 지리산 어딘가에 남아있을 꿈을 위해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한다. 지리산에 다가서는 발걸음도 더 천천히 더 느리게 다가서야 한다.

양수발전소
양수발전은 위아래로 두개의 댐(상부댐, 하부댐)을 건설하여 아래의 물을 위로 올렸다가 낙차를 이용해 내려보내는 방식으로 전기를 만든다. 아래의 물을 퍼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핵발전소에서 밤에 생산된 전기를 이용한다. 핵발전은 특성상 발전 중지와 재시작에 드는 엄청난 비용으로 전력소모가 적은 밤에도 발전을 쉴 수 없다. 그래서 양수발전소를 만들어 밤에 만든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양수발전 방식이 구상된 90년대의 계획과 달리 정부는 심야전력사용을 적극 권장하여 실제 양수발전에 필요한 심야전력의 양도 충분하지 않아 양수발전의 가동률은 1년에 한달도 채 되지 않는다. 양수발전소는 낙차를 이용해 전력을 만듦으로 높은 곳에 댐을 지을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에서 그런 곳은 대개 생태계가 우수하거나 국립공원지역이다. 점봉산, 덕유산 등에 현재 7개의 양수발전소가 들어서 생태계를 파괴하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양수발전소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이 핵발전소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계속 될 것이다. 지리산에 들어선 양수발전소는 결국 우리나라 에너지 체계의 문제의 반증이다.

글 : 녹색순례 홍보팀

2006 지리산 녹색순례 홈페이지 http://pilgrim.greenkorea.org/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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