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8일차] 미황사 천년역사숲길에서 송호리 땅끝마을까지

2011.05.06 | 녹색순례-2011


미황사


6시에 눈을 떠 밖으로 나와 보니, 약간의 비가 섞인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어제 저녁, 각자 침묵의 시간을 통해 마음의 잔상들이 바람과 함께 모래를 훑고 흩어져 버리는 것 같다.


미황사의 유래를 들어보면 참 독특하다. 신라 경덕왕 8년(749) 사구미 해변에 돌배 한 척이 닿았다. 배에 있던 검은 돌이 돌연 갈라지면서 조그만 황소가 나오더니 금세 커졌다. 소가 가다 쓰러져 일어나지 않자 그곳에 ‘아름다운 황소의 절’ 미황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미황사 창건 설화는 불교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인도에서 바로 전래되었다는 근거가 된다. 미황사가 있는 산, 달마산 이라는 이름만 봐도 불교의 개척점으로서 큰 의미를 두고 있는 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갈한 공양 음식을 올린 상에 앉으면 달마도가 눈에 정면으로 들어온다. 카리스마 있는 눈빛이 내 눈과 마주치고 서로 신경전을 한껏 해본다. 달마가 다녀갔었다는 미황사… 그래서 달마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나? 여기 저기 외국인들도 보인다.


삼삼오오 녹색활동가들이 모여 공양을 마치고 순례의 마지막 정착지인 땅끝마을로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목탁 소리가 들리고 모두가 구름처럼 몰려다니며 호미를 잡고 잡초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불교에서는 이를 ‘운력’(구름처럼 몰려서 공동노동을 한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스무명 넘는 활동가들이 스님의 움직임에 따라, 쭈그리고 앉아서 말끔히 잡초를 제거하고 이리 저리 옮겨가며 작업을 이어갔다. 호미로 땅을 후리니 잡초들이 톡톡하고 흙을 가득 부여잡던 손 같은 뿌리가 땅을 훅~놓아버린다. 마치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열흘간의 순례를 떠나며 부여잡고 있었던 일들을 내려놓고 홀연히 떠났던 것처럼.



천년역사숲길


천년역사숲길은 제주도를 제외하고 한반도에선 유일한 난대림이다. 옛날부터 쭈욱~ 난대림이었던 것은 아니고,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결과로 생겨났다. 그 긴~천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역시 식생은 기후의 변화에 어쩔 수 없나보다.


달마산 천년역사숲길의 아름다운 난대림의 능선을 타고 녹색순례 8일째, 마지막으로 걷는 기분을 스산하게 느껴본다.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천년의 역사의 흙을 맨발로도 밟아본다. 서로 아쉬운 듯 도란도란 이야기 꽃이 무르익어 간다.





숲 속의 풍경도 생명력이 넘친다. 보기 드문 연리지(두 그루 이상의 나무의 줄기가 만나 하나처럼 이어진 나무)를 숲 속 깊은 곳에서 발견했다. 얇고 여린 나무가 굵고 튼튼한 나무 줄기의 가운데를 뚫고 관통하여 자라고 있다. 갓 세상에 내어놓은 따끈따끈한 삵의 똥이 가던 길을 막는다. 사람들이 일렬로 걸어 가다 멈추고 몰려와 신기하게 쳐다본다. 삵은 녹색연합에서 열심히 모니터링하고 있는 한국에서 멸종위기에 있는 야생동물 중에 하나이다. 숲길 중간 중간에는 큰 바위들이 모여서 있는 암괴원과 강물처럼 흐르는것 같은 암괴류가 있다. 바위를 딛고 건너면서 거대한 자연의 힘을 다시금 느껴본다. 천년숲길 막바지에서 만난 노란색 하트 모양의 들꽃들이 우리의 마지막 순례에 담긴 자연과 동료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전해준다.



송호리, 땅끝마을


드디어 송호리 땅끝마을에 이르렀다! 해변가에 이어진 해송림 길을 따라 마지막 한걸음 한걸음에 최선을 다한다. 가벼워진 우리의 마음처럼 바다에 섬들이 둥둥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살짝 얼굴과 어깨를 치고 가는 해변의 모래 섞인 바람이 도보순례의 마지막 날을 장식하고 있다.


8일 동안 허리 아래로 발바닥, 발가락까지 더욱 다부지고 알차진 느낌이다.
유후~이 기분으로 서울(?)까지 걸어서?
이건 돌아가서 치열한 토론을 통해 결정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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