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3일째] 지환거해, 제주의 바다를 만나다!

2007.05.01 | 녹색순례-2007

‘삼다도’라 부르는 까닭을 확실히 보여주려는 듯, 거센 바람소리가 녹색순례 3일째 아침을 요란하게 깨웠다. 바다 건너 맞은편에 보이던 행원리 풍력단지가 그곳에 세워진 까닭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벚꽃이 지고 고사리가 필 때 내린다는 고사리장마비도 그치고, 구름사이 언뜻 비치는 햇살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땅 위를 낮게 날며 비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던 제비가 오늘은 날개짓도 가볍게 하늘을 날며, 날씨가 쾌청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이제 대도시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제비, 땅이 숨을 쉬어야 들풀과 꽃들이 살고, 곤충과 벌레도 깃들어 살아, 제비도 살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제주는 섬의 고장이라 바다와 해안의 풍광이 이국적이다. 동서남북 해안선 어디나 섬만이 가진 독특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제주의 해안에서도 으뜸이라면 제주의 맨 동쪽 일대다. 구좌읍 하도리부터 시작하여 종달리를 거쳐 정점인 성산읍 일출봉에 이르렀다가 다시 동남동해안과 섭지코지와 산양해수욕장을 지나 온평리까지 이어지는 해안이다. 제주도 해안에서 으뜸의 풍광을 자랑한다. 구좌읍 하도리는 천연기념물 제19호인 난도의 문주란자생지도 있다.  

오늘은 제주의 바다를 만나는 날이다. 우리나라 여느 바다와 달리 맑은 옥빛을 띤 제주의 바다는 그 빛깔만큼 맑고 깨끗하다. 맑은 옥빛 바다는 검푸른 바위와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용암이 굳어진 현무암은 제주의 해안선을 단조롭게 만들었다. 이를 두고 제주에 유배 와서 일생을 마친 조선시대 김정(김(덧말:金)정(덧말:淨)) 선생은 제주의 바다를 ‘지환거해(지(덧말:地)환(덧말:環)거(덧말:巨)해(덧말:海))’라 했다. 땅이 둥글고 바다가 거칠다는 뜻의 지환거해. 땅이 둥글다라는 말은 해안선이 평평하고 단조롭다는 뜻이다. 제주의 해안선은 235km이다. 제주는 일본 쓰시마 섬에 비해 면적은 2.6배나 크지만, 해안선의 길이는 3.5배나 짧을 정도로 제주도의 해안은 단조롭다. 화산에서 흘러내린 용암은 해안선을 단조롭게 만들어 포구의 발달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지만, 해조류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현무암은 구멍이 많아 해조류가 쉽게 붙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종달리 갯벌을 건너면서 구멍이 많은 현무암에 해조류가 뿌리내린 것을 볼 수 있었다.

구좌읍 종달리-성산읍 시흥리로 이어지는 앞바다는 제주의 대표적인 갯벌이 펼쳐진 곳이다. 제주에도 비교적 너른 갯벌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진흙뻘이 아닌 모래뻘이다. 그래서 썰물 때면 약 1km 가까이 바다 쪽으로 물이 빠져 나가서 너른 모래뻘이 형성된다. 진흙뻘도 아름다운데 모래뻘은 말할 필요도 없다. 햇살이 뜨거울 때면 모래뻘 위로 얕게 깔린 바닷물이 빛나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서 주변의 풍광이 달라보인다. 특히 종달리-시흥리 갯벌 앞쪽에는 북쪽방향으로 우도가 길게 늘어져 있고, 남쪽으로 성산일출봉이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이 일대를 제주도 최고의 해안경관으로 꼽는데 부족함이 없다.

종달리에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풍광이 있다. 땅끝오름(164m)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제주 동쪽 해안의 절경이다. 하도리부터 성산일출봉까지 이어진 해안경관은 물론이고, 바로 앞에 우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 동쪽 해안의 절정의 경관을 한숨에 감아 안듯이 펼쳐져 있다. 제주는 들여다볼수록 점점 더 무궁무진함이 있다. 그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는 풍경이 바로 땅끝오름의 조망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풍광은 빠른 속도로 위협받고 있다.

그 하나가 인공구조물에 의한 지형의 변화이다.  7~8월이면 섬 전체가 하얀 문주란 꽃으로 뒤덮인 모습이 토끼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토끼섬’ 앞 포구는 그 앞을 메워 관광객들이 사진 찍는 장소를 만들었다. 밀물 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해 돌 그물 구실을 하던 포구의 모습은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제주의 해안가를 위협하는 진짜 중요한 요소는 해안도로이다. 해안도로가 포구를 메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렌터카를 이용한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이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해안도로다. 해안도로는 대부분은 제주시와 북제주군 지역에 밀집해 있다. 이유는 제주시와 북제주군 지역이 바위 조간대가 넓기 때문이다.

구좌읍 철새도래지라고 하는 하도리 창흥동 양어장도 해안순환도로도 물길이 막혔다. 지금은 갑문을 통해서만 물이 들고 나는데, 물살의 흐름이 좋지 않아 양어장 쪽에 너파래가 많이 생겨나, 물이 부패하고 그로 인해 고기들이 많이 죽었다. 또, 제주를 일주하는 12번 국도가 있는데도 바로 해안가 가까이에 해안도로를 닦고 있다. 하도리를 지나는 세화~성산 해안도로 외에도 성산~신산 해안도로, 송악~사계리 해안도로, 고산~일과리 해안도로, 구엄~애월 해안도로, 용두암 해안도로 등 6곳의 해안도로가 존재한다. 해안도로는 물길의 흐름을 바꿀 뿐만 아니라, 해안사구, 모래사장을 위협한다.

빼어난 자연자원을 가까이 관찰하고 체험하려면 몸소 발품을 팔고, 그것을 만나기 전 절차를 밟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 자연의 순리는 고려치 않고 그냥 빠르게 지나쳐 버리면 진정한 가치는 묻혀 버리고 만다. 하도리부터 성산일출봉까지 이어진 길을 자동차로만 달려가면 이 아름다운 해안의 일부분만 느낄 뿐이다. 자연의 진정한 가치는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제주의 해안을 위협하는 마지막 요소는 육상양식장이다. 육상양식장 사업은 1차 산업 중에서는 감귤산업에 버금가는 거대한 사업이 되었다. 섭지코지를 지나 숙소가 있는 온평리를 가는 길목에만 10개 남짓의 육상 양식장을 만날 수 있었다. 좁은 공간에 물고기를 많이 기르다보니, 항생제와 구제제는 불가피한 요소가 되었다. 어떤 항생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다시 바다로 배출하는 물을 정화하는지, 정화한다면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포르말린의 구제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할지라도 육상양식장에서 배출되는 물의 색깔은 희뿌옇게 보였다. 육상양식장에서 배출되는 물은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농약, 그리고 일반 농가에서 사용하는 제초제와 함께 생명 없는 바다를 만들어 버리고 있다. 적조현상과 함께 바다를 위협하는 백화현상의 원인이 바로 항생제와 제초제가 섞인 물이 바다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성산일출봉을 지나 섭지코지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만난 해안사구는 바다와 육지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그를 위해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성산일출봉은 제주가 자랑하는 명소다. 바다에서 용암이 분출하며 생긴 압력으로 형성된 성채와 같은 지형은 사계절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일출봉은 보는 방향마다 그 느낌이 다른 절묘함을 가지고 있다. 오는 7월이면 세계자연유산 등록을 기대하고 있다. 자연사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제주 화산활동의 절정 중의 하나인 성산일출봉은 제주 동부의 정점이자 중심축이다. 성산일출봉의 남쪽으로 띠처럼 이어진 해안은 제주에서 마지막 남은 해안사구중의 하나다. 성산읍 동남동 일대까지 해안사구가 발달되어 있다.

과거에는 제주도의 해안지대 곳곳에 해안사구가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본격적인 관광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도로건설과 관광지 조성으로 상당한 규모의 해안사구가 사라졌다. 관광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관광자원을 훼손한 것이다. 최근에서야 해안사구가 생태적으로, 경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산 동남동 해안사구는 2004년부터 지방정부에 의해 사구의 모래를 유실방지하기 위한 복원의 기초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제주를 다녀간 사람 누구나 이 아름다운 섬을 다시 찾고 싶다고들 한다. 그리고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들은 제주와 한라산, 그리고 섬 곳곳에 펼쳐져 있는 자연자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또,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곳곳을 다녀온 어느 외국인은 세계 어느 곳보다 제주도가 아름답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모두가 감동한 제주의 자연은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해 나갈 것인가? 녹색순례단은 이런 물음을 가슴에 품고 내일도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이 순례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해안마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온평리

제주는 섬답게 아름다운 해안마을이 많다. 다른 마을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 있다. 단 하루라도 마을에 쉬어갈 수 있고픈 그런 마을이다. 본래 해안마을은 바닷바람과 재해위험 등으로 내륙에 비해 잘 정비가 되어 있다. 그런 해안지대의 마을 중에서도 유난히 단아함이 돋보이는 마을이 바로 온평마을이다. 성산읍 온평리는 성산 일출봉-표선해수욕장 중간쯤 되는 해안마을인데, 어촌마을 특유의 정갈한 풍광이 인상적이다. 띄엄띄엄 나타나는 붉은 지붕이 마을의 풍광을 이국적인 느낌마저 들게 해 준다. 하지만 해안과 연결된 난대림 사이에 자리잡은 마을의 모습은 찾는 이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온평리는 마을공동체 중심권에서는 펜션이나 호텔, 콘도 등이 거의 없는 곳이다. 제주의 해안마을이 자본의 세례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생활 그대로 꾸려가는 마을의 모습이 온평리다. 온평리의 아름다운 풍광은 한프레임에 빨려가는 멋이 있다. 비록 온전히 과거의 전통은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제주의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온평리는 문화유산의 자부심도 있다. 제주도기념물 제17호인 혼인지를 비롯하여 몽고항쟁의 역사가 담긴 성곽인 환해장성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온평리에는 잊을 수 없는 별미가 있다. 돌미역이다. 온평리는 바다는 흙뻘이 없고, 돌뻘만 있다. 거기서 건져 올린 미역이 바로 돌미역이다. 초장만 있으면 전복이나 감성돔에도 뒤지지 않은 입맛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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