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한국엔 ‘유령 공항’이 있다, 비행기도 사람도 없는

2015.05.18 | 녹색순례-2015

1998년부터 해마다 봄이 되면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열흘간의 도보순례를 떠난다. 열흘 동안 배낭을 메고 걸으며 ‘자본의 삽질’ 앞에 놓인 위기의 현장을 찾아가고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된 자연을 직접 보고 느끼며, 아파하는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함이다. 올해 녹색연합은 케이블카 설치 위기에 놓인 설악산과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경기장이 건설되는 가리왕산을 걷는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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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주차장에 몇 대의 차량만이 주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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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들의 설렘과 보내는 이들의 아쉬움, 들어오고 맞이하는 이들의 반가움이 모여 활기를 보이는 곳. 일반적으로 공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하지만 여기 이 공항은 고요하다. 오가는 이들의 북적거림도,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의 소음도 없다. 두 개의 층으로 이뤄진 공항 내부는 텅 비었으며, 넓은 주차장에도 몇 대의 차량만 있을 뿐 탑승객을 맞이하는 버스와 택시는 보이지 않는다.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동호리에 위치한 양양국제공항, 녹색연합의 열여덟 번째 순례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이땅의 아픈 곳, 그 신음을 들으며 상처 난 곳을 치유하기 위한 걸음을 양양공항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양양공항이 대규모 토건사업에 대한 기대가 허상임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표심 공략과 환상이 만들어낸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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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양양공항은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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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이 양양공항을 찾은 5월 13일. 이날 양양공항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세 편의 비행기가 떴다. 이중 정규 노선은 하나로, 양양공항에서는 매 주 두 차례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가 운항한다. 비행기 한 대가 곧 이륙을 앞두고 있었지만 공항은 비교적 조용했다. 2층에는 직원들 외에는 탑승객이 없었고, 1층에는 중국인 탑승객들이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출국한 후, 공항은 어둡고 고요해졌다.


양양공항은 강릉공항과 속초공항의 대체 공항이자 영동권의 거점 공항을 표방하며 2002년 개항했다. 양양국제공항 건설은 선거철이면 우루루 쏟아져 나오던 토건 사업 공약 중 하나로, 여야 할 것 없이 영동권의 표심을 잡기위해 내세우던 선거 공약이었다.


많은 국책 사업이 그렇듯 양양에 국제공항이 건설되는 것이 정말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고 경제성과 실효성이 있는지는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채 양양공항은 ‘일단 지어’졌다. 정치와 토건논리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했고, 여기에 공항이 생기면 지역도 함께 발전하리라는 환상이 더해져 지금의 양양공항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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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공항은 동북아시대 항공거점을 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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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여억 원을 들여 만든 양양공항은 국내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동북아의 허브 공항으로서 각광을 받게 되리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2002년 개항 이후 수송 실적은 꾸준히 줄어들었으며 이용객 부족으로 운항노선과 횟수가 하나둘 줄기 시작해 급기야 2008년 11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단 한 편의 비행기도 운항되지 않는다.


지난 2009년 BBC는 이렇게 텅 빈 양양공항을 가르켜 ‘유령공항’이라 칭하기도 했다. 적자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발표된 한국공항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양양공항은 2002년 개항 이후 12년간 973억 원의 손실을 냈다(2013년 한 해 적자 81억 원).


2018 동계올림픽을 통한 공항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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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탑승객들이 떠나고 난 후 고요해진 양양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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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텅 빈 공항의 원인은 잘못된 입지 선정과 부풀려진 수요 예측이다. 많은 지방공항들의 이용객이 고속도로 신설 및 확장, 고속철도 개통 등 육상 교통로가 증설됨에 따라 줄어들고 있다.


다른 개발 계획을 함께 고려해 정확한 수요를 예측하고, 경제성을 분석해 사업의 방향을 결정한 후 그에 걸맞는 시설을 만들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지역에 대한 선심 공약으로 던져져 정치의 영향력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부풀려진 수요를 토대로 큰 시설물을 지으며 국고를 낭비하고는 유지관리비로 혈세를 투입한다. 여기에 공항 이용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끝없이 예산을 추가로 지출한다. 강원도는 2014년 한 해 양양공항 활성화를 위해 5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했다.


동계올림픽을 겨냥해 앞으로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지만 경제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에는 강원도의 지원과 중국인 관광객 증가가 맞물려 이용객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지만, 여전히 공항 이용률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며 2018 동계올림픽을 통한 양양공항 활성화 여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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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지원과 중국인 관광객들 덕분에 양양공항은 개항 12년만에 이용객 최고치를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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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국책 사업에 대한 기대는 늘 실망으로 돌아왔다. 새만금 간척 사업이 그랬고, 4대강 살리기 사업이 그랬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여전히 토건 사업에 대한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 이제 가리왕산과 설악산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가리왕산에 스키 슬로프를 만들어 동계올림픽을 멋지게 치러내면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고 경제가 활성화 되리라는 허상,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허상. 이 허상들을 친환경, 사회적 약자 보호, 국제적 위상 제고라는 명분으로 가리고 포장해 밀어붙이고 있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고 바로 잡을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음은, 토건 사업을 통해 이익을 얻는 이들이 여전히 동일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지역의 상황을 고려하고 지역의 발전을 꾀한다면 이러한 사업이 반복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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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이용객을 맞이하는 버스나 택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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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에게는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 가리왕산은 이미 벌목됐지만, 지금이라도 경기장 설치를 중단한다면 원시림은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강원도의 재정도 절약할 수 있다.


녹색연합은 앞으로 8박 9일 동안 생명과 평화를 위한 걸음을 걸으며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계획 백지화와 가리왕산 스키장 건설 중단을 위해 마음을 모을 것이다. 양양공항의 실패를 설악산과 가리왕산에서 되풀이하지 말라. 지역 주민과 생명이 공생하는 진정한 지역발전은 자본과 정치의 논리로는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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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걸음을 걷는 녹색연합 녹색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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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지현 기자

글: 평화생태팀 이다솜

오마이뉴스 링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07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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