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현장 나눔강좌] 3. 산어머니 품에서

2008.05.13 | 미분류

녹색연합과 녹색연합 시민모임 “청년모임”은 2008년 3월부터 7월까지 “백문이불여일보”라는 취지로 말로, 귀로만이 아닌 두발로 생태현장을 밟으며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생태현장 나눔강좌 “씨앗나눔”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6일(토) ~ 27일(일)에는 제3강으로 강원도 설악산과 그 품에 안겨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아 다녔습니다.


산어머니 품에서

● 글 : 정세연

어릴 적, 아파트단지에 살긴 했지만 나의 놀이터는 대부분 잔디밭이었다. 그곳에서 네잎클로버 찾기, 개미관찰하기, 민들레홑씨 멀리 날리기, 땅에 납작 엎드려 냄새 맡기 같은 놀이를 참 좋아했었다. 별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에게서 얻은 그 만큼의 온기도 나에게는 삶을 지탱해주는 마음의 뿌리였는지 모른다. 머리가 좀 더 크자 그 뿌리의 이름을 ‘생태’ 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철없이 마냥 좋던 시절과는 영 다르게 ‘생태’라는 주제는 갈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생각과 행위를 일치시켜 ‘생태적 인간’으로 살아가기에 우리들의 일상은 ‘편리함’ 위주로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다. 굳어진 습관들 속에 매몰되어 많은 것을 누리다보면, 선뜻 물음표를 던지지 못한다. 1박 2일 생태강좌여행의 시작에서, 무서운 속도와 굉음으로 산허리를 휘감아 오르던 버스행이 그랬고, 숙소였던 백담사의 모습도 그랬다. 산속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산사의 밤을 꿈꿨던 나에게, 다양한 가격대의 연등과 상점들로 붐비는 백담사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물음표 ‘괜찮을까?’ 가 아닌 느낌표 ‘뭐 어때!’가 만든 것들.

소박한 나물반찬으로 배를 채우자 해가 떨어졌다. 회의실 스크린에 설악산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새까만 밤, 쏟아지는 별들 아래로 잠든 산어머니의 등이 보인다. 차가운 나무 바닥의 한기를 밤공기의 감촉이라 생각하고 사진 속으로 빠져본다. 나 자신을 감출 수 없을 만큼 사방이 고요했겠지. 박그림 선생님의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수 백만년 전부터 밤과 낮, 산과 하늘은 존재해왔습니다. 그 속에서 인간이 잉태된 것이죠.” 마치 심리치료를 받으러 온 것 마냥 최면에 빠져들 듯한 기분이다. 그렇다. 우리는 도시에 살면서 얻은 마음의 병, 불감증을 치유하러 왔다.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고통 그리고 우리의 상처를 모른 척 해왔다. 갈 길이 바쁘니까…



산 속의 사계절은 더욱 뚜렷하다. 풀 한 포기에도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그것을 잘 해내려 노력하다보니 그렇다. 그 자기다움, 자연스러움이 어울려 매 순간의 풍경을 만든다. 풍경을 이야기하다보면 그것을 빛나게 하는 야생동물들의 이야기도 안 나올 수가 없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은둔의 친구들이 되버렸지만 선생님은 탐정의 비법을 요목조목 전수해주신다. 멧돼지의 며느리발톱자국, 토끼의 뜀박질을 생각하며 움직인 방향 찾아내기, 똥에 섞인 털을 보고 육식동물인 삵을 떠올리기, 수달이 지나가는 물가, 산양이 영역표시로 남긴 벗겨진 나무가지…. 동물들의 흔적을 찾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고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흔적을 찾는 ‘기술’들을 익혀 쉽게 찾아내고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땅과 나무, 공기 속에 남은 온기로 느끼고 그들 삶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 곳을 지나갔을 녀석들의 느낌을 상상하고 움직임의 이유를 헤아릴 줄 아는 것이다.

오르기 위한 산이 아니라 생명을 길러내는 어머니로서 산을 다시 만나고, 어머니의 속만 썩이는 난폭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나서,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방안의 불을 다시 켠다. 동물들의 까만 똥과 새햐얀 뼈들이 책상에 하나 둘씩 놓였다. 겨우 주먹크기나 될까 말까 하게 수달, 삵, 청설모 다람쥐의 두개골. 그리고 풀 뜯어먹는 이빨을 가진 고라니와 산양의 길쭉한 얼굴. 하얀 골격에 털을 입히고 몸을 그려 넣어 온전한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살아생전에 무슨 꿈을 꿨을까. 가만가만 쓰다듬어본다. 깊은밤 우리를 설악산 깊은 곳으로 순식간에 옮겨버린 박그림 선생님.. 선생님의 순진한 산양같은 눈 속에는 사실 너구리같이 노련한 번득임도 함께 있었다!

이른 아침, 여느 때라면 아직 한창 이불 속일 시간인데 오늘은 키다리 전나무 숲 아래다. 보호구역 팻말 아래를 지나면서 가슴이 괜히 두근거린다. 조금씩 수풀이 무성해지고 발밑이 울퉁불퉁, 푹신푹신 해지자 마음의 긴장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기분이다. 앞사람 등을 놓치지 않으랴, 땅에서 올라오는 새싹 쳐다보랴, 가끔씩 멈춰서서 선생님 설명에 집중하랴, 꽤나 분주하다. 네 발 달린 동물 친구들처럼 길 없는 산비탈을 오르다 보니 이런 저런 걱정들도 별것 아니게 되어버린다. 한참을 헐떡이며 올라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바위 밑 산양의 화장실! 길에서 돈 만원을 몰래 줍는데도 이만큼 기쁠까. 사람들의 소리와 체취로 가득한 백담사에서 출발한 우리들은, 목을 조이는 올무의 무시무시함을 알게 된 우리들은 산양 한 마리의 살아있음 자체가 고맙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는 똥이 중요하다! 맛있는 카카오초콜릿처럼 생긴 똥 무더기에서는 풋풋한 향기마저 난다.

어젯밤 선생님은 생태 속에 안겨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보여주셨다. 언제 어떻게 설악산에 터를 잡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남아있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산양과 눈이 마주치던 그 짧은 순간의 감동이 마흔이 넘은 사내를 온통 흔들어 버린 일. 러시아에서 온 부부와 함께 다닌 산자락에 깃든 추억. 석호와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어려운 싸움까지.. 선생님의 결론은 ‘나는 넘치게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정말로 원하는 일을 찾아가세요.’ 였다. 가파른 산비탈 아래서 문득 이 말씀이 떠올랐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젊은 나에게 한창 화두이다. 자신의 원하는 것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할 기회보다는 화려한 직장과 안락한 생활의 보장에 대한 유혹이 훨씬 많은 탓에, 무언가 답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무척 어렵다.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가. 사람들은 흔히 진정 원하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들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꿈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이다. 다만 꿈을 선택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 그 하나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신념이 뚜렷하다면 경제적 여유, 물질적 풍요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초라해질 필요 없다.

비탈에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질 때마다 굴러 흩어지던 흙들, 그 흙먼지의 짙은 향기. 겨우내 눈이불을 덮고도 싱싱하게 푸른 빛 머금던 전나무 잎들이 바람과 나누는 인사. ‘샤-샤..’ 멧돼지가 별 근심도 없이 진흙목욕 하고 간 자리. 서로 다른 잎들 하나하나의 냄새. 그렇게 정체성을 뽐내는 어린 것들. 개울가의 물- 투명한 초록. 부끄러울 정도로 드러나는 강들의 속살. 돌들의 개성 있는 얼굴. 거침없는 물소리. 안이한 우리를 깨우는 시리도록 찬 물의 느낌.. 모두가, 이 모두가 내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겁내지 말라고. 원하는 삶을 꿈꾸고 변화를 시작해도 괜찮다고. 가끔씩 코끝이 찡해지던 것은 단지 바람이 좀 찼던 것 때문일까.

‘생태’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고 공부하자면 갈 길이 멀지만, 이미 많은 답들이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생태는 그 자체로 사람을 살아 숨쉬게 하는 것, 내 본능 안에 있어 자꾸만 마음을 이끌리게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 산양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마다 가만가만 기도한다.

“그들을 살게 하소서. 그냥 이대로 살게 하소서. 우리를 깨닫게 하소서. 어울려 살아가게 하소서.”    


생태현장 나눔강좌 “씨앗나눔” 제 4강은 5월 10일(토) ~ 11(일)에 전북 부안에 가서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현재 6강부터 ~ 10강까지 하반기 수강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 추가신청 및 문의 : 녹색연합 시민참여국 박효경 ☎ 02-747-8500 / ☞ 참가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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