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평화][반전 메세지]<암만에서 보내온 편지> 상현이가 돌아왔습니다.

2003.03.31 | 미분류

밤 11시 바그다드에 남아있던 상현이가 국경을 통과한다는 소식을 듣고 꿈인것만 같아 한참을 전화기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같이 국경을 넘은 이들 중에 부상자들이 있어 국경근처 루이쉴드 난민캠프 의료팀에 그들을 데려다 주고 다른 교통편으로 암만 평화팀 캠프를 향해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전화조차 되지 않던 그 바그다드에서 그가 이제 3시간 후면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새벽 2시가 넘도록 아무도 잠들지 못한 채 상현이를 기다렸습니다. 그가 추방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통제와 감시를 못이겨 탈출을 시도한 것인지, 왜 나머지 두 사람과 함께 움직이지 않고 혼자 국경을 넘은 것인지… 국경에서 이곳까지 올 여비는 있는 것인지 우리가 국경을 향해 그를 데리러 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그 또한 어딘가 다친것은 아닌지…. 수없는 추측과 연상으로 서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조바심 치던 새벽 불쑥 문을 열며 그가 도착했습니다.

가기전 보다 헬쓱해진 얼굴엔 약간의 생채기가 남아있고 그의 등 뒤에는 핏불이 튀긴 자욱이 가득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손을 내미는 그의 왼손엔 다시 상처가… 우리들의 놀란 눈을 보더니 그는 웃으며 말합니다. 내가 다친게 아니라고 택시 3대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국경을 넘다가 마지막 차였던 그의 택시가 그만 폭격으로 패인 길을 못보고 2미터 아래로 전복되는 바람에 함께 타고 있던 4사람이 다친 것이라 합니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고 기울어진 차 속에서 그의 위로 피가 떨어지고 신음이 흐르고 그랬다고….

그들을 난민 캠프에 옮겨주고 오느라고 늦었다며, 웃는 그의 얼굴이 그의 웃음이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사고를 당하며 얼굴을 조금 부딪혀서 똑바로 웃을 수가 없다는 그의 어색한 웃음에 우리는 차마 함께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열흘이 넘는 시간들 동안 하루종일 뉴스를 들으며 그의 안위를 걱정하던 우리 속에 얼마나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있던가요. 허나 우리는 쉽게 그에게 물음을 건내질 못한채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서로 눈빛으로 그렇게 안부를 나누다가 그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곳에서는 어떤 평화운동가라도 하루에 한 시간의 외출밖에는 허용이 안된다고,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이라크 비밀경찰의 감시가 하루 종일 붙어있기 때문에 개별행동이나 자유로운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그 또한 그의 호텔에서 폭격당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다가 비밀경찰에게 발각되어 호텔에서 쫓겨 난후 정수장으로 강제 이송되어 그곳에서 기거하다가 오제 국경을 넘어 온 것입니다. 모든 촬영은 스파이로 간주되고, 이라크 당국이 스파이로 결정을 하면 하루나 이틀이내에 바로 추방되는 엄혹한 통제의 상황 속에서도 평화활동가들은 폭격의 현장을 찾아가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아내며 전쟁의 증언을 위한 조사와 기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화국의 폭격으로 그나마 이틀에 한 번 꼴이라도 통화할 수 있었던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며 이제부터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벌어질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앞에 두고 남아있는 세 사람이 함께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나가서 우리의 기록과 증언을 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그 한사람이 바로 상현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현이는 그 새벽 가방을 열어 디스켓을 꺼내어 건네줍니다.
그 디스켓 속에는 “전쟁의 기록”이라는 파일이 담겨있습니다. 폭격 당일에 가서 현장을 담지는 못했지만 이라크 정부의 통제 속에 폭격 다음날 그곳에 가 현장을 기록하고 현지인들의 증언을 조사 기록한 평화활동가들의 피로 쓴 증언이었습니다. 그의 카메라 속에는 호텔에서 추방을 당하면서까지 기록한 전쟁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평화를 위해 생을 건 우리의 벗들이 자신들의 피로 기록한 그 증언들을 받으며 우리 심장 깊은 곳에 무언가 참 깊고 진한 무엇이 고이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상현이는 바그다드에서 새벽마다 폭격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침대에 눕습니다. 어느새 시계를 보내 새벽 5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침대로 보낸 후에도 저는 잠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명으로 지니고 온 이 기록들을 전하기 위해, 이 증언을 나누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손을 다쳐 글을 쓸 수 없는 상현이 대신 상현이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하고 깊은 잠에 들어 깨어나지 못하는 상현이 대신 이 증언들을 한국으로 전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잠든 상현이의 머리맡에서 저는 지금 이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저의 손이지만 이 편지에 담긴 것은 한상진 선배와 은하와 상현이의 생명입니다 . 그 생명의 깊이, 평화의 심장을 전하며

3월 30일
평화가 강물처럼 영신 총총

임영신의 이라크에서 온 편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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