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2003][참관기]생명 평화, 三步一拜 오체투지로 오신다

2003.04.01 | 미분류

글 윤지선

눈감으면 바다에 닿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바다내음마저 죽어가는 해창갯벌, 갈매기 소리 대신 채석하는 소리만 요란하다. 그러나 눈뜨면 이곳 갯벌에는, 공중에 뜬 배, 하늘로 올라가는 배, 짱뚱어, 장승들이 죽어가는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낮은 하늘에 바람 차던 3월 28일, 이곳 새만금 갯벌과 모든 뭇생명을 살리고자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이 삼보일배의 대장정을 시작하셨다.


“생명과 조화의 땅, 갯벌은 뭇생명의 어머니이며 품입니다.”
“새만금 죽음의 갯벌을 생명의 갯벌로.”
“하느님, 바다의 어머니, 새만금 개펄을 살려주세요.”
“생명, 평화, 인권의 참 세상 새만금 갯벌에서 건져 올립니다.”
이 슬픈 기도문 같은 플랑카드가 펄럭이는 갯벌에서는 새만금을 살리고자 300여km 먼길을 삼보일배로 임하시는 성직자들을 떠나보내고자 모인 사람들이 계시고, 왼편으로는 반도 더 깎여나가버린 해창산에서 돌을 실어나르는 트럭들이 수평선 끝 너머까지 보이지 않는 방조제를 이어 달리고 있다.
이 아이러니 속에, 오전 11시 오영숙 수녀님의 사회로 행사가 시작되고, 새만금 사업 12년 되는 해 이 사업을 끝내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원불교 교무님의 12번의 타종 소리가 그 시작을 알린다.
최열 새만금 생명평화연대 상임대표의 여는 말씀 “이라크 전쟁이야 말로 가장 심각한 생태계 파괴다. 미래세대, 그리고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를 파괴한다. 갯벌 생명체는 자신을 대변할 생명체가 없다. 그들을 대변할 이는 갯벌 생명을 사랑하는 우리밖에는 없다. 갯벌 생명을 생각해보고, 나아가 정부 정책을 바꾸기 위해 오늘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죽어간, 죽어갈 뭇생명들, 그리고 갯벌에 기대어 살던 어민을 위로하는 살풀이춤이 이어진다. 멀리서 음악에 이끌려온 갈매기 한 마리, 살풀이 춤사위로 내려앉는다.
녹색연합 공동대표 박경조 신부님은 “이곳은 고향같다. 수많은 생명이 같이 사는구나 깊이 느낀다. 그러나 이곳에 올 때마다 생명들이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그치질 않는 것 같다. 하느님도 부처님도 울고 계실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다짐하는 시간을 갖자.” 잠시 갯벌 속 하느님 부처님의 아파하시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침묵의 시간이 이어진다.
지역에 살고계시는 주민 염정우님은 “동네 어른들이 말씀하신다. 이제 마을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어민들은 지금 이런 무력감에 빠져 있다. 노정부의 반칙없고 상식이 있는 세상 만들겠다는 약속은 거짓이었다. 이 죽어가는 갯벌을 보라. 반칙과 비상식이 이곳에 있다. 슬픔을 가눌 수 없다. 어찌 이런 심정을 글로 말로 다 하겠는가…” 말씀을 이으며 울먹임을 감추지 못하신다.
2001년 5월 정부계획 재개 발표 후 결성된 새만금 생명학회의 부회장 이희재 교수님은 “노대통령의 농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곧, 명분도 목적도 잃은 사업임을 인정한 것이다. 전면 재검토의 의미는 이제 방조제 사업을 전면중단해야 함을 의미한다. 오늘 이 두 성직자의 큰 각오는 그만큼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또 하나의 전쟁이다. 우리는 전쟁을 전쟁으로 갚지 않고 비폭력 평화로 대응하려 한다. 이 두 분의 각오와 열정이 모든 이들에게도 일도록 다함께 하자.”
참가하신 분들의 말씀이 끝난 후, 녹색연합공동대표를 맡고계신 원택스님을 비롯한 4대 종단 대표의 범종교인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이어서 예비 수녀님들의 합창이 이어진다.
[사랑한다는 말은/가시덤불 속에 핀/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내가/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흔들리는 나뭇가지//당신이/나를 사랑한다는 말은/무수한 별들을/한꺼번에 쏟아 내는/거대한 밤하늘이다//어둠 속에서도/훤히 얼굴이 빛나고/절망 속에서도/키가 크는/한 마디의 말/얼마나 놀랍고도/황홀한 고백인가/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이해인 수녀님의 작시, 사랑한다는 말은] 새만금과 두 성직자 분께 사랑한다 고백하는 노래였다.
이어 원불교 보은의 집, 조계종 해창사 평화법당, 천주교 해창 기도의 집, 기독교 생명의 교회가 나란히 자리한 컨테이너에 들어가 각 종단마다 기도시간을 가졌다.
12시 틱낫한 스님과 그 일행이 도착해 고통받는 이 땅에서 걷기 명상을 제안하셨다. “이 순간 진정으로 깨어있어 이 길을 온 마음 다해 한걸음 한걸음 걷는다면, 부처님과 예수님이 서로 손잡고 정토와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을 지금 바로 여기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토는 바로 이 자리에 있거나 어디에도 없습니다. 깨어서 집중하는 마음은 치유와 변화를 가능케 하는 힘입니다. 고통받는 이 땅도 치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있네, 바로 당신을 위해서. 여기는 하느님의 나라, 내가 여기에 있네, 내가 여기에 있네. 진정으로 여기에 있네.” 우리나라 한 소년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이 대지의 고통을 기도로 걷는다.
이에 뒤따르는 모든 종교인들 주민들의 행렬이 진행되는 가운데 12시 30분, 수경스님과 문규현신부님은 서울로 난 도로 위에서 드디어 삼보일배의 첫걸음을 떼신다. 이희운 목사님, 김경일 교무님도 그 뒤를 이어 삼보일배에 동참하셨다. 직접 삼보일배는 아니지만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세걸음에 한번씩 마음 절하며 그 뒤를 이었다.

인간의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3독을 없애고 하심(下心)하며 참회하는 수행, 삼보일배(三步一拜). 두분의 삼보일배는 이번이 벌써 4번째지만, 305km 두달여의 강행군은 거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다. 잠시 쉬시는 두 분의 등이라도 주물러드리고 싶어 가져간 손으로 하루만으로도 신열이 나고 계심이 느껴졌다.

두분의 등이 안쓰러운 건, 두분이 등에 짊어지고 두 무릎과 두 손에 모두운 것이 두분보다 더 아프실 대지 어머니 새만금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 갯벌과 그 병든 자궁 속 생명이 울며 절하며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 첫날부터 유난히 바람 서리는 바람모퉁이 가까이에 닿으면서, 서울에서는 파병동의안 전원위원회 소집으로 동의안이 다시금 연기됐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도로가까지 씨앗이 날아왔는지 퉁퉁마디도 올라왔고 봄꽃도 오체투지 지천으로 피었다. 지들끼리 약속도 않고 지천으로 피는 꽃소식은 서울로 서울로 오르고 있다. 문규현 신부님의 말씀대로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 새만금만이 아닌 모든 고통받는 생명위해 올라오고 계신다. 하루 10시간씩 5km의 발걸음으로 가까워오실 때마다 새벽길 닦는 마음으로, 반전평화 모든 생명을 위한 기도와 실천으로 함께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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