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2003][삼보일배]2003년 4월 17일(목) 삼보일배 21일째

2003.04.18 | 미분류

조만간 비가 온다더니 먹구름이 잔뜩 낀 포근한 아침을 맞았습니다. 다행인지 낮에는 하늘이 맑아졌지만 저녁이 되면서 다시 흐려졌습니다. 내일은 틀림없이 비가 올  것같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비에는 삼보일배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체력이 떨어지신 스님과 신부님 건강을 심하게 해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4월17일까지 삼보일배를 수행하신 거리 : 115.5km

삼보일배 21 일째, 2003년 4월 17일(목)
맑고 볕이 따스한 봄날



오전 8시에 숙소였던 대천성당에서 출발했는데 성당의 수녀님께서는 한참 동안 붉어진 눈시울로 순례단과 함께 걸어주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승사 주지 정욱 스님과 십여 분의 신도들께서 ‘자연을 사랑하자’, ‘세계평화’, ‘남북통일’ 등의 기원문이 적힌 예쁜 연등을 들고 순례단에 합류하여 행렬 규모가 커졌습니다. 편도 이차선 도로에 차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어 비좁은 길을 아침 출근 시간에 차선 하나를 완전히 막고 지나가려니 차들의 흐름이 꽤 지체되었지만 운전자들의 항의 한번 받지 않았습니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령시내를 벗어날 무렵에는 커다란 고개가 하나 있었습니다. 삼보일배로 절을 하며 가기에는 오르막길도 힘들지만 내리막길이 더욱 힘들다고 하시던데, 오늘은 출발하자마자 몸도 덜 풀린 상태에서 험난한 고개 길을 만났습니다. 도시 지역이라 지나다니는 차량은 많고 공기는 더욱 나빠 이중삼중으로 힘드신지 연신 가쁜 숨을 내쉬며 땀도 많이 흘리셨습니다. 그 고개를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대동공업 보령대리점에서 음료수를 두 상자 가지고 와 순례단의 갈증을 식힐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지났을 때에도 대성콜밴에서 음료수 한 상자를 주셨습니다. 넉넉한 충청도 인심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점심 먹을 무렵에는 멀리 서울 조계사에서 주지이신 지홍스님과 열두 명의 동자승이 순례단을 방문하고 함께 걸었습니다. 어린 동자승들은 아직은 장난을 좋아하는 개구쟁이의 모습이 역력했지만, “새만금갯벌을 살려주세요”라고 목청껏 외치기도 하는 등 스님과 신부님을 따라 새만금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소망하는 길에 함께 나섰습니다.

지홍스님은 “동자승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함께 왔다. 두 분이 하고 계시는 삼보일배 수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져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분은 생명을 살리고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자신을 내던질 결단을 내린 것이다. 수경스님의 무릎이 불편하여 걱정이지만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삼보일배 수행 덕분인지 새만금 문제도 두 분의 뜻대로 잘 되어가는 것같다. 새만금 갯벌도 잘 보호되었으면 좋겠다”고 먼 길을 달려온 이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반가운 손님들 덕분에 스님과 신부님께서는 활짝 웃으시며 피로도 잊으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점심을 드신 후에 잠깐씩 쉬시던 스님은 손님들로 북적거린 천막에서 벗어나 조금 떨어진 전봇대 그늘 아래에 더위를 피하시며 잠깐 앉아계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어느 틈엔가 스르르 쓰러져 잠이 드셨습니다. 얼마나 고단하셨으면……
보령시에 살고 계시는 작가 안학수님도 아침부터 삼보일배에 참여했는데, 두 분의 고행을 보시고 “참으로 고독한 일을 하고 계시구나. 세상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어 저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나는 참으로 편하게만 살았었다. 나름대로 의식 있고 할 말은 하면서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두 분의 삼보일배를 보며 내가 직접 나서지는 않고 폼만 잡고 있었던 것같다”고 심정을 털어놓으셨습니다.


11살 난 자훈이는 학교에 현장학습을 신청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순례에 참가했습니다. 자훈이는 “어떤 바다에 방조제를 만들면 천연기념물 같은 새들이 다 사라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순례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순례단에 참여했지만 힘들다고 투정부리지도 않고 오늘의 구간을 잘 걸으며 때로는 스님의 팔다리를 주물러드리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문정현신부님과 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님과 남호근 부장님, 대전환경연합 김종남 사무처장님, 전교조 보령지부 선생님들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여러분들이 참여하셨습니다. 오늘도 멀리 부안 변산 내소사에서 세끼 식사를 마련해주셔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순례에 참가하시거나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 오늘 온 길 : 보령시내 대천성당 – 주포면 보령시농업기술센터(7km)
※ 앞으로 갈 길 : 보령시 주포면 농업기술센터 – 청소면(4월 18일) – 홍성군 광천읍(4월 20일) – 홍성읍(4월 24일) – 예산군 예산읍(4월 27일)
<일정은 날씨를 비롯한 여러 사정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생명과 조화의 땅 새만금갯벌을 파괴하는 방조제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
새만금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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