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태안기름오염][가의도에서 0117] 시린 손, 발, 마음

2008.01.18 | 미분류

 

[가의도에서 0117] 시린 손, 발, 마음

다시, 태안

 어제 태안에 닿은 것은 저녁 일곱 시 무렵이었다. 이번에 내려와서는 가의도로 들어갈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내일 아침 배를 타려면 미리 배가 뜨는 신진항으로 가 하루를 묵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가는 길에 잠깐 만리포엘 들렀다. 물론 갈라지는 길을 놓쳐 그대로 만리포 방향 길을 타기도 했지만 내심 그곳에 한 번 더 가보고 싶어 교차로를 지나쳤다는 걸 안 뒤에도 굳이 차를 돌리지는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걸 뭐… 하면서. 만리포는 처음 방제작업을 시작하던 곳, 정이 많이 든 곳이다. 그곳에 가까워지면서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상황실 정든 그 공무원 아저씨 있을까 했는데 이미 거기에는 불이 꺼져 있어. 그대로 내려가 백사장 들머리에 닿았는데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바람이 불어치는 방향에서 차 문을 열려하니 그걸 미는 것조차 무거웠다. 내려서니 그냥 바람이 아니야, 백사장을 훑어 부는 바람에 모래가 얼굴을 때리네. 마침 간조 때라 물이 한참 빠져 있어, 그래도 모자를 눌러 쓰고 백사장으로 내려서는데 모래 밟히는 소리가 빠닥빠닥, 얼어 있었다. 그렇게 만리포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저 쪽 끝 바위 해안가로 이어지는 곳은 좀 어떠려나, 하지만 날이 어둡고 바람이 몹시 거세 그곳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유류폐기물 마대가 꾸역꾸역 쌓여 있는 거나 재활용해서 지급하는 방제복, 장화 따위 더미가 있는 걸 보아 작업은 그전과 다름 없이 계속 되는구나 했을 뿐. 혹시나 싶어 그곳에서 쓰레기장을 찾아가 벗어놓은 장화 한 켤레와 비옷 하나, 고무장갑을 찾았다. 방제복이야 그 전부터 입던 것이 차에 그대로 있어.  떠나기 전 찾아본 인터넷 까페에 가의도 방제물자들이 모자라니 알아서 준비해 오라는 말이 있던데 정말 아무 것도 없다면 낭패를 볼 테니 말이다.

 

신진항에 들어와

 가의도로 뜨는 배가 있는 신진항, 혹시 이곳이 너무 작은 어촌 마을이라 민박 구할 곳도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웬걸, 이곳 또한 관광지여서 펜션이며 모텔, 민박집들이 불빛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밥 먹는 집에 술 먹는 집, 돈 좀 있으면 회 먹는 집들까지 주르륵. 아침 배가 이르니 내일 아침 허둥대지 않으려면 미리 선착장이나 매표소부터 확인해놔야겠다 싶어 그곳들을 찾는데 어두워 이정표를 잘 못봐 그러는지 이리저릴 지나치기만 했다. 파출소 불빛이 환하게 보여 그리 들어가니까 순경이 하는 말, “오늘도 바람이 이릏게 씬데 아마 낼은 배가 못뜰 거유.” 어허, 이것 참 난감.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바람이 정말로 거셌다. 담배 한 개피 피우려 해도 손이 얼얼하게 시려울 정도. 그래도 혹 날이 지나 바다가 잔잔해지면 배가 뜰 수 있는 거 아니냐면서 일단은 기다려 보기로 한 뒤 선착장과 매표소 위치를 묻고 잠잘 방을 구했다. 우와, 싸게 해 이만 원으로 하룻밤 잘 수 있는 곳을 얻었는데 무슨 방이 이리 좋은겨. 못해도 열다섯 명 엠티를 해도 될 정도.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베란다도 있지, 냉장고에 가스렌지, 텔레비전에 여름에 쓰는 에어컨까지. 방이 너무 크니 이것 참 잠 들 일이 막막했다. 이불을 덮고 누워도 썰렁해, 괜히 일어나서 방 안을 빙빙 돌며 걷네. 밥을 먹고 들어와서도 큰 방이 영 어색해 안 먹겠다던 술을 할 수 없이 또 먹었다. 하하, 할 수 없이!

 

아침 배

 잠을 얼마 못잤지. 새벽 두 시가 되어 겨우 눈을 붙였다가 눈 떴을 때가 새벽 네 시, 그 뒤로는 계속 뒤척였으니. 과연 아침에 배가 뜨겠나 하는 게 계속 머릿속을 괴롭혔다. 사실 괴로워할 것 하나 없이 배뜰 시간에 나가 확인만 하면 그만인 것을, 이 놈의 예민까칠한 성격은 그걸 못 기다리네. 그리고는 배가 안 뜨면 어떻게 할까, 만리포 쪽으로 들어가 일을 하다 나올까, 아님 그간 가보지 않은 모항 파도리 쪽을 가볼까, 아님 신진항 한 켠에 있다는 오염지역으로 갈까…… 쓸데없는 고민만. 그 와중에는 이 고민도 하나 있었다. 배가 안 뜬다 하면 그냥 이 방에서 가져간 책이나 보면서 하루 더 쉬고 있을까, 어차피 바람 세고 날 추운 날에는 얼마 작업도 못할 텐데, 굳이 힘들이면서 얼마 일도 못할 거라면……. 그렇게 계속 눈을 못 붙이다가는 일곱 시 반이 되어 어쨌든 선착장 쪽으로 나가봤다. 고장 사람 같은 분이 있어 물었더니 가의도 가는 배가 뜬다 하네.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숙소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그 위롤 방제복을 입고, 섬에 가지고 들어갈 것들을 챙기고, 혹시 담배가 모자라지 않은지 다시 확인을 하고…… 헐레벌떡 뛰어가 배에 올랐다. 방제복을 미리 입어 그랬나, 선장 아저씨가 배삯 달라는 말은 안하고 그냥 타라 하시네.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해야 일고여덟 사람 정도? 그 가운데에는 방제 봉사 왔다는 여학생들 둘이 있었고, 지역 주민 몇 분과 등산 삼아 나왔다는 이 둘이 더 있었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아니, 배는 떠두, 오늘은 춰서 일을 뭇하는디 머허러 들어가유.” 였다. 배가 출발했고, 잠을 설쳐 그랬나 기우뚱 움직이자마자 나는 다시 등을 기대고 앉아 선잠에 들었다. 배 탄다는 설렘도 없이, 바다 풍경을 보고 싶다는 유혹도 못 느낀 채.

 

언덕 너머 또 너머

  배에서 내리는데, 육지로 나가려 그 배를 타는 주민 분들이 또 다시 같은 말씀들을 하신다. 방제복을 입었으니 누가 봐도 그 일을 하러 온 게 보였기 때문이겠지. “오늘은 춰서 일 뭇허니께 그냥 이 배 타구 다시 나가.”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냐며 씨익 웃으며 섬으로 오르려 해도 붙잡으면서까지 말리신다. “아니, 가 봤자 아무도 웂다니께, 이렇게 춘 날은 일을 뭇혀.” 그래도 그냥 웃어 인사하며 고집을 피워 섬에 올랐는데 섬에 계신 주민 분들도 다 같은 말씀들이다. 오늘은 춰서 암 것두 뭇허는디……. 그 말씀이 이제는 어떤 뜻인지는 대강 안다. 이렇게 춥거나 날이 나쁜 날은 주민 분들이 방제 작업을 쉬시는데, 그럴 때 봉사자들이 들어와 일을 하는 거에 주민 분들이 미안한 마음에 그런 말씀을 하는 거지 아예 일을 못할 상황이란 없다. 물 때가 안 맞아 일을 못한다거나 날이 추워 못한다거나 하는 말들이 다 그렇다는 걸. 그래도 평소 방제 일을 하면 주로 어느 쪽에 가서 하는지를 물으며 그리로 찾아가는데 그리로 이어진 길은 거의 등산로였다. 비탈 언덕을 하나 너머 마을이 나오면 그 너머로 언덕을 하나 더 넘고, 그 길 끝으로 나 있는 자갈밭 해안. 같은 배를 타고 들어온 학생 둘과 함께 그 길을 물어물어 일을 할 바닷가로 내려가니 역시 거기에도 일을 하던 흔적들이 먼저 보였다. 기름 걸레들과 벗어버린 방제복, 고무장갑, 마스크 따위를 담아 놓은 쓰레기 마대에 신고 벗어 놓은 장화들. 그리곤 바닷가를 살펴보는데 아, 정말 심하다. 시커먼 바위와 자갈돌들, 그리고 파도에 밀리는 바닷물 끝에 떠다니는 기름 덩어리들.

 

쪼그리고 앉아

 방제 일에 처음이라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일을 하는지를 대강 소개해 준 뒤 헌 옷가지들을 들고 걸음이 멈춰지는 곳에 쪼그리고 앉았다. 처음 그 학생들에게 이런 게 기름 덩어리라고, 이렇게 검불에 엉겨 있기도 하고 돌틈에 질퍽하게 묻어 있는, 곳곳에 덩어리진 원유부터 걷어내면서 돌에 묻은 기름들을 닦아내면 된다고 얘기할 때만 해도 기름 덩어리가 그 정도나 많은 줄은 몰랐다. 하지만 쪼그리고 앉으니 보이는 게 달라. 여기에도, 또 여기에도, 여기, 여기, 여기, 여기……. 그래서 굳이 거닐어 찾아다니면서 걷을 일이 아니라 앉은 자리부터 걷어나가자 하고 일을 시작하는데, 자갈들을 들어내 닦아내다 보니 보이는 건 더 달라. 자갈 하나를 들어내 닦아내고 나면 그 아래에 또 시커먼 곤죽덩어리 원유가 나와, 그걸 또 닦아내다 보면 그 밑에 더한 곤죽이 엉겨 있어. 결국 하루종일 쪼그려 앉은 자리에서 거의 한 발짝도 움직이질 못했다. 하지만 내가 그 동안 이십여 일 방제 작업을 한 중 오늘 하루가 가장 많은 기름을 만져 본 것 같아. 아, 정말 그랬다. 거닐 때 보는 것과 쪼그리고 앉아 보는 것, 자갈 돌을 들어내며 닦아갈 때 보이는 것은 다 달라. 이제 어느 정도 녹아내린 초콜릿처럼 곤죽이 된 원유 덩어리는 어느 정도 걷어지지 않았나 생각했던 건 아주 틀리고 말았다. 아주 진득한 덩어리 원유들이 자갈 밭 밑바닥까지 가득해.

 

컵라면

 그렇게 셋이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내려왔다. “이렇게 춘디 기름이 닦아져?” 하고 물으시면서 “춰서 주민들은 오늘 쉬기로 혔는디,” 하며 왠지 겸연쩍어 하시는 말씀을 보태더니 조금 뒤에는 다시 내려와 “커피 한 잔썩 먹구 해.” 하고 부르신다. 물끓이는 통에 커피 한 통, 컵라면 한 상자, 그리고 혹시 장갑이 찢어지거들랑 이걸루 갈아 쪄, 하시며 새 고무장갑 몇 켤레에 마스크까지. 그러면서 계속 보태는 말씀이 “춰서 잘 안 닦아지지 않아?”, “지름이 굳어서 오널겉은 날은 잘 안 질 턴디.” 같은 말, “일 허다가 춰면 저 우 우리 집에 가서 몸 좀 녹이면서 혀.” 하는 안쓰러워하시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때 그 어르신이 내려오면서 어느 여학생 둘이 더 내려왔는데, 그 학생들은 어제 오후 배로 들어와 섬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있었다 하네. 이제는 그 학생 둘까지 해서 모두 다섯. 해가 구름에 가리고, 바닷 바람이 오전보다 더 매서워지던 때까지 그 섬에는 그렇게 다섯이 일을 했다. 점심은 어떻게 하나, 만리포나 구름포 같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는 곳에는 적십자나 구세군, 마을 주민회 같은 곳에서라도 점심 같은 걸 준비해 주곤 했는데 오늘은 쫄쫄 굶겠구나 싶더니 컵라면이 생겨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 이곳 가의도도 주민 분들이 나와 함께 일을 할 때는 부녀회에서 점심을 준비해 주곤 하지, 다만 오늘은 주민 분들이 쉬는 날이어서 그게 아니었을 뿐. 아, 맞다, 일을 하던 중 그 어르신 말고도 두 분이 더 다녀가셨는데 그 중 한 아저씨가 그러기도 했어. 그 아저씨도 역시 “오널겉이 춘 날은 일을 혀도 을매 뭇하는디,” 하는 말을 앞에 붙이면서 “이따가 점심 때 디믄 밥이나 먹으러 건너들 와.” 하며 말이다. 그러려면 언덕을 다시 또 하나 넘고 하나를 더 넘어야 했기에 그리 오가려면 버릴 시간이 너무 많아 보여 그냥 컵라면으로 때우긴 했지만 말이다.

 

시린 손, 발, 마음

 춥긴 정말 추웠다. 손이 시려워 자꾸만 곱아들었고, 몸이 떨리는 것보다 발이 시려운 게 더 먼저였다. 내가 주워온 장화가 하필이면 그 안까지 물에 젖은 거여서 더 그랬는지, 내일은 기필코 양말을 두 켤레 신고 오리라 다짐, 다짐을 몇 번이나 했지. 콧물이 떨어질 때는 참 난감해. 기름에 범벅이 된 고무장갑 손으로는 코를 닦을 수도 없고, 비옷 팔뚝이나 방제복 무릎에 코를 닦아보려해도 이미 그도 다 기름이 덕지덕지 한 걸. 일을 하다보면 말간 물코가 나도 모르게 자갈 위로 뚝 떨어지곤 하네. 아참, 이걸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급한 마음에 방제복 무릎 그나마 기름이 안 묻은 곳에 코를 비벼 닦는데 역한 기름내에 구역질이 확 올라오네. 아이 참 나, 콧물 나올 때마다 장갑을 벗을 수도 없단 말이지. 장갑 한 번 벗었다 다시 끼려면 그것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닌 걸. 결국 택한 방법은 학생들을 등지고 앉아 일을 하는 거였다. 에이 씨 뭐, 아무도 못 보면 되는 거지 뭐. 이 놈의 물코는 훌쩍 숨을 들이키려해도 따라 올라오지가 않아. 어후, 콧물아, 그만 좀 나와라……. 내일부터 날이 풀린다더니 이상하게 오후가 되어갈수록 날은 더 차졌다. 바람도 더 세, 몸은 으실으실 떨려. 게다가 더 추운 건 그 작고 쓸쓸한 섬, 그 끔찍한 기름 밭에 고작 다섯이 코를 훌쩍이며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생각없이 춥다, 춥다 나도 몰래 입술만 움직여대다가는 문득 화가 치밀곤 했다. 삼성 개 같은 놈 새끼들에게, 당국에게, 언론에게, 요란한 자원봉사자들의 잔치가 되어버린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들에.

 

마을 사람들

 나가는 배 시간이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았는데 일을 마치고 일어섰다. 같이 일을 하던 학생들이 이장님께 무슨 확인증 같은 걸 받아야 나가는 길 면사무소에서 봉사확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하기에 나도 그리 따라 나섰다. 이제껏 태안으로, 보령으로 일을 다니면서도 그 동안에는 확인증이니 무슨 차량통행료 면제니, 민방위 훈련 면제에 소득공제니 같은 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앞으로 한 동안 신진항에서 이 섬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다니려면 적어도 배삯 면제 받을 증명 정도는 얻어둘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였다.  그 동안에는 그런 혜택이니 면제 받는 것이 이 일에 대한 무슨 보상을 받는 것처럼 여겨져 부러 그런 것에는 외면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나다보니 잠자리며 먹는 것, 오가는 교통삯으로 드는 돈이 장난이 아니긴 했다.섬에도 민박집이 없지야 않지만 신진항에 방을 잡아 놓고 아침 배로 들어와 저녁 배로 나가면서 일을 하면 이 안에서도 다른 볼 일을 보기에 그나마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침 이장님은 오늘 육지에 나가 계셨고, 댁의 사모님도 계시지를 않아 확인서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 길에 어느 아저씨 댁에서 몸을 녹히게 되었다. 어르신들은 벌써 불콰하게 술이 한 잔 되셨더랬지.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한 어르신이 애처로운 얼굴로 몇 번이나 말씀을 하셨다. 우리 가의도에는 다들 늙은이 뿐이라 어디에 가서 무신 말도 헐 줄도 모른다고,  인트넷이니 뭐니 허는 것도 몰러서 그런 야그도 허지를 뭇해…… 그르니 자네들이 우리 가의도가 지금 으떤지를 어디든지 가서 좀 알려줘, 우덜도 먹구 살어야 할 거 아닌가……? 어르신은 몇 번이고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속상해, 마음이 아파.

 

뉴스

 나와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태안군 근흥면의 한 할아버지가 또 목숨을 끊었다 한다. 근흥면이면 신진항이 있는, 가의도가 있는 이곳도 근흥면이야. 여기 어디구나. 얼마 전 한 분에 이어 또 한 분이 목숨을. 자꾸만 이 바닷가에서 만나던 주름 깊은 어르신들 얼굴이 떠올라, 그 얼굴을 닮은 그 어느 분이, 그 애처로운 눈빛을 닮은 어느 분이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왜, 왜 아무도 그 무너지는 절망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아. 맨밥을 꾸역꾸역 삼키는데 잇달아 나오는 뉴스에는 정부에서 백만이 넘는 이곳 봉사자들을 노벨상 후보로 올릴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개 같은 소리, 그래, 우리한테 그 위대하다는 노벨평화상을 주겠다는 소리구나, 이 절망스런 눈물에는 끝끝내 외면을 하면서 요란법석 자원봉사자들의 잔치에 어떻게든 치장에 치장을 더해 다 가려보겠다는 수작을. 그러지 마세요, 제발. 아니, 그러지 마세요로 될 일이 아니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놈들의 장난질에, 놈들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삶과 이 땅과 바다 어머니 자연이 더 망가져버리기 전에.

 

내일, 궐기대회

 내일은 태안 군내 모든 마을의 군민들이 모여 궐기대회를 연다 했다. 태안기름유출 특별법을 만들라는 것, 그것을 통해 책임진상 규명과 보상대책 마련을 하라는 것, 쉽게 말하면 이 억울한 일을 제대로 가리고, 절망으로 내쳐진 이들의 삶을 살려달라는 절규인 것이다. 벌써 두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자연에는 수많은 목숨들이 살고자 버둥치다 모래벌에, 갯벌에, 바위벌에 몸을 비틀어 죽어 있다. 그리고 안으로 썩어가는 바다……. 이곳 가의도 주민들도 내일은 모두 육지로 나간다 했다. 그래서 내일도 방제작업이 없을 거라고, 그나마 오늘은 학생 넷과 함께 해 다섯이 일을 했는데 내일 더 들어오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 이 섬에 남아 있겠구나. 마을 어르신들은 절망 깊은 한숨 뿐이다, 바다는 오늘 밤도 절망에 찬 바람을 세차게 불어댄다.

 

그전에 쓴 후기들 – http://blog.paran.com/gib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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