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일근(님)

2004.08.19 | 미분류

시인 정일근님은 고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분에 대해 알아보다가 찾은 글입니다.
작년 여름 [중앙일보]에 실렸던 글을 마실해왔습니다.

이곳에서 <귀신고래를 기다리며>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고,
“노래패 울림”님들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으니
이런걸 보고,’일석이조’라고 하는가 봅니다.

+++++++++++++++++++++++++++++++++++++++++++++++++++++++++++++++
• 정일근의 여름나기 편지 [바다는 아직 비어 있다]

울산은 고래들의 고향입니다. 고래잡이를 하던 장생포항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직도 울산에 고래고기집들이 성업 중이어서가 아닙니다.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그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50여 마리의 고래 그림이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 바닷가 땅속에서 5천년 전의 고래뼈가 나오기도 하는 곳이 울산입니다.

고래는 6천만 년 전에는 육지에 살던 포유동물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고래는 2천5백만 년 전에 육지를 떠나 바다로 생존의 터를 옮겨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 되었습니다. 외계인이 있었다면 멀리서 지구를 지켜보고 ‘음! 지구의 주인은 고래야.’ 라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 바다에 그 고래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고래가 사라진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사람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고래를 잡아버렸고, 가까운 바다는 고래들이 살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한 지 오래입니다. 고래가 없는 바다는 주인 없는 빈집입니다. 그 바다에 주인 쫓아내고 사람이라는, 고래와 같은 포유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시인>

2003.07.28

===============================================================
정일근의 여름 나기 편지 [고래들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바다에 고래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동해에 고래들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진짜 고래는 아닙니다. 돌고래(Dolphin)와 상괭이(Porpoise) 들입니다. 고래에 비해 작고 어린 친구들입니다. 장생포 포경선 포수들도 고래로 대접하지 않았던 ‘잔챙이’였습니다. 고래에게는 반드시 Whale이란 영어명이 붙습니다.

대왕고래(Blue Whale)는 길이가 25m나 되고 몸무게는 125t이나 됩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나온 고래는 향고래(Sperm Whale)인데 몸무게가 40t이 넘습니다. 유유히 바다를 헤엄치는 그런 고래들이 진짜 고래인 것입니다.

우리 바다에 살았던 고래들의 이름을 기억하시는지요. 귀신고래, 참고래,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 북방긴수염고래, 꼬마향고래, 쇠향고래, 흰고래, 큰부리고래, 민부리고래, 은행이빨부리고래, 큰이빨부리고래, 혹부리고래, 흑범고래, 범고래, 고양이고래, 들고양이고래, 들쇠고래…. 우리는 너무 많은 고래들의 이름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시인>

2003.07.30

===============================================================
정일근의 여름나기 편지] 귀신고래

울산 바다에 ‘극경회유해면’이란 천연기념물이 있습니다. 극경(克鯨)이란 고래가 돌아오던 바다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이지요. 울산사람들은 극경이란 왜색 이름대신 ‘귀신고래’라는 애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잡으려 하면 귀신처럼 달아났다고 해서 귀신고래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 나라에는 귀신고래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습니다. 천연기념물 도감에도, 고래류 도감에도 귀신고래는 그림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귀신고래는 정말 귀신처럼 울산 바다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귀신고래는 울산 바다에서 미역을 뜯어먹고 아기고래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그것을 본 우리의 어머니들도 출산 후에 미역국을 끓여먹었다고 합니다. 미역은 귀신고래가 우리에게 준 바다의 선물인 것이지요. 그 선물 받아 놓고 씨를 말려버려 천연기념물 바다로 귀신고래가 돌아오지 않은 지 올해로 41년 째 랍니다.

<시인>

===============================================================
[정일근의 여름나기 편지] 귀신고래를 기다리며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것이 삶’이라며 시인 안도현은 울산 장생포 앞 바다에서 ‘고래를 기다리며’ 라는 시를 썼습니다. 장생포 바다 사람들은 고래를 기다리다 지쳐서 매년 고래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모형 고래까지 만들어 놓고 왕년의 좋았던 시절을 추억합니다.

울산의 시노래패 ‘울림’은 고래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홈페이지(www.woolrim.com)에 접속해보면 고래가 돌아오길 절규하는 젊은 목소리도 있고, 고래의 슬픈 울음소리도 있고, 울산 바다로 회유해오지 않는 오호츠크 해 귀신고래 사진도 있습니다.

하나의 종(種)이 사라지는 것은 하나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힘차게 불러 돌아오게 하는 그 일조차 하지 못한다면 다시는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 그대, 울산 바다에 오시면 먼바다로 손 나팔을 하고 “귀신고래야!” 그 이름 한 번 힘차게 불러주시길.

<시인>

2003.08.01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