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맵 대장정> 국내최대의 염습지 – 순천만

2005.08.04 | 미분류

그린맵대장정 6일째. 밤새 남해에서 내렸던 폭우는 날이 밝자 그치었고,  쨍쨍한 여름 햇살이 이내 비추었다. 호우주의보를 발령한 기상예보를 비웃기나 한 듯 날씨마저 그린맵 대원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대원들은 남해를 출발하여 남해대교를 건너, 진교, 광양을 지나 순천으로 접어들었다. 국내 최대의 염생습지 순천만을 찾았고  그 아름다운 갯벌의 수채화에 대원들은 하나둘 녹아들기 시작했다.

순천만의 숨결을 찾아서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무진기행’에서 김승옥은 무진나루터를 이렇게 묘사한다. 순천만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순천만은 소설로 형상화 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 윤희중의 발걸음을 떠올리며 순천만을 찾았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순천만이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순천만 갯벌은 줄잡아 200만평. 그중 20 여만 평 정도가 갈대밭이다. 순천만은 갈대밭과 칠면초 군락지, 갯벌 등 염습지의 원형이 온전히 보존된 대표적인 생명의 땅이다. 이곳을 터전 삼아 서식하는 철새, 어패류 등 다양한 청정 동식물로 거대한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순천만은 바다의 짠물과 민물이 교차하여 반 짠물 지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육지에서 유입되는 유기물과 토사, 바다에서 밀려오는 유기물 등이 교류, 혼재 하면서 넓은 퇴적층을 형성하고 있다. 원형이 잘 보존된 염습지는 육상생태계와 갯벌, 해양생태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점이지대이며 순천만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해양 수산물은 총 바다면적의 8%를 차지하는 기수지역에서만 50% 생산될 정도로 기수지역의 종 다양성은 풍부하다. 경계와 혼합의 미학은 기수지역 말고도 한류와 난류의 교차,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의 교차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름과 다름, 차이와 차이가 만나 새로움을 빚어낸다. 법고창신의 필요성, 차이에 대한 이해, 다양성의 소중함 등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연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순천만의 대표식물 갈대와 칠면초



갈대군락은 원의 모습을 취하며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지금 존재하는 원형의 갈대 섬들은 4-5년 전에는 없었다. 육지에서 멀리 밀려난 갯벌 한 가운데에 조그마한 갈대집단이 보인다. 저 작은 점들도 부단한 자기 확장을 통해 앞으로 제법 큰 원형의 갈대 섬을 형성할 것이다. 첫걸음의 힘, 한 뿌리의 힘은 그래서 무섭다.
칠면초는 갈대밭 너머로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일곱 가지 색깔로 변한다하여 이름조차 칠면초인데 마른흙, 젖은흙을 가리지 않고 염분이 있는 갯벌에 고루 퍼진다. 순천만 기수지역의 역사가 8000년인 것을 감안하면 칠면초의 염분에 대한 적응과 정착역사도 그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칠면초의 붉은빛은 순천만의 노을과 닮아 있다. 무채색의 갯벌위에 펼쳐진 붉은 칠면초 군락들은 순천만 특유의 색감을 이끌어낸다.

순천만의 진객 흑두루미



10월하순경 찬바람이 불면 순천만에 흑두루미 200여 마리가 찾아온다. 흑두루미는 서양에서는 검은 수녀복을 입은 거룩한 수녀로 인식되었으며, 순천만 주민들에겐 ‘두리’라 불려지는 황새목 두루미과의 새이다. 흑두루미는 국제희귀조적색목록에 그 이름이 등재되어 있고 현재 전 세계에 1만여 마리의 개체가 남아있는 위태로운 새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천연기념물 228호의 감투를 쓰고 있다. 흑두루미들은 시베리아에서 여름철에 번식을 하고 한반도나 일본열도에서 겨울을 난다. 대부분의 흑두루미는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에서 집단 월동한다. 문제는 한곳에 집중적인 흑두루미의  월동으로 전염병이나, 독감 같은 질병으로 인한 절멸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체 월동지로서의 순천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3-4년 전까지 순천만의 흑두루미는 칠면초 끝자락의 갯벌에서 겨울을 지냈다. 하지만 지금 흑두루미가 찾는 곳은 동천이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갈대 사이의 공간이다. 사람들의 간섭과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이들은 더욱 안전한 곳을 선택하였다. 과연 탐조객들이 몰려드는 동천둑에서 그곳은 갈대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같은 흑두루미인데도 이즈미에서의 흑두루미는 사뭇 다르다. 일본에서 흑두루미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으며, 오히려 먹이를 주면 가까이 접근한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흑두루미의 사람에 대한 기억과 경험은 유전자 정보 속에 온전히 남고 이는 곳 행동의 차이로 이어진다. 반세기 동안 인간에 의한 밀렵이나 직접적 해코지가 없었던 DMZ의 동물들은 사람을 덜 경계한다. 동물은 사람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이다. 앞으로 한반도와 한국인들에 대한 생물들의 유전자 정보가 ‘두려움’에서 ‘친근함’으로 점차 바뀌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세계적 자연유산 순천만



순천만의 인지도는 이미 국제적으로 더 높다. 세계 최대의 혹부리오리 월동지이고, 국내최대 검은머리 갈매기의 월동지이자. 한반도 유일의 흑두루미 월동지이다. 2004년엔 동북아시아 두루미 네트워크 가입승인을 받았으며 람사협약 보존 습지에 등록 중에 있다. 이렇게 소중한 순천만을 잘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개발의 욕망을 누르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이름 그대로 順天 -“인간의 손을 함부로 대지 말고 그냥 하늘의 뜻을 따르라.” 이것이야말로 순천만의 미래를 담보하는 최선의 원칙이자 해답이 아닐까 한다. 원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갯벌, 칠면초군락, 갈대밭을 거치면서 풋풋한 내음을 풍겨온다. 순천만의 경관을 눈에 꼬옥 담고서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새들의 비행편대와 갈대줄기들은 힘찬 날갯짓과 흔들림으로 끊임없는 안녕의 인사를 해주었다. 소설 속 윤희중이 허무를 안고 순천만을 떠나갔다면 그린맵 대원들은 ‘희망’의 두 글자를 가슴에 품고 순천만을 떠난다.

글 : 그린맵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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