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생태학교] 지리산을 가다.

2005.08.24 | 미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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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0일에서 15일까지 지리산을 가다.

지리산!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읽고 또 읽었다. 삼대 째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고, 이슬의 눈과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고,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그런 이들만 반성하러 오란다. 지리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피가 끓는다는 노랫말처럼,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절절함을 안고 지리산 일대를 누빈다는 설레임이 내 온몸을 절정으로 달아오르게 했다.

이번 청년생태학교에서는 지리산 전역을 모둠별로 나누어 그 곳에 몸담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돌아보고 지리산 생태계를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첫 날과 둘째 날은 중산리에서 숲과 야생화에 대한 교육과 양서․파충류와 어류,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셋째 날부터 다섯 째 날까지 모둠별로 지리산 전역을 뛰어드는 현장의 시간을 가졌으며 마지막 날은 도편수 아우름지기 박충수님 댁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녹차 맛을 즐겼다.

우리는 칠선조로 평촌천을 따라 대원사 계곡을 아우르면서 조개골에서 점심을 먹고 경남 산천인 새재에 올라 오봉마을에 이르는 거다. 그곳에서 오봉스님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칠선조가 뛰어들었던 일정을 첫째 날부터 정리해 보겠다.

첫째 날 시천면 덕산중학교에서 대원사 소막골 야영장까지 하루를 걸어가야 했다. 우리의 발걸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60리터 배낭을 메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평촌천을 따라 걸어갔다. 배낭의 무거움이 점점 어깨를 짓눌러 왔다. 땀과 함께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빛과 온전히 함께한 시간이었다. 최대한 내 몸을 맡긴 채 걸어야 했다. 그것만이 힘들지 않고 걸어가는 내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따가운 볕에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게도, 힘차게 흘러가는 물에게도, 간들거리는 나뭇잎에도, 내 몸을 고스란히 맡기며 걷고 또 걸었다.

동신마을에 도착했다. 동신마을의 당산목 역할을 하는, 우뚝 솟은 아주 늠름하게 뻗은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다. 그 느티나무 사이에 철재로 지붕을 얹은 원두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우린 잠시 목을 축이고, 마을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70년 대 새마을 운동으로 획일화된 집들과 원두막은 옛모습의 원형에서는 벗어난 딱딱하고 정감이 없어보였다. 텅빈 원두막에서 잠시 땀을 식혔다. 저~느티나무는 다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동신마을의 사람들과 마을에 담긴 삶의 애환들을 고스란히 품고 있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나무 아래 모여, 웃고, 울고 했던 수많은 이야기보따리를 느티나무에게 물음을 던지며 우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논과 밭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져있다. 이제 막 꽃을 피워내는 벼들이 바람에 일렁거렸고, 딸기밭에는 어르신들이 딸기를 지탱하는 핀 같은 것을 꼽고 있었다. 하천 옆 농경지와 사람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그 대화는 단절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강에게 요구를 한다. 물과 나누었던 몸짓과 말들은 이제 저멀리 사라져 갔다. 저 묵묵히 흐르는 물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마음을 주는데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말이 없어지고 강이 메말라 가면 귀를 열어 줄까. 대단위로 경작되는 딸기 밭, 계절에 맞지 않는 상품을 출하하기 위해 어떤 것이 자행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평촌천에는 넓은 수중보가 곳곳에 있었다. 옛날 자연스런 형태에서 벗어난 높은 수중보를 만들다보니 어류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한다. 그리고 수중보에 걸쳐 놓은 쇠파이프와 나무는 전혀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져 있었다. 결국은 우리 일행중 고라니 (우동걸) 님이 썩은 나무가 부서지면서 물에 빠졌고, 그로인해 발가락을 심하게 다쳤다.  지역 내에서 시급한 관리가 필요하다.

천을 따라 넓은 도로가 건설 중에 있다. 내년이면 넓게 아스팔트가 깔린 큰 길이 나 있겠지. 큰 도로가 나다보니 다리도 새롭게 크게 놓아야하고, 그러다보니 무분별하게 산을 깎아내려 산사태가 일어난 곳도 있었다. 어디까지가 끝일까. 얼만큼을 더 잘라내고 더 허물어야 되는걸까.

대원사입구 길목에는 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의 흔적이다. 아니 내 모습의 흔적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의 흔적이다. 우리의 뒷모습이 바로 저 쓰레기더미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휴식을 얻기 위해 자연을 찾는다. 그러나 자연은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번쯤 뜨거운 뙤약볕에서 이글거리며 몸부림치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겠는가. 평촌마을 어귀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시원한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우리들을 보자 어르신들은 신신당부를 한다. 저 ~깨끗한 계곡에 여행 온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찍어서 고발하란다. 그 어르신 말씀처럼 고발하면 달라질까. 그러면 사람들이 가진 의식이 바뀔까. 그렇게 된다면 그 어르신 말처럼 꼭 그렇게 해보고 싶다. 대원사입구 야영장에서 쏟아내리는 별과 함께 비박을 하고 다음 둘째 날을 맞이했다.

둘째 날은 대원사에서 조개골을 지나 오봉마을에 이르는 거다. 대원사 계곡을 끼고 걸어가는 지루한 포장도로가 잘 닦여져 있었다.
그 길은 사람을 위한 길인지 차들을 위한 길인지 모를 정도였다. 차들은 쌩쌩 내달렸고, 한 켠에 서서 걸어가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길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어가야 했다. 산과 맞붙은 도로옆에는 나무들이 뿌리를 앙상하게 드러낸 채 아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저렇듯 내버려둔다면 아주 위험한 산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조개골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춘자야~’를 구슬프게 불렀던 한 아낙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무엇이 저리도 서러웠을까. 삶에 지쳐 찌든 애환을 지리산 한켠에 쏟아내고 토해내는 한 여성의 삶이 슬프다 못해 애석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춘자야~’를 뒤로 한 채 새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 곳은 출입통제지역이었다. 통제지역에서 통제지역을 빠져나오는 묘한 시간이었다. 새재로 오르는 길은 조릿대들로 무성했다. 내 키보다도 더 자란 조릿대숲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조릿대를 헤치며 걸어가는 길은 무섭고 두렵기까지 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그곳을 최대한 몸으로 느끼고 싶었는데, 뒤따라가는 내 몸은 무서워서 어쩌지 못하고 앞사람을 놓칠까 두려워 숨죽이며 걷고 걸었다. 새재 능선에 올랐다. 내가 걸어온 산자락을 내려다보니 조개골이 저 아래 움푹 패인 머나먼 곳에 있었다.

숲이 우거진, 그래도 극상림에 속한다는 숲에는 이러한 조릿대들이 많이 있다. 조릿대가 자연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좋은 점과 그렇지 못한 점이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이 숲은 또 다른 형태를 띨 것이다.

새재에서 내려가는 길은 굉장히 가팔랐고, 이곳에서 만났던 피나물, 도둑놈의갈고리, 고로쇠나무, 층층나무, 서어나무, 단풍나무, 등 많은 식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이 곳은 고로쇠 군락지였다. 고로쇠마다 구멍이 뻥뚫려 있었다. 출입통제 지역에 몰래 들어와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무작위한 행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남긴 아픔의 흔적들뿐이다.

출입통제지역을 빠져나와 잘 닦여진 임도를 걸어 오봉마을에 이른다. 산을 깎아지른 임도 옆 산은 흙과 돌들이 쓸려 내려와 도로를 타고 흘렀다. 그 임도는 생명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시멘트 길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보니 풀들로 가득한 비포장도로가 대조를 이루며 나를 이끌고 있었다. 그럴 것이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두면 자연은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다. 사람들의 손과 발이 뻗치지 않는 한 말이다.

그 출입통제지역을 통과하면서 여러가지 많은 생각들이 겹쳐 흘러갔다. 나는 무슨 특권으로 저 길을 걸어왔을까. 특권인양 들어가는 우리들과 불법으로 들어가서 고로쇠를 채취하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까. 우린 자연생태계를 탐사해서 이런 곳을 보호하기위해 다녀왔다고 말하면 되는 걸까.

그렇게 오봉스님댁에 들러 하룻밤을 자고 우린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 청년생태학교에서 느꼈던 몇 가지를 말해보겠다. 청년생태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다른 교육과는 다른, 한가지 교육을 하더라도 좀 더 세밀한 관찰과 토론이 이루어지 못했던 점이다. 그리고  좀 더 심층적인 가치관 교육과 생태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글 : 1모둠 황재남(질경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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