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섬 ‘위도’는 핵폐기장을 꿈꾸지 않는다

2003.08.17 | 미분류

‘홍길동전’의 허균이 꿈꾸었던 율도국의 이상향이자 ‘심청이’가 빠진 인당수의 배경이기도 한 위도는 천혜의 경관과 서해안에서 가장 많은 고기떼가 몰리는 청정해역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인근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와 새만금방조제의 영향으로 ‘위도 군산 청어 엮자’라고 강강수월래에서 노래했던 풍어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지난달 14일 부안군수의 핵폐기장 유치 신청으로 위도는 다시 큰 아픔과 갈등에 놓여 있다. 원전과 새만금방조제로 인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보상지역에 포함되지 않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빚과 가난을 안아야 했던 위도 주민들에게 핵폐기장 유치는 현금을 보상받아 빚 갚고 고향을 떠난다는 절박한 가난의 선택인 것 같았다.

그러나 핵폐기장을 유치하면 현금으로 보상한다는 홍보와는 달리 정부는 이제 현금 보상은 불가능하단다. 돈으로 진실과 생명을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내홍이 계속되고 있는 위도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사회 문제를 돈으로 진실을 가린 채 처분하려는 방식에 다름 아니다. 주민을 속이고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낡은 방식을 참여정부도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정부가 위도를 최종 부지로 발표하기까지 부안군 주민들에게 그 흔한 설명회나 공청회 한번 열지 않았다. 부지지질조사위원회는 단 한차례의 현장조사만으로 위도가 핵폐기장으로 안전하다고 근거를 댔다. 부안군민들의 정당한 의사표현은 공권력에 의해 저지됐다.

지난 기간 영덕.안면도.굴업도.영광.고창.울진.삼척에서, 그리고 지금 부안에서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주민의 외침이 이어지고 있다. 핵폐기물 처리 방식과 안전성 문제 해결 및 에너지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도 후련하게 드러내 놓고 사회적으로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찾아 볼 수 없다. ‘참여정부’라면서도 참여의 통로를 꽉 막고 있다.

거창하게 제시되는 물량 중심의 목표로 선진국에 오르고 있음을 내세운다. 그러나 선진사회를 구현하는 참모습과 진가는 다양성 사회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과 참여를 통해 사회적인 합의를 투명하게 이끌어 내는 정부의 내공과 그 실행으로 발휘된다. 과거 개발독재식으로 공권력으로 밀어붙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주민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것은 가장 후진적인 행정이다.

후진적 행정이 그나마 설득력을 가지려면 핵폐기장 마련이 ‘발등에 불’이어야만 한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주장대로 핵폐기장을 당장 짓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진실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한수원이 개발한 압축기술을 통해 원래 부피의 10분의1~20분의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어 원전수명이 끝나는 2020년대까지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에 저장이 가능하다. 고준위 핵폐기물은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건식저장방법을 이용해 각 발전소 부지 안에서 발전소 수명이 끝날 때까지 보관할 수 있다.

현재 네 곳 원전 부지에 보관 중인 중저준위, 고준위 핵폐기물을 한 곳으로 옮긴다고 안전하게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잦은 핵폐기물 이동 과정에서 사고 위험만 높아질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명이 다해 원전 자체가 핵폐기물 신세가 될 때를 대비해 종합적으로 이를 처리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원전 양산으로 갈수록 처리가 곤란한 핵폐기물 발생을 늘리기보다 전력수요관리나 신재생에너지로 비전을 찾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8.13 중앙일보 마이너리티의 소리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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