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6] 농촌 소득 높이기와 생태마을 가꾸기에 여념 없는 (주)이장

2004.05.24 | 미분류

난생처음 공기가 달다는 느낌이 와락 달려드는 4월2일 이른 아침, 춘천행 기차에 올랐다. 남춘천역에서 20여분을 더 달려 목련이 소담스레 피어 있는 청기와 벽돌집, ‘(주)이장’에 이르렀다. ‘생태가치를 지향하는 기업, 이장’. 기업이라고 하면 대문짝만한 간판을 이고 앉았으련만 겨우 손바닥만한 크기의 ‘이장’이라는 문패는 그 소박함만으로도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재미있는 풍경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앉은뱅이 책상 2개가 덩그러니 자리잡은 거실과 쭈그리거나 의자에 앉아 뭔가에 열중하는 사람들, 그리고 좁은 방들. 따뜻한 햇살이 머무는 방에서는 방송국 드라마 제작팀이 대형 세트장의 재활용 방안을 의논하고 있었다. 세트장 건설 초기부터 촬영 뒤 세트장의 활용방안을 고심하면 농촌지역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실 한쪽 면에는 ‘명예리민패’들이 놓여있었다. 강원도 화천군 신대리와 용호리를 유기농 생태마을로 바꾼 공로로 받은 것이다.

마을 가꾸기, 공동체의 복원 ‘이장’은 좀 특별한 기업이다. ‘생태적 가치’를 지향하고, 모든 사업과정에서 주민의 의견을 모으고 참여시키는 것을 필수적으로 여긴다. 이윤 추구가 아니라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기업의 목표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실험’은 ‘현실’로 바뀌고 있다.

이장이 자연과 공생하는 생태주의, 지속 가능한 공동체성의 회복, 다양한 활동으로 만드는 네트워크를 기업이념으로 삼은 까닭은 이장 사람들의 과거 이력에서 비롯한다. 1990년대 초 불교환경교육원 수료생들이 환경과 공동체에 헌신하자며 10년이 넘도록 환경운동을 해온 동호회 ‘초록바람’ 회원들과 서울대 환경대학원 출신들이 만든 벤처기업인 ‘인터넷 이장’이 만나 2001년 ‘(주)이장’으로 새로 태어났다. ‘초록바람’은 생활 속에서 환경운동을 실천해왔고 ‘인터넷 이장’은 온라인에서 소비자와 유기농 생산자의 정보를 수집하고 연결하는 일, 환경친화적 마을개발 사업 등을 했다.

물론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 유기농산물 도시락 전문점 ‘이장네 밥집’은 개업 3개월 만에 문을 닫았고, 2002년 7월에 문을 연 유통매장 ‘초록마을’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을 벗어나 춘천에 사무실을 옮긴 특별한 까닭이 있냐는 질문에 신진섭(37) 기획실장은 “이장이 처음 맡은 생태마을 가꾸기가 춘천 근처 화천군 신대리와 용호리에서 진행되면서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라며 “그렇지만 춘천이 종착지는 아니고 잠시 머무르는 중간 기착지”라고 말했다. 이들은 50∼70가구가 함께하는 생태 공동체를 만들 계획도 있다.

이장이 현재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지역의 생산단위이자 생활단위인 농촌마을의 소득을 높이는 일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사람들의 생활과 자연환경을 보전·정비하는 생태마을 가꾸기 사업이다. 이장은 함양·장수·영암·홍천·제천 같은 전국 40여곳에서 마을 가꾸기와 농장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생태마을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신 실장은 지난 3년 동안 마을 가꾸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기록한 마을 이장님들과 관련 공무원들의 연락처를 적은 수첩을 보여주었다. 여섯 쪽에 걸쳐 빼곡히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멀리 제주도와 가깝게는 서울까지 한달 평균 10건 정도 상담문의가 오는데, 이 가운데 2~3건은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마을 가꾸기 사업의 궁긍적인 목표는 농촌 삶의 질을 높이고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마을의 특성 등 지역여건에 대한 리스트 작성과 분석 → 주민과 함께 마을의 중점과제 선정→ 자원과 자연 조건을 기반으로 사업계획(사업구조 개선·주민공동체 활성화 등) 설립 등의 순으로 이뤄진다. 이 사업의 결과로 강원도 화천군 신대리는 오리농법을 도입하고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단양 한드미 마을은 방치된 마을회관을 마을식당으로 꾸미고, 숲속에는 방갈로를 만들었다. 허물어져가는 콘크리트 담 대신 돌담길을 만들고, 낡은 집들을 개조해 전통체험관으로 변화시켰다.

농장을 생태 관점에서 개발 농촌의 변화와 함께 도시와 농촌의 실질적인 연계를 위해 ‘이장’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 도시 소비자들을 농촌 일손으로 참여시키는 ‘농촌문화 체험단’과 농장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농장 만들기’ 사업이다. 농장 만들기 사업은 농산물 생산 이외에는 관심 밖에 있던 농장 안의 작은 앞개울, 버려진 뒷산, 농사짓기 어려운 한계농지, 농장 주위에 흩어져 있는 작은 볼거리, 역사문화 자원 등 농장이 원래 가지고 있는 자원을 생태 관점에서 개발해 지속 가능한 농장을 운용하는 프로젝트다.

이장의 임경수(40) 대표는 “농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역의 자원과 현황을 잘 파악해 발전시킬 수 있는 인적자원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라며 “대안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장’은 농촌마을 가꾸기 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 스스로 할 일을 찾아내고 마을을 발전시킨다. 이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와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과 훈련이 이뤄지게 되고, 주민들 스스로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마련된다. 지금까지 비교적 성공적인 마을 가꾸기 사업을 진행한 지역의 공통점은 마을 안에 지도자를 중심으로 젊은 농가들이 협력해 마을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촌을 푸르게 가꿀 젊은 사람들을 농촌으로 다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을까. 임 대표가 내세우는 하나의 대안은 ‘귀농운동’이다.

이글은 한겨레21의 <김타균의 풀뿌리대안운동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연재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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