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녹색은 어떤 희망일 것인가?

2005.01.22 | 미분류

([녹색희망] 신년호를 위해 써 보냈던 글)

생명 죽이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언덕배기의 아름드리 생명의 숲을 뭉개버리고도 뻔뻔스레 재산권 행사라 한다. 천년만년 자연 속에 뿌리박고 평화스럽게 살아온 생명도 합법(?)의 칼질 앞에 이미 보호받을 가치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 재산권이고 생명보다 힘센 것이 합법이다. 개발주의의 텍스트다.  

절대로 예사로울 수 없던 일이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생명이 잘려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죽기 직전 생명이 지르는 마지막 외마디 신음 소리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생명의 죽음을 슬퍼해 줄 후손도 없고 서러워해 줄 동료도 없다. 생명은 혼자 슬퍼하고 혼자 서러워하다 그렇게 혼자 죽는다.

생명은 ‘어제’처럼 ‘이제’도 강제로 죽고, 또 ‘올제’에도 수탈에 시달리다 죽을 것이다. 생명을 강탈하면서 편리와 소비문화를 구가하고 생명을 살육하면서 이익과 개발주의를 합창한다. 대량 학살의 축제 판이다.  

이 마당에, 녹색 사람은 어떤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인가. 생명 학살의 현장에서 절망 이외에 무슨 이야기를 건넬 수 있을 것인가. 짐짓 희망을 말한다면 그 희망은 무엇일 것인가.  

희망은 절망 앞에서 드리는 생명의 마지막 기도이다. 그 기도는 죽음을 거부하는 생명에 대한 ‘믿음’에 터하고 있다. 그러므로 희망은 절망 너머, 절망의 저 편에 놓여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바람이 희망의 근거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의 실체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그러나 희망은 현실을 등지지 않는다. 현실이 고통스럽다 하여 어디론가 퇴각코자 하는 도피주의가 희망의 길일 수 없다. 희망을 잃은 사람은 생명을 포기하는 거짓 생명체다. 희망을 찾아 희망을 지키는 사람은 차라리 현상태를 허물고 그 위에 새로운 삶의 질서를 일군다. 희망은 물러서지 않고 절망과 정면으로 대결한다. 절망의 현실을 넘어 희망의 세상을 만든다.

녹색 사람의 희망은 바로 이런 것이다. 현상태의 공고화와 절대화를 떠받들고 있는 내 ‘안’과 ‘밖’의 가치 지향성과 싸우며, 현상태를 정당화하는 지식과 그 상태를 강화하는 일상의 성벽을 부수는 데서부터 그 싹이 튼다.

오늘따라 녹색에 대한 바람은 더욱 간절하다. 싸워야 할 거대한 절망의 잿빛 세계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켜가지 않는다. 맞대결한다. 이것이 ‘녹색 사람다움’이다.

새해 맞아, 우리 모두 한자리 하여 녹색 희망을 이야기하고프다. 서로 부둥켜안고 입맞춤하면서.  

녹색연합 상임대표 박 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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