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생명들의 아우슈비츠 새만금

2006.06.12 | 미분류

▲ 새만금의 말라죽은 길게

글 : 백용해 (녹색연합연안보전위원장)

갯벌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지구의 환경과 인간의 삶에 수많은 이득을 가져다주는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갯벌의 다양한 생물들을 먹거리로 이용하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가진 우리나라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갯벌이 주는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나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갯벌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정치적 판단과 기업의 개발논리에 밀려 매립과 간척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근간 우리 사회의 환경문제 중 가장 큰 화두를 던졌던 새만금간척사업도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결국 갯벌은 매립보다 보존이 훨씬 높은 경제적 가치가 있음에도 단지 농지조성이라는 당초 목적을 고집하는 정부와 이를 법리라는 제한적인 틀 속에서만 판단한 사법부로 인하여 우리의 후손에게 오염과 훼손으로 얼룩진 자연을 물려주게 되었다.
값싼 경제논리로 풍요로운 새만금갯벌을 포기하자던 사람들은 그럴듯한 도표와 미사여구로 말잔치를 벌여가며 새만금간척사업이 마치 국가와 지역사회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 양 떠들어 댔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간척 후에 농지를 조성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개발세력들의 후면에서는 농지로서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농지보다는 상업용지로의 이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정작 이 땅의 주인인 국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은 채 말이다.

지난 4월 21일 전격 시행된 새만금방조제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한 달 남짓 지난 5월말 새만금은 세계대전과 관련된 다큐프로그램에서 종종 등장하는 참혹한 죽음의 현장인 ‘아우슈비츠’ 그 자체였다. 메말라 버린 웅덩이에는 수많은 게와 고둥들이 모여들어 하얗게 말라버렸으며 물기가 남아있는 수변부에는 세상을 원망하듯 주먹만한 입을 딱 벌린 채 백합이 죽어 있었고 갯벌표면 작은 구멍의 주인인 갯지렁이는 몸마디가 녹아 토막 난 채 죽어가고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 곳에서 확인한 수많은 죽음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다.

부안읍에서 격포가는 30번 국도변에는 새만금을 지키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지킴이들이 서있는 해창장승갯벌이 있다. 마을입구나 산모퉁이에 서 있어야 할 장승들이 갯벌에 발을 묻은 이유는 바로 민족의 혼을 담아 새만금갯벌을 지켜달라는 지역 어민들의 간절한 소원에서였다. 그러나 지금 그 장승들의 발등에는 갯생명의 풍요로움은 사라지고 갯질경이와 해홍나물이 돋아나 풀밭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갯벌이 사라지면서 육상화가 진행되는 초기에 나타나는 염생식물로 이미 이곳은 갯벌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해창갯벌을 누비며 자신들이 주인임을 강조하던 칠게, 농게, 방게, 댕가리, 바지락은 삶의 끈을 놓은 채 빈 껍데기만 남아 초라한 주검으로나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해창갯벌을 등지고 해안도로를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계화도의 갯벌은 그 비참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우리나라 백합의 주생산지였기에 그 어느 갯마을에 비해서 풍요롭고 활기에 넘쳤던 계화도의 살금갯벌, 이 갯벌은 이제 카우보이모자를 눌러쓴 채 외국 영화배우가 저 멀리서 말을 타고 타날 것 같은 분위기의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황량한 그곳에 주인 잃은 갯그물과 속절없이 죽어버린 갯생명들만이 이곳이 갯벌이었음을 보여줄 뿐 그 어느 곳에서도 풍요로운 갯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무수히 많은 생명들을 앗아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지금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훌륭한 일을 했다는 착각에 빠져 두 다리 뻗고 잠들고 있으련만 그 한마디의 결정에 황금의 땅인 갯벌이 사막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생명이 말라버린 갯벌 위로 한 줄기 바람이 소금기를 날리고 그 위에 나뒹구는 죽음들 뒤로 황혼이 물들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갯생명의 한을 대변하듯 검붉은 열기를 토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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