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너지 자립이 만들어내는 ‘에너지 희망 지수’

2006.08.21 | 미분류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와 날마다 치솟는 유가에 대한 소식이 텔레비전과 신문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지구온난화현상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하루빨리 화석연료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위기의 징후가 현실화되는 지금, 우리는 에너지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는 정부가 ‘국가차원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에너지정책’에 관한한 개인과 지방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공간과 권한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중앙집중식 에너지 정책이 개인과 지방정부를 에너지 정책의 ‘객체’이자 ‘방관자’로 만들어버렸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단기간의 안정적 에너지 공급에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를 갖추는 것과는 멀어졌다.

우리나라 에너지 사용형태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력도 중앙집중식이다. 대규모 발전소에서 발전한 전력을 송전탑을 통해 각 가정으로 보낸다. 중앙집중식 에너지 공급 방식은 환경 불평등과 낭비를 가져온다. 서울 시민들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다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멀리 월성이나 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송전탑을 통해 경상남도와 북도를 거쳐, 강원도를 지나 온 산과 들을 가로질러 서울에 도착한다. 에너지가 어떻게 생산되어서 어떻게 집까지 공급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서울 사람들은 그만큼 에너지를 흥청망청 낭비한다. 지역에서 에너지를 대량으로 생산해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보내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어떤 지역에서는 에너지 생산과 수송으로 인한 피해를 감당하는 반면 어떤 지역에서는 에너지 생산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은 채 편익만 취하기 때문이다. 또 대규모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 원자력이나 화력 발전과 같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에너지원에 의존하게 된다.

한국의 지속가능하지 않은 에너지체제를 지속가능한 체제로 돌리기 위해서는 중앙 집중에서 분권으로, 대규모에서 소규모로, 재생 불가능한 것에서 재생 가능한 것으로, 전문가와 기술자 중심에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에너지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결국 답은 지역의 ‘자연자원’을 활용해서 에너지를 생산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다. 지역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일단 에너지 효율향상과 에너지 절약을 통해 외부에 의존하는 절대적인 에너지양을 줄여야 한다. 또 적극적인 방법으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재생가능에너지 자원에 투자해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야 한다.

1995년도부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에너지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한다.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중앙정부는 매5년마다 ‘에너지이용 합리화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매년 ‘에너지이용 합리화실시계획’을 수립해서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너지계획은 지역별 에너지 소비 현황이나 가용에너지원 파악과 같은 기초자료 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다 지방자체단체의 담당 인력과 전문성 부족으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지역에너지 계획 대부분이 에너지 절약에 초점에 맞춰있었다.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지역에너지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며, 권한을 위임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못한데다 지역은 중앙에서 알아서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방식에 편하고 익숙했던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정부 모두 지역에너지 활성화에 대한 목표와 동기가 없었다.

정부에서 지역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는 1996년부터 시작한 지역에너지사업이 유일하다. 지역에너지사업은 지방자치단체의 에너지절약과 재생가능에너지 설비투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태양광발전시설, 풍력발전시설 설치와 같은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비용을 보조해준다. 지자체별로 공모를 통해 지원하는데, 2003년까지 시들하던 이 사업은 유가상승과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경쟁률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05년도에는 16개 광역지자체 111개 사업에 608억원이 투자되었다. 지역에너지 자립은 자발적인 노력보다는 국내외 상황이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이 더 큰 작용을 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의 지역에너지사업 지원 규모도 늘여야겠지만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더욱 활성화해서 민간의 에너지사업 참여를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에너지 조례는 지역에너지 자립을 위한 제도적 기틀을 닦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자체가 주도해 지역에너지 사용의 특성, 지역경제와의 연관성, 그리고 에너지 사용자의 성향을 고려한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이용체계를 구축하는 지역에너지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특별시가 2002년 1월에 서울특별시에너지기본조례를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11개 지자체에서 만들었다. 조례는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제도화했고, 에너지 전담부서 설치를 의무화했는데, 남아있는 과제는 적극적인 실천이다. 오는 9월 시행을 앞둔 에너지기본법은 지자체에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스템 구현의 법적 책무와 그에 상응한 권한을 확보해주고 있다. 앞으로 에너지기본법과 지역에너지 조례가 지역에너지 자립을 위한 법적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너지 자립에 있어서 가장 희망적인 곳은 바로 제주도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7월1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재생에너지 업무를 전담하는 청정에너지과를 신설했다. “삼다도”라 하여 바람이 많기로 유명한 제주지역은 특히 풍력발전이 유망하다. 1997년부터 지역에너지사업으로 행원풍력발전사업을 추진한 결과 매년 21,900MWh의 전력을 생산하여 인근 9,000여 가구에 공급하고, 전력 판매수입도 연간 14억원에 이른다. 지역의 청정자원인 바람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는 그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에너지 믹스가 중요하다.

따라서 제주도에서도 태양광 발전, 지열에너지, 바이오가스 활용 열병합 발전과 같은 다양한 재생가능에너지원에 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바이오가스는 제주도에서 많이 발생하는 폐기감귤과 가축분뇨를 활용하여, 가스를 생산하는 방법이다. 가축분뇨의 해양투기에 대한 친환경적인 대안이면서 에너지도 생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국토 최남단 섬, 마라도에는 150kW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전기를 만들어낸다. 섬 전체 46가구의 전기공급을 자립화해서,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에너지자립 100%를 달성한 셈이다. 태양이 주는 에너지로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바로 사용한다. 제주도는 현재 신재생에너지로 전력수요의 2.1%를 충당하고 있다. 지역에서 만들어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지역주민들을 ‘에너지’와 가깝게 만들어준다. 내가 힘들여 만든 에너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에너지 낭비할래야 할 수가 없다. 관광의 도시 제주도에는 렌트카를 이용해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렌트카에 제주도의 유채를 활용한 바이오디젤을 넣어 달린다면, 관광객들에게 청정에너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제주도의 공기도 맑게 하고, 에너지자립 섬 제주도를 홍보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2005년 통계기준 한국은 석유 수입 세계 5위, 천연가스 수입 3위, 석유 소비량 7위, 에너지 소비량 10위 등 세계 최고 에너지 소비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에너지의 해외의존도가 무려 97%에 달한다. 언제까지 이런 우울한 통계를 계속 접할 것인가? 제주도는 앞으로 2011년까지 제주 전력 수요의 10% 이상을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할 목표를 갖고 있다. 앞으로 각 지역마다 지역의 에너지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목표량을 정하고 그 목표를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수한 에너지 지표 중에 무엇인가 희망적인 지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위 글은 에너지 시민연대 소식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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