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발자국과 반시장

2006.11.29 | 미분류

초등학교 환경교과서의 반시장성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일부 신문과 국회의원이 환경부가 2005년부터 준비해 발간한 초등학생용 환경교과서를 반시장적이며, 반미 성향이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은 7일, ‘황당한 초등생 환경 교과서’라는 기사에서, “환경 교과서에 기업이나 고소득층에 대해 반감을 갖게 하거나 근면. 성실 등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 의문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적잖게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5. 6학년용 교과서의 ‘생태 발자국’ 지수가 황당하고 위화감을 줄 수 있는 항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이 황당하다고 주장한 생태발자국은 음식, 옷, 집, 에너지 등을 생산하고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필요한 땅의 면적, 즉 인간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생산하고 소비하는데 필요한 토지면적을 나타낸 지수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생활하는데 많은 토지를 차지하는 셈이어서 ‘생태파괴지수’라고 할 수 있다. 생태발자국의 메시지는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자원의 용량한도 내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태발자국 지수를 처음 개발한 사람들은 캐나다의 경제학자인 마티스 웨커 네이걸과 윌리엄 리스이다. 생태발자국은 묻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산다면 지구는 몇 개가 필요할까요? 이 질문은 경제학 시간에서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유한한 자원’의 개념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 개념은 지속가능성을 측정하는 도구로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 각 나라의 도시들은 시를 소개하는 홈페이지에 인구, 면적, 산업규모와 같은 정보와 더불어 생태발자국지수를 올려두기도 한다. 그렇게 캐나다의 토론토시의 생태발자국은 5.3헥타르이고, 런던은 6.63헥타르이다. 켈 리빙스톤 런던시장은 런던의 생태발자국 지수를 발표하면서 생태발자국을 통해 런던시의 자원 사용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런던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켈 리빙스톤 런던시장은 한국에서 생태발자국을 둘러싼 반시장성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에서는 환경단체인 녹색연합과 한화환경연구소가 2003년부터 한국의 생태발자국을 측정하고 그 개념을 알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기업 산하 연구소가 생태발자국 측정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은 이 개념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경영을 표방하는데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에 이어 국회 환경노동 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17일 환경교과서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 결과 25명의 집필진 중에 두 명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반시장주의, 반기업 정서, 반미 등 이념을 가지고 있는 특정 노조원이 교과서 집필과 검토에 참여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한선교 의원실은 교과서가 부적절하다며, 환경교육에 책정된 예산안 10억 2천만 원 삭감을 주장했다. 반시장이라는 개념의 정의도 모호하지만 전교조 조합원인 교사 2명이 참여한 것으로 전체 교과서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전교조 선생님들을 모두 반시장주의, 반기업 정서, 반미 등 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게다가 환경교육 예산 삭감이라니…

다음날 한선교 의원의 기자회견은 조선일보에 대대적으로 실린다. 조선일보가 한선교 의원의 기자회견을 인용 환경교과서의 문제를 지적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나는 연어입니다. 이제 멀고 먼 여행을 시작하려 합니다…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무시무시한 물건들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댐이라고 하더군요. 나는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환경부 환경 교과서 ‘어린이 초록세상’ 8쪽)→댐을 환경을 파괴하는 해악으로 지적. ]

[‘나무늘보는 과일 하나 집는 데도 10분 이상 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에 매달려 잠을 잡니다. 나무늘보의 모습에서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태도를 배워 봅시다.’(‘어린이 초록세상 50쪽)→게으름이 환경 친화적이라고 단정.]

[미국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듯한 내용도 발견됐다. 3,4학년용 ‘어린이 초록나라’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사진과 원주민들의 사진을 나란히 싣고 그 아래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다른 원주민들의 사례를 들었다. 이 책은 또 베트남 파병 군인의 고엽제 후유증을 설명하며 “나는 속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무슨 돈이 많아 모기약까지 뿌릴까 했다”는 피해자의 증언을 실었다. ]

댐의 환경성, 나무늘보를 게으르다고 봐야할지 아니면 여유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할지, 미국의 베트남 고엽제 살포 문제, 간단히 요약하면 이 정도 주제인데, 조선일보와 한선교 의원의 주장에 대해 정말 토론을 해봤으면 한다. 재미있지 않을까?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글이 있다. 지구상의 우리 말고도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세계시민으로서 우리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글을 떠올리면서, 한 치의 여유도 또 다른 생각도 용납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경제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편협한 사고가 안타깝다.

영화에선 ‘총’을 겨누며 ‘꼼짝마!’ 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시장’을 내세워 ‘꼼짝마!’ 라고 한다. 시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공공성을 조금이라도 이야기할라 치면 과거 ‘매카시즘’을 연상할 정도로 몰아붙인다. 그런데 기업들도 ‘환경경영’과 ‘지속가능성’을 표방하고 있으니 이게 웬일인가? 현명한 기업은 안다. 자원고갈과 지구생태계의 파괴를 견뎌낼 수 있는 경제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 제발 억지 좀 부리지 마시라.

글 :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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