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트러스트 방문 이야기 한 토막

2006.11.29 | 미분류

지난 11월 19일부터 25일까지 잉글랜드의 ‘자연환경 국민신탁’(National Trust) 활동의 이모저모를 둘러보고 온 느낌이 자못 착잡하다. 우리나라의 ‘자연환경 국민신탁’ 설립위원의 자격으로 한 세기 전에 이 운동을 시작하여 엄청난 성공을 걷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있는 그대로 지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공익 법인에 기탁하는 운동이다. 바깥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고는 자기 핏줄끼리만 즐기고자 안간 힘을 써 대거나 언젠가 땅값이 올라가기만을 기다리는 속 좁은 탐욕의 벽을 허물어뜨리고, 해안선과 숲과 초지와 농지와 가옥을 지켜가고자 하여 벌인 운동이다. 그렇게 자기나 자기 집안이 소유하고 있는 자연 재산을 맡기고 또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함께 사들인 것이 국토의 2.5%에 이르게 되었다. 국민신탁의 재산이다.  

10만원 안팎의 연회비를 내는 회원만도 3백 5십만 명이다. 그들이 누리는 특권은 내셔널트러스트가 소유하고 있는 땅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자연 환경의 유적지에서 일하는 간사 직원이 4천 명이며 자원 활동가가 4만 명이다. 비전과 열성과 헌신의 도에서 이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 모두 내셔널트러스트의 뜻에 함께 하는 일꾼이다.

우리 방문단은 도착하자마자 런던에서 서쪽으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가는 스윈든으로 향했다. 내셔널트러스트의 본부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정성스럽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하루 종일 활동 상황을 소개 받았다. 사무실은 얼마 전에 그 곳으로 옮겨왔지만 원래 그 건물은 증기기관차를 만드는 주물 공장 터였다. 그 건물을 허물거나 증축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환경 친화의 설계 원칙에 따라 안만 바꿔 쾌적하게 쓰고 있다. 흥미로운 것 하나는 주차장이다. 본부 사무실에서 일하는 간사 직원만도 450명인데 주차장은 100대로 제한해 둔 것이다. 그들의 절제를 요구하는 조처였다. 되도록 대중교통 수단을 쓰거나 함께 차를 타도록 한 것이다. 말하자면 운동 조직 자체가 환경 친화의 원칙을 실천해가는 모범이 되도록 했다. ‘시민’의 ‘편리’니 ‘서비스’ 차원이니 하는 따위의 별별 낱말로 절제의 원칙을 뭉개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결연한 마음가짐이 ‘부족한’ 주차장의 설계도로 나타났던 것이다.

잉글랜드 남서부의 글러서트셔의 한 작은 마을을 비롯하여 내셔널트러스트가 관리하는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가는 길이 비좁았지만 걸핏하면 길을 넓히는 경박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고, 좌우의 초지가 아름다웠지만 개발을 기다리는 탐욕스러움이란 보이지 않았다. 흐르는 개울물이 길을 막았지만 곧바로 덮어버리려는 천한 개발꾼들의 모습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 미개발의 구릉지는 늦가을의 비로 젖어 있을 뿐이었다. 이곳저곳에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는 너도밤나무와 낙엽송은 간간히 구름을 뚫고 뻗어오는 강렬한 햇살에 그 가을색이 더욱 빛나기만 했다. 가을의 조화를 연출하려는 것인지 그 언저리에 어지럽게 모여든 떨기나무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가을은 그렇게 가을을 마감하고 있었다. 내셔널트러스트의 자연 환경 유적지에서 보는 풍경이었다.

나는 견디지 못하였다. 잉글랜드의 가을 유혹 때문이었다. 숲길로 다가갔다. 너도밤나무 밑에서 가을비에 젖어 웅크리고 있는 잎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축축한 잎을 몸으로 닦아 차곡차곡 포개었다. 멀리 녹색 일꾼들 하나하나를 그리면서. 가을 잎처럼 우리도 긴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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