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누리’로 가는 길동무 되고자 하여

2007.01.29 | 미분류

박 영 신 (공동대표)

오늘 우리는 녹색연합이 내세우고 있는 녹색의 강령 밑에 모였습니다. 녹색의 뜻에 우리가 얼마나 충실했는지 새김질하고, 그 뜻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생각을 나누고, 그 뜻에 새삼 힘을 모으자며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꿈꾸며 그리는 ‘녹색 누리’는 현실 속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녹색 사람은 그 누리를 향하여 길 떠납니다. 느끼한 탐욕을 타고난 인간의 본성이라며 강변하고 난잡한 소유욕을 경제의 동력이라며 두둔하기만 하는 이 현실 안에 진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녹색 사람은 거부해야 할 ‘현실의 도성’을 벗어나 ‘녹색 누리’로 길 떠납니다.

그 길은 평탄치 않습니다. 험준합니다. 어두운 계곡도 지나고 세찬 급류도 거슬러 갑니다. 온갖 유혹이 길목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녹색 사람은 이 모든 유혹과 시련을 이겨냅니다. ‘녹색 누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닙니다. 함께 가는 녹색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 자기를 낮추며 서로 돕습니다. 절제합니다. 경건합니다. 슬기롭습니다. 신뢰하고 책임을 집니다. 서로 보살피고 서로 사랑합니다. 녹색 사람은 서로 격려하며 위로합니다.

그렇게 현실의 높은 담벼락도 허물고 절망의 늪도 벗어나고 소비와 탐욕과 허영의 도시를 관통해 갑니다. ‘녹색 누리’로 가는 길이 험난하다며 가던 길을 돌아서는 이들도 있고, 미끼와 덫에 걸려 주저앉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녹색 사람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돌파해 나아갑니다. ‘녹색 누리’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굳세게 걸어갑니다. 그들만이 느끼는 보람을 함께 나눕니다.

‘녹색 누리’는 허술하고 설익은 정당과 정파의 구분에 예속되지 않습니다. 이념 같지 않은 이념의 대결 구도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는 그 누리는 속된 정치의 차원을 벗어나고 낡은 이념의 구도를 초월합니다. 그 누리 앞에 허물어지지 않을 구획과 담벼락과 칸막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녹색 누리’는 현존하는 구획과 이념의 굳은 체제가 다 허물어진 그 폐허의 공간에 새로 세워지게 될 그러한 곳입니다. 녹색의 꿈과 뜻은 여기에 모아집니다.

길동무들은 함께 나누는 생각과 이야기를 투미하게 마냥 되풀이 하거나 고집하지 않습니다. 녹색을 생각하는 녹색 사람이라면 모두가 남다른 깊은 신념과 유달리 날카로운 양심으로 살아야 하기에, 누구보다 신념과 양심의 표현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나누는 자유를 행사해야 하기에, 생각은 다르고 달라야 하고 이야기는 다르고 달라야 합니다. 어느 하나의 생각이 군림할 수 없으며 어느 하나의 이야기가 독점할 수 없습니다. ‘녹색 누리’를 향해 길 떠나는 녹색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과 각각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에 실로 깊은 뜻에서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참으로 높은 뜻에서 다양성의 값을 기립니다.

이 일에 우리는 서로 길잡이의 표적이 되어야 합니다. 경박하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녹색사람의 공동체를 함께 가꿔야 합니다. 지난날 우리가 다져온 아름다운 녹색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녹색의 이야기를 새롭게 엮어가야 합니다. 젠체하지 않고 겸손하게 이 일을 함께 일궈가야 합니다.

‘녹색 누리’를 위하여 우리나라의 정책을 비판하고 강대국의 일방주의에 도전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모습을 성찰합니다. 바깥을 향한 쟁투만으로 ‘녹색 누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여, 우리는 녹색의 씨앗을 뿌립니다. 작은 씨앗을 뿌립니다. 나의 텃밭에, 내 마음에 씨를 뿌려 생명이 움트게 하고 태어나게 합니다. 생명체로 자라게 하여 잿빛 세상을 푸르게 바꿔갑니다. ‘녹색 누리’로 가는 그 길은 큰 길인가 하면 또 작은 길이요, 넓은 길인가 하면 또 좁은 길입니다. 거대한 바깥 악과 싸우는 대결의 길인가 하면 또한 내 마음과 내 삶에 드리워진 거대한 악과도 싸워야 하는 쟁투의 길입니다.

녹색 사람은 술수꾼들이 날뛰는 천박한 정치판에 휘둘리거나 그들이 쓰는 술수와 전략을 흉내 내지 않으며 그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엎치락덮치락 하는 탐욕스런 시장바닥의 논리에 목을 달고 살아가지 않고, 자기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변덕스러운 이기주의자들의 집단행동에 줄을 대지 않습니다. ‘녹색 누리’로 길 떠나는 순례자의 품격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지저분한 것들보다 한결 고결합니다.

‘현실’이라는 화려한 언어와 찬란한 깃발을 내걸고 ‘녹색 누리’를 낭만주의의 찌꺼기나 일종의 공상주의로 매도하고 나올 무리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녹색 사람은 그 현실론이라는 것이 ‘현상 유지’ 논리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합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갑니다. 혼자라면 길을 가다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서로 돕고 함께 부추깁니다. 격랑도 지나고 계곡도 가로 질러, 저 푸른 초장으로 들어가고야 맙니다.

어떤 부족함도 없는 곳, 화평과 공평함이 다스리는 곳, 강자가 약자가 되고 약자가 강자가 되는 곳, 전쟁의 무기가 땅을 파는 삽이 되고 곡괭이가 되는 곳, 나이 많은 사람과 나이 어린 사람의 구별이 없고 천박한 땅 투기의 바이러스 열풍도 없는 곳, 누구에게나 거할 곳이 있고 누구에게나 치유가 보장되고 누구에게나 배울 곳이 있는 곳, 그 푸르디푸른 땅으로 가는 길, 우리 함께 길동무 되어야 합니다. 푸른 꿈 이야기 서로 나누며 푸른 노래 함께 부르는 길동무 되어야 합니다.

권리의 주장이 난무하는 이 때, 녹색을 생각하는 녹색주의자들은 책임의 주제를 치켜세웁니다. 공동체를 향해 자기중심의 권리를 소리 내어 외치기에 앞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 그것이 시민 됨의 ‘참 자기다움’이라고 외칩니다.

녹색 사람은 한 지역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도 궁극으로는 그 지역을 아우르는 ‘녹색’ 누리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하고, 녹색의 가치와 이상과 그 실현에 대한 책임 이야기를 펼칩니다. 이 책임에 우리가 함께 하고, 이 책임 때문에 우리가 길동무 됩니다.  

‘녹색 누리’는 오늘의 삶의 내용과 형식을 뛰어넘습니다. 소비문화의 유혹에 빠져 방종하고 시장 논리의 흐름에 휩싸여 부를 획책하면서 참다운 삶이 내뿜어야 할 ‘다른 가능성’에 대하여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녹색 사람은 이렇게 닫혀버려 비좁게 된 삶의 황폐화, 그것을 떨쳐버립니다.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녹색 누리’를 향해 길을 걷습니다. 그 길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가능성의 지평, 한 녹색 시인의 표현으로 ‘강 저 너머’를 그리워 그리워하여, 함께 생각을 나눕니다.

이 땅 위에서 요란스럽게 떠들어 대는 시장바닥의 잡스런 소리 그 너머 ‘푸르른 하늘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자 합니다. 탐욕을 제어하지 않는 이기성에 터한 천한 자유를 구가하면서 마침내 절제의 고삐를 잃게 된 저 광란하는 경제지상주의에 맞섭니다.

그것이 그렇게 절대의 가치이며 그렇게 절대의 신으로 신봉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보듬어야 할 건강한 삶인가, 그러한 삶을 올제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며 ‘녹색 누리’를 향해 길을 걷습니다.

이 물음과 도전의 길에, 우리가 함께 나서고자 합니다. 길동무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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