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사회: 새로운 산업혁명

2007.12.15 | 미분류

저탄소 사회: 새로운 산업혁명

남상민(UNESCAP 환경담당관)

몇해전에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구호가 있었다. 한 언론사가 내건 이  구호는 정부의 정보통신 정책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용되었다. 이 구호의 존재와 무관하겠지만, 엄청난 규모의 돈이 정보통신 사회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투자되었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이 가장 널리 보급된 국가가 되었고, 새로운 세대의 정보통신 기술과 제품을 주도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런 성과는 비정보통신 산업의 질적 발전도 이끌었고, 한국의 전반적인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정보화의 조류를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데 성공한 한국사회가 맞닿뜨려야 할 새로운 조류가 눈 앞에 밀려오고 있다. 2007년 초에 나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의 보고서는 기후변화 대응목표를 명확히 해주었다. 대기 중 온실가스의 농도가 450ppm, 550ppm, 750ppm 일때 향후 100년간의 기온은 각각 2.0°C, 3.0°C, 4.0°C 내외가 증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현재 이산화탄소(CO2 )의 대기중 농도가 380ppm이고, 다른 온실가스를 모두 합쳐 이산화탄소 기준(CO2 – eq)으로 계산하면 그 농도는 430ppm이다. 현재 이산화탄소의 농도만으로 따져도 지난 65만년의 지구역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니, 다른 온실가스를 더하면 그 정도는 훨씬 심각해진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지난 20세기0.74°C 정도의 기온상승이었고,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추세를 고려할때 추가 상승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지구 생태계와 우리의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의 추가상승을 허용할 수 있을까? 현재 국제적인 합의는 대체적으로 2.0°C이다. 이 정도의 변화로도 지구 전반의 생태적 변화와 사회경제적 부담이 막대하지만, 현실적으로 온실가스 농도를 450ppm 이하로 낮추는 것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일단 그 정도 수준은 감당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수준을 맞추는 것이 전세계의 온실가스 배출수준을 현재 수준으로 동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단 배출된 온실가스는 수십, 수백년간  대기중에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수준을 2050년까지 최소 절반이상으로 낮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국은 80% 이상을 줄여야 한다.

교토의정서 체제를 바탕으로 기후변화협약의 부속서 1국가 (선진국과 러시아 등 동구권 국가)는 지금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기준으로 2.8% 줄였다.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미국, 터키, 호주를 제외하면 부속서 1국가는 15% 감축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절대적 부분은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 국가의 경제전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온실가스가 감소한 덕분이다. 러시아의 경우는 아직도 1990년 배출량의 70% 수준에 믿돌고  있고, 다른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그나마 선진국 중 큰 성과를 거둔 국가는 영국과 독일로 각각 14.8%, 18.4%를 감축하였다.  이런 기존 성과만을 보면 2050년까지 80%를 줄인다는 계획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발리회의에서 독일은 2020년까지 자국의 온실가스를 40%까지 줄인다는 계획을 내놓았고, 독립국가라면 세계 7대 경제대국이 될 캘리포니아도 2050년까지 80%를 줄이는 계획을 이미 추진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은 기온상승 2.0°C제한, 2050년까지 전세계 온실가스 50% 감축 목표를 강력히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제안들을 토대로  2009년 말,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15차 기후변화회의는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방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감축목표의 폭이 어떻게 결정되든 저탄소 기술과 사회로의 전환은 이미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또 가야할 흐름이다.

인류 에너지원의 변화과정은 탄소의 원자비율을 줄이고, 고체-액체-기체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나무의  수소대 탄소 원자비율은 1:10이고, 석탄은 1:2, 석유 2:1, 에탄올 6:2,천연가스는 4:1이다. 탄소의 상대적 비율이 점점 줄어든 것이고, 이 종착점은 탄소원자가 전혀없는 수소와 태양 에너지가 될 것이다. 즉 에너지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이 점점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과정과 속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기후변화에 대응을 위한 국제적 목표의 수준과 지난 4년동안 가격이 세배로 상승하였고, 최근에는 99달러까지 올라가기도 한 원유가격의 변화추세이다. 현재의 원유가격에서 50달러 정도는 정치적 비용에 해당된다는 분석이지만,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제정치적 불안정이 해소되더라도 가격이 예전으로 되돌아갈 전망은 낮다. 세계원유생산이 이미 최정점에 도달하였고, 한편으로는 수요증가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최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낙관론자들도 그 시기를 앞으로 10~20년으로 잡고 있다. 즉 지금의 과도한 석유의존 경제를 이번 세기 중반으로 계속 끌고갈 수 없는 것이다.

2005년 미국 에너지성에서 낸 “세계원유생산의 최정점” 보고서는 새로운 에너지 체계에 큰 경제적 위험없이 적응하기위한 준비과정을 20년으로 잡고 있다.  이런 필요기간을 기준으로 새로운 에너지 체제로 본격적인 전환 시점을 고려할때, 낙관적인 최정점 이론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인류의 에너지원 전환과정은 기존 자원의 고갈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나무가 있음에도 석탄을 사용했고, 석탄의 매장량이 앞으로 200여년치가 있음에도 석유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해왔다. 즉 석유의 최정점, 고갈시점을 정확히 경험하거나 알고 나서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최정점과 고갈시점이 수십, 1-2백년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기다렸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모색할수는 없다. 석유는 그 이후 세대에게도 여전히 유용한 자원이고, 단순히 태워서 고갈시켜 버리기에는 훨씬 가치있는 자원이기에 현세대, 바로 다음세대만이 독점해서는 안될 자원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온난화는 새로운 에너지체제,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을 시급한 과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온실가스 저감과 새로운 에너지 기술개발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다.  하지만 그 비용부담에 대한 많은 걱정은 사실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2006년말 영국 정부에서 낸 “스턴보고서: 기후변화의 경제학”은 온실가스를 500~550ppm으로 안정화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2050년까지 연간 세계 GDP의 1% 정도라고 추정하였다. 1%라는 숫자는 작지만 전체 총액비용이 막대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규모의 투자는 매몰되는 비용이 아니다. 2002년 정부는 E-Korea 비전을 제시하고, 향후  5년간 민간 50조원, 정부 24조원 등 총 74조원을 정보화촉진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규모는 2002년을 기준으로 매년 GDP의 2% 이상의 “비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만, 정부나 언론은 이것을 비용이 아닌 새로운 산업과 고용을 만들어내는 투자로 여겼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요인이 되었다.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저탄소 사회실현도 마찬가지이다. 정보화 사회를 위한 투자처럼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위해 정부와 민간의 대규모 투자가 있어야 한다. 저탄소 사회를 위한 투자과정에서 정부는 재정 운용에 있어 다른 부문재정의 축소가 필요할 것이고, 기업은 추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과 결과는 새로운 기술, 일자리, 산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감축하는 캘리포니아 정부계획에 대한 한 경제적 영향평가는 이 목표가 에너지효율성과 새로운 에너지 부문의 기술발전에 기여하여 2020년의 캘리포니아 GDP를 2.4~3.1%를 증가시킬 것으로 예측하였다.

산업혁명 초기에 방적기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 속도는 방적기를 기계화하는 수준을 순식간에 넘어서서 전세계의 정치경제적 조건을 변화시켰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이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사회는 과도한 기우속에 본격적인 행동을 늦추며 러다이트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혁명을 향한 티핑 포인트를 인식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가장 큰 걱정거리인 한국 경제의 경쟁력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아울러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새로운 기술과 산업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저탄소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경제적 시스템, 국토공간의 재구성 등도 필요하다.  기술적 조건과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질때 저탄소 사회의 실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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