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학이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자

2008.01.25 | 미분류

지난해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 위원회(IPCC)는 4차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가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고, 인간 행위에 의해 발생한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기나긴 논쟁이 끝난 것이다. 따라서 올해부터는 당장 온실가스를 줄이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 정부가 4차 기후변화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안타깝게도 국민들은 여전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광역자치단체 16곳 가운데 9곳은 대응책 자체가 없다. 그만큼 준비가 부족하다. 이럴 때 바로 대학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2007년 미국의 152개 대학 총장들은 ‘미국 대학총장 기후변화 위원회’를 구성했다. 대학이 기후변화에 대응한다고 하면 주로 연구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미국 대학총장들은 대학 자체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거대한 ‘온실가스 배출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대학 캠퍼스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을 줄이기 위해 감축 목표를 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행동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미국 대학들 간의 ‘온실가스 감축 의정서’를 마련한 것이다. 미국 대학들은 캠퍼스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측정하고, 에너지 절약, 건물 단열 강화, 수송에너지 전환, 재생가능 에너지 설치와 같은 활동을 통해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 이 위원회에는 미국의 465개 대학 3500개 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다.

하버드대는 녹색캠퍼스 대출펀드 프로그램을 통해 2년 동안 6726톤의 이산화탄소와 17만3000배럴의 물과 90톤의 매립 폐기물을 줄였다.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88만9천달러를 절감한 셈이다. 지난해 하버드대는 보스턴시와 협약을 체결하고 건물 면적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줄이기로 선언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지바상과대학이 캠퍼스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2010년까지 10%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2006년 에너지관리공단은 국내 기관의 에너지 소비량을 기준으로 1등부터 190등까지 순위를 매겼다. 그중 23곳이 대학으로 나타났고, 대학들의 에너지 사용량은 전체 기관 총량의 13.8%(24만1859TOE)를 차지했다. 대학 중에서 에너지 소비 1위를 기록한 곳은 서울대이고, 이어 포항공대, 연세대, 카이스트, 한양대 순이다. 녹색연합이 지난해 서울시 성북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조사했을 때, 고려대가 있는 안암동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이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음에도 자체 기후변화대응 프로그램이나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 대책을 갖고 있는 곳은 거의 전무하다.

한 사회에서 대학이 갖는 권위는 특수하다. 그래서 사회가 부닥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대학은 다양한 방법으로 해법을 제시해 왔다.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대학이 앞장서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대학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과 자원을 갖추고 있다. 학생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참여한다면 그것은 미래에 대한 큰 교육이자 투자가 된다. 대학이 움직이면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크다.

지난해 13차 기후변화 당사국총회에서 마련된 ‘발리 로드맵’에 따라 2013년부터 적용될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방식에 대한 협상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학이 먼저 앞장서자.

이유진/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 팀장

한겨레신문 1월 23일 기고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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