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센 선한 사람, 박그림 선생님을 만나다

 

 

 

  아침 일찍 박그림 선생님을 만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오른 길은 설악산 어머니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마련해주신 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는 생명이 자라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날 선생님과 함께 걷던 길에서는 순간, 순간마다 살아있는 생명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야생동물들을 쉽게 보지 못했지만 선생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물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하셨다. 지금 내 눈에는 울창한 나무와 풀들밖에 보이질 않지만, 이 길에는 노루가 뛰어다닐 것이고 저 동굴 안에서는 산양이 쉬었다 갈 것이다. 산양의 똥과 멧돼지의 똥을 살펴보며 그들이 머물다 간 공간 속에 나도 잠시 머물렀다. 오소리 똥에 박혀 있는 쥐의 이빨을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고, 멧돼지가 열심히 지어 놓은 보금자리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한참을 올라가자 커다란 나무들이 우뚝우뚝하게 서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살아온 시간만 200년, 300년이 넘은 전나무들이었다. 나무들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살아왔을까 생각하며 한 동안 나무를 끌어안고 있었다. 쓰러진 거목 위에서 자라나는 신기한 식물들도 보았다. 선생님께서는 죽은 생명에서 산 생명이 태어나는 장면을 보시며,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의 보시가 되어 토대가 되어 주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하셨다.

  길을 지나던 도중 산사태가 일어나 나무들이 쓰러진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물으셨다, “이 모습이 자연일 것 같으냐?” 돌무더기가 여기저기 쌓여 있고, 부

 

 

 

러진 나무들이 있는 모습은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습이 바로 자연이다. 무너진 곳에는 바람이 실어온 씨앗들이 새로이 심겨지고, 나무와 풀들이 폐허에서 다시 자라나기 시작한다. 자연이 스스로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동안 인간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므로.

  날이 저물기 전에 산에서 내려왔다. 그날 선생님과 함께 걸은 길은 총 15km, 함께 걸은 시간은 8시간 반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개울에서는 등산화를 벗어 들고 맨발로 돌을 디뎌야 했는데 얼마나 시원하고 좋던지. 발도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정말이지 “꿀맛이야!”라고 외쳤을 정도로.


  그날 저녁, 함께 머무르게 된 선생님의 연구소에서 하루 동안 같이 길을 걸었던 얼레지 선생님, 팬더 선생님, 은방울과 함께 소박한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그리고는 박그림 선생님께서 끓여주신 물에 차를 마시며 부른 배를 안고 다함께 <나무 심은 사람>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속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들판에 나무를 심어가는 사람이 나온다. 수십 년이 지나고, 그가 심은 나무들이 자라나 생명을 불러오기 시작한다. 곤충과 동물, 그리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 뒤에는 남모르게 매일 씨앗을 심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영화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고집 센 선한 사람.” 나는 산양 똥을 으깨 코에 가져가시던 박그림 선생님을 보며 그 말을 떠올렸다. 매일같이 산에 들어가 산양과 야생동물들의 흔적을 채취하시고 산에서 비박하는 것 정도는 큰일도 아닌, 매주 대청봉에 올라 케이블카 반대 1인 시위를 하시는 선생님. 돌아오는 날 함께 시간을 보내주심에 감사 인사를 드렸더니 “내가 아니라 어머니 설악산에 감사해야지.”라고 말씀하신 분.


  “무한히 넓은 자연 속에서 따사로움과 엄정한 질서를 깨닫고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온몸으로 겸손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 사람의 존재란 얼마나 소중한가. 언젠가는, 비록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산양이 자유로이 뛰놀고 있는 설악산을 보며 누군가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 고집 센 선한 사람을.

 

-인용 부분은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씀과, <산양똥을 먹는 사람>이라는 선생님 저작에서.

 

 

글 전기화 / 녹색연합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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