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다’ -때밀이워크숍에서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내 손톱을 먹으면 나를 먹는 것인가? 너의 머리카락을 먹으면 너를 먹는 것인가? 이런 기괴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 요즘 일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맴맴 도는 생각이다. '수박씨를 먹으면 내 뱃속에서 수박이 자랄까?' '꽃가루가 콧속으로 들어가면 콧속에서 꽃이 필까?' 하는 어린이의 질문부터 계속 이어진 얼토당토한 질문들. 그러다 다음 생각이 추가가 되었다. 내 몸 속의 박테리아는 나인가? 내가 아닌가?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에는 피부경계가 있다. 피부 안의 것은 나이고 피부 밖의 것은 내가 아니라는 경계. 그런데 내 장의 박테리아는 나의 내부의 존재인데 외부의 존재인가? 박테리아 없이 살수가 없는데 그렇다면 박테리아의 나인가? 이런 돌고 도는 질문들.

 

30년 이후의 녹색 한국을 상상하는 워크숍 안을 받고 즉각적으로 떠오른 단어가 "때"였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유한한 삶을 살면서 30년 후를 상상하니 그때 살아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 30년 후의 나는 죽은 세포일 수도 있겠다. 아니 살아있더라도 많은 죽은 세포를 생산했으리라. 때, 각질, 흙, 자연으로 돌아간 무수한 나의 일부가, 또는 전체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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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총회에 회원님들과 할 워크숍에 앞서서 치어리더 역할을 할 활동가들과 사전 워크숍을 해봤다. 얼마나 때를 자주 미는가 하는 질문부터 목욕탕에 가는 추억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일주일에 한번 아버지와 목욕을 가던 추억 이야기도, 이제는 때를 안 민다는 이야기까지 때, 때밀이, 목욕, 목욕탕, 몸에 관한 대화가 꼬리 꼬리를 물다가 꼬리만 보였다. 이태리 타올이라고도 부르는 때밀이 수건을 주재료로 만들기를 해봤다. 내가 워크숍을 할 때 늘 그러는 것처럼, 뭐를 만들지 생각을 하지 말고 일단 마음이 끌리는 재료를 잡고 만지작 만지작 만들기를 하자고 했다.

 

도대체 이걸로 뭐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상황에서 뭔가가 만들어지기는 했다. 핵 방사능으로 돌연변이가 된 사람의 모습, 대기오염으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망을 얼굴에 쓰고 있는 사람, 탐욕과 삽질로 너무 무거워진 사람, 망가진 지구를 뒤로하고 배처럼 띄어진 섬. 점점 우울해져갔다. 30년 후의 한국에 대한 상상은 이렇게 우울하였다.

 

녹색의 한국, 더 나아가 지구를 상상하는 일이, 현실을 직시하는 이들에게는 힘든 일이구나!

환경문제로 싸운다는 것은 지는 싸움을 한다는 무거움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자고 했다. 상상을 할 수 있어야 현실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부끄러웠다. 실제로 싸우는 이들에게, 문제를 보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너무 공허하겠다 싶었다.

 

총회 날이 되었고, 10명이 넘는 어른과 어린이들이 모였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때밀이 수건이 가지고 있는 상징 언어에 대하여 생각을 돕는 이미지 발표를 하고, 때를 민다는 행위가 가지는 상징성, 녹색연합 로고하고도 같은 색의 녹색이 가지고 있는 색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그냥 무엇인가를 만들어보았다. 역시 도대체 이걸로 뭐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상황에서 역시 뭔가가 만들어지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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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때를 미는 때밀이 인형도 있었고, 곱게 때밀이 천 드레스를 입은 막대기 인형도 태어났고, 목욕탕 갈 때 비누 등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달린 때밀이 수건도 만들어졌고, 때밀이 수건을 잘라서 막대기에 붙인 녹색건물양식도 나타났고, 별별 실없고 쓸데없는 것들이 만들어졌다.

 

발표할 때는 다음과 같은 거창한 말을 풀어냈었다.

 

-이것은 녹색으로 만들어진 상징입니다. 녹색 "green"은 "to grow" 즉 "자라게 하기"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녹색은 생명의 색입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남을 상징하는 색으로 역사를 통해 사용되어 왔습니다. 때밀이 수건의 색과, 그리고 녹색연합의 색이 이 같은 녹색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죽은 것을 떨어뜨려서 다시 새롭게 하는 때수건, 이 때수건을 들고 오신 녹색연합 회원님들은 이것으로 무엇을 새롭게, 살아나게, 키우게 하실 것인가요? 이 새롭게 하는 물건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자연이 만나 생기는 때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0년후, 내 몸이 이 지구 땅, 더 좁게는 한국 땅 위에 있을 수도 아래에 있을 수도 공기 중에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인간과 자연의 만남이 이 녹색이 상징하는 것처럼 순환구조를 이룰 수 있도록, 어떤 때수건을 들고 어떤 때를 밀기를 바라십니까?

 

때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내 몸의 일부인 세포가 죽어서 자연으로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순환의 상징이다. 하지만 과도하게 더럽히고 과도하게 밀면서 자연스러운 삶과 죽음의 순환이 억지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 때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다. 우리의 일부이면서 지구의 일부이다. 그런 역할을 하는 때수건을 한번 들여다 본 것으로, 이번 워크숍은…웃겼다.

 

글 정은혜 회원님

정은혜 님은 제주에서 선흘힐링스튜디오 미술치료실을 열어 미술치료사로 활발하게 활동중이신 녹색연합의 오랜 회원이다. 최근 ' 미술 치료사 정은혜의 공감 노트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 라는 책을 출간하여 자연이 주는 마음치료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정리 김수지 회원더하기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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