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야생동물 탐사단 6기 이야기)

 

야생동물 탐사단 6기는 2015년 7월말 울진에서 야생동물의 ‘흔적’과 함께 사는 법을 찾으며 8박 9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야생동물 탐사단의 ‘고민’과 ‘흔적’을 그 곳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야생동물 탐사단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아래부터의 글은 야생동물 탐사단 참가자들이 직접 남긴 소중한 기록들입니다.

 

그 곳에는 ‘산양’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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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탐사단 6기의 첫 번째 일정으로 22일, 23일 이틀 동안 산양 배설물 흔적조사를 통한 서식범위 조사와 야생동물 모니터링용 무인센서 카메라 관리를 했다. 국내에서 멸종 위기 종 1급,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는 법적보호종의 흔적조사를 한다는 것에 특별함을 느꼈다.

1일차에는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산양은 산악지대의 가파른 절벽과 경사지를 자유롭게 오가며 서식하기 때문에 산양의 흔적을 조사하기 위해 산양이 지나간 곳을 따라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양처럼 네발로 걷고 있었다. 등산로 밖에 다녀보지 못한 우리가 산양처럼 등산로가 아닌 경사면을 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흔적조사를 할수록 산양은 정말 경사가 가파르고 암벽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서식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파른 사면을 오르다가 사진 속에서만 보던 산양 똥자리를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산양 분변은 검은색의 타원형으로 산양은 정해놓은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대형 똥자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서로의 역할을 나눠서 야장을 적어나갔는데 시간과 좌표를 적고 줄자를 이용하여 똥자리 크기와 개수를 쟀다. 산양 흔적을 조사하면서 멧돼지의 똥과 고라니가 쉬고 간 흔적도 볼 수 있었다.

무인카메라 모니터링을 통해 바로 그 자리에서 SD카드를 수거하여 야생동물이 찍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산양들이 많이 지나가는 자리에 설치한 카메라였기 때문에 주로 산양이 많이 찍혔고,  산양 외에 멧돼지, 너구리 등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확인함으로써 생물다양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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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카메라 3대를 수거하고 산양 흔적 조사를 하며 내려왔다.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산양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가파른 사면을 타본 것이 처음이여서 지쳤던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신기했다.  3년 동안 산양 조사를 한 활동가도 두 번 본 산양을 우리는 활동 첫 째날에 본 것이었기에 더 특별했었다.

우리나라에서 산양은 1950년대까지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등 고지대의 산악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었으나 무불별한 포획, 서식지 파괴 등으로 현재는 일부 지역에 국한하여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산양은 다리가 짧아 폭설에 취약한데 겨울에는 물을 찾기 위해서 임도 옆 계곡부 쪽으로 이동하다가 계곡부나 임도에서 탈진하거나 폐사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겨울철에 산양보호를 집중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포획을 하지 않고 관심을 갖는 것만 알고 있었다. 배설물 흔적조사로 산양의 서식지를 파악하고 무인센서카메라 모니터링을 통해 살아 있는 야생동물의 사진과 동영상 자료로 객관적인 데이터를 만드는 작업을 해보니 산양을 위한 보호구역 지정 등 으로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날에는 두 개의 팀으로 나누어 산양 조사를 진행했다.  한 팀은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나머지 팀은 북면 두천리로 가게 되었다.

① 두천리

우리가 탐사할 장소는 울진구 북면에 위치한 두천리였다. 산림보호를 위해 통행제한이 된 길을 들어가려면 공문을 넣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전에는 몰랐던 일이었다. 지도와 GPS를 보며 앞장서가는 인솔자를 뒤따라 길게 자란 나뭇가지들을 걷어내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 오늘도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을 했다. 사람이 거의 밟지 않은 길은 야생동물만이 다녔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 곳을 다니는 것은 특별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를때마다 산양과 사람의 타고난 조건이 다름을 새삼 느끼는데 두 발로 걷기도 어려워 양손으로 나뭇 가지나 바위 끝을 움켜잡아야 산을 오를 수 있는 나와는 달리, 산양은 이 길을 별 어려움 없이 매일같이 지나다닌다.

초입부는 계곡을 따라 시작되었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길이다.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서 두 발은 푹푹 빠진다. (낙엽 아래 뱀이 숨어 있을 것만 같다.) 낙엽 밑 발에 닿은 땅은 물기가 있어 미끄럽다. 물가여서 코로 들어오는 공기는 눅눅하고, 벌레들이 윙윙 거리며 내 얼굴과 귓가를 맴돈다. 산을 오르다가 조금 쉬어가려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 이내 윙윙, 우위잉~ 우위잉~ 저마다의 날개 소리를 내며 우리 주변으로 몰려드는 날파리, 모기, 벌 등을 쫓느라 손이 바빴다. 우리는 성가심을 못 이기고 더 쉬고 싶은 마음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기를 수차례 거듭했다. (이 벌레들은 등산 내내 우리와 함께 동행했다.)

몇 미터쯤, 계곡 바위위에 원통모양의 나뭇가지 비슷한 것이 뭉쳐있었다. 동물의 변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낯설었는데, 간사님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수달의 똥이라고 했다. 뾰족한 것은 물고기가시, 딱딱한 것은 갑각류껍질이라고 했다.

산양은 한 자리에 배설하는 습성이 있다. 탁 트이고 가파른 절벽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 산양은 사람과 닮았다. 산양은 산을 오를 때 어떤 느낌일까. 산양이 다니는 길을 따라 걸으며 사람과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산 아래 평지를 밟게 될 순간을 향해 걷고 또 걷기를 반복했다. 예전에는 산양을 보려면 산에서 며칠을 먹고 자며 잠복해 있어야 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무인센서카메라로 산양을 쉽게 볼 수 있는 지금은 많이 편해진 편이었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 미끄러지거나 썩은 나뭇가지를 잡고 넘어질 수 있어서 내려가는 길은 오르막길보다 위험했다. 우리는 쉴 때를 제외하고는 말을 아꼈다. 우리는 힘들때도 외쳐야 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낙석’이다. 돌을 밟다가 아래로 떨어지면 크기에 관계없이 낙석이라고 외쳐야 하는데 처음에 천천히 구르던 돌도 경사를 구르는 동안 속도가 붙기 때문에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일행이 돌에 맞아 다칠수 있다. 낙석은 매우 조심해야 했다.

북한산 현장 교육 때에도 산양탐사 첫 날에도 힘은 들었지만 큰 어려움이 없었던 나에게 위기가 한 번 있었다. 수거할 무인카메라를 몇 미터 앞에 두고 산을 오를 때였다. 양손을 써가며 거의 기다시피 오르는데 갑자기 손을 짚을 곳이 없었다. 발을 옮겨볼까해서 옮겼는데 하필 발도 같은상태였다. 디딜 곳이 없었다.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서있자니 점점 몸에 힘이 풀려 저 아래로 미끌어질 것만 같았다. 앞서 가던 인솔자를 다급히 불러서 도움을 요청했다. ‘힘을 바짝 한 번 주고 튕기듯이 차고 올라오라. 힘을 내라’라는 말과 ‘못하겠다. 도와달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었다. 이대로 미끌어지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 뒤에 오는 동료는 어쩌지라는 생각에 진땀 나는 순간 나는 인솔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올라올 수 있었다. 그 때 내 정신이 나갔는지 몇 미터 더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나는 한 동안 말없이 먼 산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발을 너무 넓게 디뎠던 것도 같았다. 카메라에 거의 다 와간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풀린 탓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산은 마냥 너그럽게 품어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되새기고 앞으로 더 남아있는 여정을 어떻게 오를지 걱정이 했었다.

우리가 아침에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모여서 외치는 구호가 있는데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다. 나는 행동식으로 당을 보충하며 구호를 계속해서 곱씹었다.

인솔자가 멈춰서면 잠깐 쉰다는 얘기거나 산양 똥자리가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숨이 가쁘면서도 똥자리를 발견하면 우리는 각자 필요한 도구를 꺼낸다. GPS(위성위치추적장치), 조사야장과 볼펜, 똥자리 크기를 재는 줄자. 숨은 차지만 산양의 흔적을 만나는 일은 반가웠다. 겸사겸사 숨도 고르고 쉬어 갈 수 있다. 산양의 똥자리를 발견하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간사님이 얘기해주신 것처럼 앞이 시원하게 트여있었고 주변에는 바위 절벽이 난무했다.

2010년 봄, 폭설로 산양 25 마리가 폐사했다고 한다. 이제 7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멸종 위기 상태다. 산양 서식지를 통과하는 금강소나무 숲길도 산양보호를 위해 탐방 예약제로 운영된다. 겨울철 먹이주기와 구조,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산양 구조와 연구를 하기에는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산양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여건이 하루 빨리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다녀온 산은 내가 알던 ‘등산로’와 너무나 달랐다. 사람이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길의 차이… 처음에는 길 아닌 곳으로 가는 게 힘들고 생소했다. 하지만 야탐단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돌이켜보니, 사람이 많이 다녀서 답압으로 인해 딱딱해지고 나무들의 뿌리가 드러난 등산로가 과연 괜찮은 길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등산로는 길이고 등산로가 아닌 길은 길이 아니라는 생각 자체가 사람 중심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등산로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자연그대로의 길이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음을 새삼 깨닫는다. 속초에서 이곳 울진에 있는 야생동물 탐사단 숙소까지 먼 길을 와주신 박그림 선생님 말씀처럼 산은 과도하게 많은 손님맞이에 지쳐있는 것 같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연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갈증으로 산을 자주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산 제한은 필요하다. 사람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듯 산과 사람사이에도 서로의 공간을 지켜주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이번 탐사단을 시작하기 전, 울진에서 산양 흔적을 볼 수는 있어도 실제로 산양을 볼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첫 탐사날, 산양이 우리 앞에 나타나주었다. 사실 이번 탐사단 참여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산양은 여러 멸종위기 동물 중 한 종이었을 것이다. 울진을 떠나 서울에 가더라도 산양은 내 의식 속에 함께 있을 것이다.

② 소광리

우리 팀은 오늘 소광리에서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죽변면 화성리에서 금강송면 소광리까지 갈 때 달리는 차에서 보는 풍경은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주변은 알 수 없는 여러그루의 나무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고 차바퀴 밑에는 맑은 시냇물이 흘러서 물고기들이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신비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는데 물고기들의 입장을 생각했을 때는 매우 무서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조사 해야할 곳을 가고 있는 길에 옆에 크게 지어져 있는 산림청 건물이 어울린듯 하면서도 모순적이었다. 건물을 지을 때 많은 나무들을 베며 터를 닦는데 숲을 지켜야하는 산림청에서 사람이 잘 안다니는 공간에 편의를 위해서 크게 짓다니… 아이러니하였다. 산림청 건물을 지나 쭉 들어와 앞이 자물쇠와 쇠줄로 단단히 잠긴 광산 임도 앞에서 차를 세우고 한발씩 걸어나갔다. 우리가 들어간 버려진 광산은 돌들이 언덕과 같이 쌓여있거나 주변에 널브러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쓸쓸함과 공허함으로 남았다. 광산을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요정이 나타날것같은 울창하고 깨끗한 숲이 나오는데 그곳에도 금강소나무들이 있었다. 그곳은 나무들을 보존하기 위해서 종자를 얻어와 그 곳에서 키우고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데 완전한 정착을 하기전에 세번정도 이주를 한다고 들었다.

나무들이 울창한 그 곳에서 구경을 천천히 하면서 쉬고, 천천히 올라가는 오르막길을 따라 쭉 올라가 중간에 우리가 늘가던 험한길로 빠져 올라갔다. 첫날에 비해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 않았고 무인카메라가 있는 몇m 전까지는 힘차게 걸어올라갔다. 하지만 어느 지점부터 경사가 급해지고 동료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걱정과 함께 끝까지 올랐다. 다 올랐을 땐 힘든 것도 순간 사라지고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앞에는 급경사가 져있어 앞이 트였고 우리가 올라온 곳들은 나무들이 빼곡히 자라서 녹색으로 뒤덮여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광산으로 시작해서 올라온 길도 보였다. 근처에 설치된 무인카메라 두 개를 수거하고 다 같이 밥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고 아픈 동료를 눕혀서 상태를 계속 보았다. 그리고 밥을 먹을때 한 헤프닝이 일어났는데, 다른 곳으로 조사를 갔던 팀의 도시락 일부를 우리가 더 챙겼던 것이다. 그 일로 인해서 그 곳에 있는 우리와 다른 팀은 당황스러움을 느꼈지만 후에는 하나의 웃프면서도 황당했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꽤 오래 쉬었는데도 불구하고 동료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서 인솔자는 원래 왔던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 경사면을 타고 가는 것으로 결정하여 최대한 안전하고 빠른 길로 내려왔다. 거의 끝지점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내려왔지만 첫 날보다 훨씬 좋게 내려올 수 있었다. 발밑에는 푹신한 나뭇잎들이 덮여져있었고 잡을 수 있는 풀과 나무들이 많이 자라있었다. 하지만 나무가지가 꺾어지고 풀뿌리를 뜯을 듯이 잡고 나뭇잎들을 밟으며 내려올 때는 과연 산양조사를 위해 우리가 산을 타는 것이 산양에게 좋은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한 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모두가 무사히 내려온 후에 격한 기쁨과 성취감이 들었다. 비록 그 날은 산양의 똥자리도 별로 없었고 동료가 몸이 안좋아져서 급하게 내려왔지만 동료도 잘버티면서 내려왔고 모두 무사한 상태로 잘 다녀왔다는 것에 기뻤다. 그 날 이후에는 산양흔적을 찾으러 갈 수 없었지만 다음에 올 수 있다면 그 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곳은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금강소나무 숲길 탐방 체험은 토, 일 이틀에 걸쳐 진행했다. 우리는 탐방객들 맨 뒤에서 낙오자가 없게 관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첫날에는 3구간을 오전 반, 오후 반으로 나눠했다. 나는 오후반을 맡았다.

3구간의 시작 지점은 소광 2리 금강송 펜션 앞이었다. 출발 시간이 되자 대형 관광버스들과 자가용,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로 펜션 앞이 그득그득 차 있었다. 울진은 오지 중의 오지라 들었었고, 울진에 온 이후로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좀 당황스러운 풍경이었다. 숲길을 찾아 울진까지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었다.

해설사님을 따라 다 같이 준비운동을 한 후 다들 출발하자 펜션 앞이 텅 비었다. 주막에서 3구간 점심 도시락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밥차를 타고 출발해 먼저 간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밥을 먹고서 3구간 전반부 팀과 교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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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은 자리에서 조금 걷자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해설사님이 군락지 초입부터 설명을 굉장히 자세히 해주셨는데 아쉽게도 다 적지는 못했다.

땅에서 큰 가지까지의 높이를 지하고라 하는데, 금강소나무의 경우 줄기가 가늘다 보니 가지에 눈이 쌓이면 몸통까지 부러질 수 있기 때문에 자기 가지를 고사시켜 지하고가 높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가지가 굵게 발달한 나무를 찾기 힘들었다. 금강소나무 군락지에 들어와서 본 금강송들은 대부분 줄기가 가늘어 자란 지 얼마 안 된 나무들인 줄 알았는데 그래 봬도 꽤 오래된 나무들이었다. 금강송은 어느 정도 길이 생장을 한 다음에 부피 생장을 더디게 시작하기 때문에 100년은 되어야 목재로 쓰기 적합한 굵기가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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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걷자 오백 년이 넘은 소나무를 볼 수 있었다. 530여 년 된 나무라고 하는데, 다른 금강송과는 달리 약간 구불구불해서 목재로 쓰기 부적합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사진에 다 담기 위해선 멀찍이 떨어져야 할 만큼 큰 나무였는데, 못생겼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좀 슬프게 들렸다.

오백 년 소나무 근처에 금강송과 일반 소나무를 비교할 수 있는 작은 체험관이 있었다. 줄기를 자른 단면을 보니 금강소나무가 일반 소나무보다 확연히 촘촘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곧게 자란다는 점, 송진이 많이 함유되어 잘 썩지 않는다는 점, 더디게 자라 단면이 촘촘하다는 점으로 인해 금강송은 조선시대에도 허락 없이는 벨 수 없던 귀한 목재 자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특성으로 일제시대 때 수많은 금강송이 벌목되어 지금은 보호를 위해 숲 가꾸기를 하고 있다. 줄기에 흰 띠를 두른 나무는 후계림을 조성하기 위한 종자 소나무이고 노란 띠를 두른 나무는 보존을 위해 베지 않는 나무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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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 소나무를 지나 좀 더 걷다가 멈추고 방향을 바꿔 처음 지점을 향해 걸었다. 오전 반이 왔던 길을 그대로 갔는데 생각보다 오르막길이 많았다. 가는 길에 이름 모를 꽃과 나무가 많아 보는 재미에 그리 힘들진 않았지만 아침부터 죽 걸어온 탐방객들은 체력이 고갈되어 점점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마지막 즈음엔 얼마나 남았냐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결국 예상보다 꽤 늦어진 네 시 반이 되어서야 소광 2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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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에는 2-1구간으로 갔다. 이날은 전날처럼 구간을 반으로 나누지 않고 한 구간 전체를 걸었다. 3구간과 마찬가지로 금강송 펜션 앞에서 시작했는데, 탐방객들이 열 명밖에 안돼서 해설사님과 가까운 거리에서 걸을 수 있었다.

3구간은 홈페이지 설명에 난이도가 중상으로 되어있어서인지 전날에는 등산복 차림의 탐방객이 대부분이었는데 2-1구간 탐방객들은 치마에 플랫슈즈, 샌들에 가방도 없이 와 도시락 봉지를 손에 달랑달랑 들고 다니셨다. 아무리 평이한 길이어도 괜찮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스무 걸음 정도 갔을 때 할머니와 손자가 되돌아갔고 십 분쯤 더 뒤에는 노부부도 되돌아갔다. 탐방객은 순식간에 여섯 명이 되었고 이 때문에 해설사님이 굉장히 아쉬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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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구간 해설사님은 식물 설명을 굉장히 자세하게 해주셨다. 잎이 반짝반짝한 덩굴 식물은 개다래인데, 잎이 다 나고서 그 밑에 꽃이 펴 꽃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잎에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난다고 한다. 산수국은 가운데가 진짜 꽃인데 작은 꽃으로는 곤충을 유혹하기 힘들기 때문에 예쁜 장식 꽃을 둘러 수정을 용이하게 한다고 한다. 애기똥풀은 줄기를 뜯으면 노란 진액이 나오는데, 그 색이 꼭 아기의 똥 색깔이라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많은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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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를 만난 자리

점심을 먹고서 걸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위에서 펄쩍펄쩍 뛰어내려오는 고라니를 보았다.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이 야생동물들의 보금자리라는 생각을 하니 그때부터는 풀 하나 나무 하나가 다 소중해 보였고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이틀 동안 목격하거나 다른 참가자들에게 들은 문제점들이 참 많았다. 산딸기를 휩쓸어가는 분께 조금만 따라고 말씀드리자 먼저 잡는 게 임자 아니냐며 퉁명스러운 시선을 던지셨고, 출입통제구역 팻말을 똑똑히 보고도 거리낌 없이 들어가시는 분들도 계셨다. 술을 가져온다거나 자원봉사자에게 담배 좀 피고 갈 테니 먼저 가라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다. 담배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어서, 혹시 안내사항에 없었나 싶어 나중에 홈페이지를 확인해봤는데 예약 페이지에는 어떠한 안내사항도 없었다.

홈페이지에는 숲길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평탄한 길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번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등산화나 운동화가 필수인데 막상 탐방객들을 보면 플랫슈즈나 샌들도 굉장히 많이 신고 오셨었다. 나들이쯤으로 생각하고 오신 분들도 많아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다가 되돌아가거나 아이만 나중에 안전지원 차량을 태워 보낸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시작한 지 몇 년 된 사업인데 안내사항 정도는 확립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탐방객들이 어떻게 느꼈을까 궁금해 후기를 확인해봤는데, 이상한 광고만 잔뜩 올라와 있었다. 전혀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해설사분들도 다시 한 번 협의할 사항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분은 산딸기를 절대 못 따게 하시고 또 어떤 분은 먹어보라고 권하셔서 좀 헷갈렸다. 첫날 3구간 오전 반에게 듣기로는 해설사님이 설명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쉬는 시간을 안 주셔서 힘들었다고 한다. 안내 책자에는 3구간은 중간중간 쉬는 것이 필요하다고 쓰여있는데, 맞지 않는 것 같다. 2-1구간의 경우 탐방객이 여섯 명밖에 되지 않아 관리가 어렵지 않음에도 후반부터는 해설사님이 뒤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서 갈림길에서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중간중간에 해주신 설명도 탐방객들이 다 모이기도 전에 시작하셔서 듣지 못한 게 더 많은 것 같아 아쉬웠다.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숲길을 걸어본 건 좋은 경험이었다. 하루 탐방 인원을 제한하고 일 년 중에 출입 통제 기간을 꽤 가져서 그런가, 거의 매일 운영이 되는 곳인데도 숲을 느끼고 올 수 있었다. 이제는 곧게 뻗은 금강소나무의 모습이 머릿속에 분명하게 담겨 있다.

 

※ 또 다른 숲길 이야기

금강소나무숲길 체험을 하면서, 말로 듣기만 했었던 생태관광이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생태관광은 들어보기만 했었지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진정한 의미를 가진 생태관광 또한 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어떻게 탐방객들을 도와드려야 할지에 대해서 기준이 별로 잡히지 않았을 때, 뒤처지는 분이 있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즐기러 오신 분들을 재촉한 것이 참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에서는 저를 비롯하여 탐방객들을 도와주러 오신 분들이 챙겨야 할 것들을 조금 숙지하고 진행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가족단위로 산을 찾아오고 싶으신 분들은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을 찾아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3구간을 걸을 때, 가족단위로 오신 분들을 보면서 저도 가족들과 함께 숲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아쉬웠던 것들도 많고 재밌었던 것들도 많았던 체험이었습니다. 처음이라 사실 정신없이 걸었던 기억이 가장 큽니다. 다음에 다시 금강소나무숲길을 찾을 때는, 직접 예약하고 오는 손님으로 와보고 싶고, 그 때는 또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합니다.

아직까지 익숙하지만은 않은 생태관광이 금강소나무숲길을 비롯해서 많이 발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금강소나무숲길 생태관광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예약탐방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비교해서 굉장히 피폐화된 설악산은 아직도 예약탐방제를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이루어지는 생태관광들도 개선해야 할 점이 있지만, 설악산을 비롯해 우리 나라의 과포화된 방문객들로 인한 자연훼손의 대안이 생태관광과 더불어 고려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곳은 ‘풍경’이 남아 있다

     

금강소나무숲길 탐방을 마치고 숙소로 와서 왕피천 트레킹을 준비를 했다. 왕피천 트레킹은 영양군 수비면이나 울진의 굴구지마을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은데 우리는 수비면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등산배낭에 빈 생수통을 넣어서 부력으로 물에 뜰 수 있도록 튜브처럼 만들어 놓았고 집에서 챙겨온 아쿠아슈즈도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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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왕피천 트레킹을 하기 위해 영양군 수비면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갔다. 수비면에 도착해서 미리 빌려온 구명조끼를 입고 배낭을 매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우리는 산을 타고 오르는 탐방로가 아닌 왕피천계곡을 따라 걷기로 하였다.

이전까지는 야생동물의 집인 산을 갔는데 계곡이라는 또 다른 집으로 들어가게 되니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산에서는 산양처럼 걸으면서 산양이 된 느낌이 들었고 왕피천에서는 높은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동물들만 사는 세상에 몰래 들어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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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에는 산양, 사향노루, 담비, 수달, 하늘다람쥐, 삵 등 법적 보호종이 서식하고 있는 지역이라서 트레킹을 하면서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바위가 많은 길을 걸을 때는 벼과 식물이 발목에 걸려서 힘들었고 계곡에 들어가서 걸을 때는 생각보다 이끼가 많아 미끄러워서 위험했다. 발이 닿지 않는 곳도 몇 군데 있어서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구명조끼와 둥둥 뜨는 배낭이 있어서 나중에는 헤엄도 쳐보고 물속에 떠서 주변을 보기도 하였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인솔자의 신발 밑창이 떨어져서 비상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른 신발도 없고 밑창을 고정시킬 끈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걸으시다가 나중에는 신발위에 양말을 신고 걸으셨다. 결국 바위보다는 계곡을 헤엄쳐서 우리를 뒤따라 오셨고 나중에 햇네마을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던 분이 신발을 빌려다 주셔서 끝까지 걸으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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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 트레킹 계획을 들었을 때 처음들은 계곡이름이지만 기억에 잘 남았었는데 이유는 그 이름 때문이었다. “왕피천(王避川)”이란 이름은 왕(王)이 피신한 곳이라 하여 “왕피”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 내려오는데 어느 왕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시간 상 코스를 다 돌지는 못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부지런히 움직여서 바닷물로 이어지는 곳 까지 가보고 싶다. 워터파크처럼 미끄럼틀은 없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맑은 물속을 헤엄치는 것은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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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네마을에 도착해서 마을 정자에서 점심으로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햇네마을이라는 이름이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마을이 음지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음지마을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햇네마을이라 불린다고 한다. 왕피천 계곡 트레킹 때 바위가 많은 부근까지밖에 못가고 넓은 곳을 못가서 아쉬웠고, 이번에 아쿠아슈즈를 신고 트레킹했는데 바위가 많은 곳도 있어서 아쿠아슈즈 보다는 트레킹화를 신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첫째도 안전,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인 야생동물 탐사단이 무사히 트레킹을 마쳐서 다행이다.

 

그들은 ‘쓸쓸히’ 남아 있다

녹색연합 야탐단 6기 마지막일정으로 로드킬 조사가 진행되었다. 울진부터 시작하여 삼척과 봉화의 경계인 석개재까지 둘러보고 왔는데 짧다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두 시간동안 여러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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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사를 시작하여 떠나면서 처음 만난 것은 목이 꺾인 고라니의 시신이었다. 차에 치였던 것인지 목이 반대로 꺾여 있었고 눈은 뜬 체로 길 옆에 버려져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고라니의 몸을 살펴보았는데 다 여물지 못한 젖꼭지와 성체라고 하기엔 아직은 작아 보이는 몸을 보니 마음이 먹먹함과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고라니가 이렇게도 일찍 세상에서 사라지다니… 고라니의 눈을 보았다. 고라니의 눈은 풍경조차도 비추지 못했고 아무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경직되었던 고라니의 눈을 감겨주지도 못하고 차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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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난 시신은 고양이가 반대편 도로에서 차에 치여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고라니보다 훨씬 심하게 손상되었고 옆으로 치워준 이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았던 나는 사람들이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을 어떻게 둬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과 로드킬을 한 시체를 더 훼손되지 않게 도로 옆에 있는 빈 길에 놔두어야 된다는 것을 많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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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진마저 다 찍고 차를 타고 석개재를 가는 도중에 몇 번이나 동물들이 차에 치일 뻔 했다. 그럴때마다 그들을 칠까봐 심장이 쿵쾅거렸고 무서웠다. 사람이 잘 안다니는 도로에 와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어떤 생각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생각들이란 우리가 그들이 살던 영역을 침범했으며 그 공간에서 순수하게 살기위해서 길을 지나가는 순간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속에서 로드킬을 당했던 고라니와 고양이를 보면서 한 교수님의 말씀- 동물들은 우리와 다르게 현재만 생각하며 산다.-이 떠올랐다. 그들은 정말로 죽음을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것도 우리로 인해서 당하는 죽음도? 다른 이에게는 이기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 보였던 그들은 누구에 대한 원망을 하지도 않고 탓하지도 않는 얼굴로 있었다. (현재에 충실하게 산 모습으로.)

하지만 그렇다해서 그들을 지금과 같은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서 살게할 수는 없었다. 지나갈때마다 보이는 야생동물주의 표지판은 정말이지 성의가 없어서 있으나마나했다. 속도를 천천히 내라는 말만있지 정확한 속도제한이 없있다. 사람들의 천천히 달리는 기준은 각자마다 다른데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적혀있으니 사람들이 무심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속도제한이 없으니 감시할 무언가도 없다. 운전을 안해봐서 교통에 대한 것은 모르겠지만 경사지점이 아닌 일반 도로에서는 야생동물이 다니는 길에 속도제한과 카메라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그만큼의 생태통로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들이 쓸쓸하게 남은 자리를 찍는 일밖에는 못했지만 이번일로 관심을 더 기울여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싶다.

 

글: 야생동물 탐사단 6기(김진영, 김수빈, 김효정, 송윤지, 이효정)
사진: 녹색연합/야생동물 탐사단 6기

 

※ 야생동물 탐사단 활동 영상 및 후기


 

야.탐.단. 하길 참 잘 했다!
– 6기 김진영 

첫 탐사를 마치고 숙소로 향하던 우리는 계곡 근처에서 산양 한 마리와 마주쳤다. 여름이라 털이 없고 날씬해 보이는 산양은 건강해 보이고 귀여웠다. 꼬리를 탈탈 털고 귀를 흔드는 모양새가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숨 죽인 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본 듯 못 본 듯 산양은 그렇게 한참을 머무르다 유유히 사라졌다.

이번 야생동물탐사단(이하 야탐단) 6기로 참여하며 나는 값진 경험을 했다. 기대하지 않던 산양을 실제로 만나는 행운은 물론이고, 녹색연합에 몸담고 있는 분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생활하는 특별한 기회도 얻었다. 나는 환경단체 사람들은 가까이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편견을 이번 기회에 지우게 되었다.

그리고 야탐단 6기! 야생동물을 탐사하겠다고 용기 있게 나선 네 명의 멋진 동생들도 만났다!

난생 처음 간 울진에서 8박 9일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 줄은 몰랐다. 밥하고 산에 오르고 돌아와 씻고 저녁 먹고 정리하고 이야기하다 잠이 들고 보니 절반의 날들이 훌쩍 지나 있었고, 떠나는 날이 이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마지막으로 했던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이번 탐사를 위해 여럿이 생활하는 동안에도 불편한 점들은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못 지낼 만큼 힘든 적은 없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가 피차 마찬가지임을 알고 배려를 잘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노크 잘하기, 안 쓰는 전등 끄기, 짜증내지 않기(마인드 컨트롤) 등 첫날밤 우리가 정했던 규칙이 새삼 떠오른다.

이제 서로에 대해 좀 알아간다 싶을 때 서울로 돌아와 저마다의 보금자리로 흩어졌지만, 그 간의 추억과 공통의 관심사는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줄 것이다.

나는 1년 동안 산에 한 번 갈까 말까 한다. 앞으로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 산에 가게 된다면 등산로 아닌 비등산로를 곁눈질하며 그리로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 같다. 조심만 한다면 자연상태의 땅이 걷기 폭신폭신하고 좋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등산객으로 몸살을 앓는 산의 입장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사람들은 왜 그렇게들 산을 오르는지 궁금해진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탁 트인 경관을 바라보는 기쁨 때문일 수도 있겠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 편히 걷고 싶은 것도 그 이유일 수 있겠다.

도시의 거리가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뀐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산을 덜 찾게 될까?……

집으로 돌아온 나는 7월 후반을 울진에서 머물렀던 게 행운이었다고 여긴다. 서울에 도착하니 너무나 덥다. 울진은 이것 보다 훨씬 지낼 만 했었는데, 하며 문득 산 속 나무그늘과 바람이 그립다 (윙윙거리며 성가시게 내내 따라 다니던 각종 벌레들은 제외다……) 이틀 동안 체험을 나갔던 금강소나무숲길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아쉬운 점들이 몇 가지 있었던 것도 떠오른다. 좋은 취지와 그 간의 노력이 아깝지 않도록 미흡한 점이 개선되어서 멋진 숲길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울진에서 돌아오자, 산양 4마리를 오대산에 자연 방사했다는 신문기사가 달리 보인다.

이번 탐사의 주인공은 산양이었지만 무인카메라에 모습을 드러내준 동물들-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담비도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며 울진에서의 추억을 여기서 마무리한다.

– 6기 김효정 

울진에 와 처음 비탈진 곳을 오를 때, 대체 이런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닌 예전 야탐단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잠시 생각했었다. 나무 밑동이나 바위, 흙바닥을 잡아가며 올라가는 것도 또 내려가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았고 그래서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다쳐서 짐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 확 몰려왔었다. 그래도 가다 보니 점점 적응이 됐고 다친 곳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울진에서 보낸 8박 9일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걸 생각할 수 있었고,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게 해준 계기를 만나기도 했다. 산에서 마시는 물 한 모금이 얼마나 달았는지, 밥알 한 톨이 얼마나 아쉬울 수 있는지, 밥심이 어떤 것인지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무인카메라에 찍힌 사진과 영상에서 야생동물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산양, 바닥을 파헤치는 멧돼지, 경주하듯이 우르르 달려가는 멧돼지들, 그 뒤를 따라 달리는 아기 멧돼지들, 쏜살같이 움직이는 담비, 옆구리를 벅벅 긁는 산양 등 많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시선을 잡아 끈 건 어린 동물의 모습이었다. 옅은 밤색의 어린 멧돼지들과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어린 산양의 모습이 정말 예뻤다. 산속의 어린 생명은 빛이 나는 것처럼 반짝반짝했다.

사람들이 모르는 야생동물들의 세계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체 수는 줄어가고, 얼마 남지 않은 서식지마저 케이블카 등으로 파괴되고 있다. 인간의 영역은 충분한 것 같은데,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보금자리마저 욕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터전을 지켜주고 싶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해본다.

산양이, 멧돼지가, 삵이, 수달이 있던 자리를 똥으로 확인했다. 같은 곳을 밟았을 테니 발을 여러 번은 맞댔을 것이다. 손톱만 한 똥이 알알이 무더기로 있던 산양 똥 자리, 사람 똥이 아닐까 계속 의심했던 멧돼지 똥, 비를 맞아 풀어진, 털이 가득했던 삵의 똥, 물가 바위 위에 귀엽게도 조그맣게 두 조각만 있던 수달 똥 모두 앞으로도 잊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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