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아시아포럼] 핵 안보?…닥치고, 당신들부터 핵폐기

2012.03.25 | 탈핵

핵 안보?…닥치고, 당신들부터 핵폐기
‘핵 없는 세계’ 위한 외침…’반핵아시아포럼’ 6일간의 기록



‘서울핵안보정상회의’가 26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전 세계 50여 개국의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여 ‘핵안보’를 주의제로, 테러리스트들이 핵물질 탈취나 불법 이전, 핵시설 파괴 등 ‘핵테러’를 벌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돼 2014년까지 위험한 핵물질을 관리하는 국제체제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핵군축’과 ‘핵발전 중단’이 전제되지 않는 핵안보는 핵테러를 막는 것이 아닌 기존 핵보유 국가들의 핵패권 강화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더구나 진정한 핵안보는 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없애는 것이다.


핵 없는 아시아를 넘어 핵 없는 세계를 바라는 아시아인들이 ‘반핵아시아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모였다. 일본과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온 30여 명의 아시아인들은 19부터 24일까지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영덕,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핵 없는 세계’를 염원했다.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 가보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말하는 ‘핵안보’가 왜 거짓된 ‘수사’일 수밖에 없는지, 핵 없는 평화로운 세계란 진정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반핵 평화 운동가가 테러리스트?


반핵아시아포럼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사토 다이스케 반핵아시아포럼 사무국장이 18일 인천공항에서 관리당국의 제지로 입국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안당국이 직접적인 사유를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외국의 테러 및 불법 폭력시위 용의자 입국을 차단하기로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토 사무국장을 테러 및 불법폭력 시위 용의자로 지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안보를 논의하는 정상회의를 위한 ‘안보’를 이유로, 핵발전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호소하는 반핵 평화 운동가를 ‘테러리스트’로 지목한 것이다. 다른 참석자들도 입국과정에서 모든 짐을 꺼내 검사하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사토 사무국장은 결국 반핵아시아포럼에 참석하지 못하고 19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반핵아시아포럼 참석자들은 19일 오전 9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대항 주간 선포 및 핵없는 아시아 실현을 위한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탈핵운동가인 쿠루미자와 신 박사는 “후쿠시마에서는 1년 전 원전사고로 인해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러한 위험을 막기 위한 시민단체를 저지하려는 핵안보정상회의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규탄했다.


아시아 반핵평화운동가들은 서울에서의 기자회견을 마치고 ‘핵없는 세상을 위한 원년 미사 및 반핵평화대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강원도 삼척으로 향했다. 지난해 12월 삼척시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예정 부지로 선정되었고 이에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이하 백지화투쟁위)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삼척대책위, 찬핵 정치인 주민소환 결의



오후 3시 30분 삼척시민과 시민사회, 환경단체, 정당, 종교 관계자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삼척대학로공원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하세가와 겐이치씨는 “후쿠시마 핵 사고로 인해 바다와 농지가 오염되고, 가족 모두 피난 생활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고향’이 가슴 아픈 말이 될 줄 몰랐다”며 “사고는 후쿠시마현으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세가와 겐이치씨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45km 떨어진 후쿠시마현 이이다테무라에 살고 있었다.


이후 행사참가자들은 대학로 공원을 출발해 삼척시내 일대를 행진하며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반핵의지를 다졌다. 백지화투쟁위는 4월 총선에 찬핵 후보자 낙선 운동을 전개한 후 주민들의 반핵 의견을 무시한 채 원전 유치를 추진한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주민소환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또한 시의회 의결을 거쳐 핵발전소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토록 할 계획이다.


오후 7시 삼척 성내동 성내동 성당 교육관에서 ‘반핵아시아포럼’이 시작되었다. 하세가와 겐이치씨는 후쿠시마 핵사고로 인해 오염된 마을의 참담한 상황을 전했으며, 필리핀 ‘핵 없는 바탄’의 에밀리 벨라크루즈씨는 바탄 핵발전소가 1984년 완공되고도 1986년 대규모 저항행동을 통해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시킨 사례를 소개했다.



20일 아시아 반핵운동가들은 원전백지화기념탑과 원전백지화기념비가 세워진 삼척시 근덕면 8·29공원을 찾았다. 8·29공원은 1993년 8월 29일 핵발전소 유치에 반대하며 근덕면민이 총궐기대회를 개최한 것을 기념해 만든 공원이다. 이후 방문자들은 삼척 신규 핵발전소 예정 부지를 둘러봤다.


이붕희 백지화투쟁위 사무국장은 “삼척시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은 신규 핵발전소 예정 부지에 포함되지 않는 지역 주민들에게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속이고,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고준위 핵폐기물 처지 연구단지 조성을 추진하면서 주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한국의 삼척에서 진행되는 무모한 핵 정책을 해외에서 신랄하게 알려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의 정체는 ‘핵누리당’?



아시아 반핵활동가들은 이날 오후 2시 경북 영덕군청 앞에서 열린 ‘신규 핵발전소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쿠로다 세츠코 ‘핵발전소 없는 후쿠시마 여성모임’ 대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60km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데, 지금도 아이들은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있다”며 “방사능 수치는 이미 체르노빌 핵 사고시 피난지역 수준인데도 국가는 주민들의 피난 요구를 듣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새누리당이 비례대표 1번으로 핵발전 연구자를 선정했다”며 “새누리당이 아니라 ‘핵누리당’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유진 녹색당 비례대표 1번 후보와 영덕 지역 선거구에 출마한 박혜령 녹색당 후보도 함께 참석했다.


이병환 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 집행위원장은 “영덕 핵발전소 예정부지는 활성단층대이기 때문에 핵발전소 부지로 적합하지 않으며, 핵발전소는 해양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어장만 황폐화시킬 뿐, 지역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핵발전소 지정철회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1시간 가량 영덕 시가지 일원에서 ‘반핵 평화 행진’을 펼친 뒤, 오후 4시 영해성당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


“제염작업은 대기업 돈 벌게 하는 것”



쿠로다 세츠코씨는 “일본에서 제염(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것)작업을 하는데, 고작 지붕을 씻어내는 것이 고작이고, 제염작업자는 피폭 당하고 방사능 물질은 땅에 떨어져 아이들이 피해를 본다”며 “‘제염’이 아니라 ‘이염’(오염을 옮기는 것)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꼬집었다. 이를테면 방사능에 오염된 학교 운동장 흙을 한 구석에 옮겨 쌓아놓는 식이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핵발전소 추진 세력이 발전소를 건설해 돈을 벌더니 이제는 제염작업을 하는 토목, 건축 대기업이 돈을 벌게 됐다”며 “일본 정부는 제염이 아니라 피난을 위한 돈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판한센 대만 녹색당 대변인은 “대만에서 반핵운동이 강력한 이유는 민주화운동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진보정권이 권력투쟁에서 밀려나면서 반핵운동을 지체됐고, 이제는 더 많은 세계의 운동가들과 연대하고 배워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만 동남쪽에 위치한 란위섬 임시 핵폐기물 처리장에 관한 소식도 전해졌다. 1980년대 대만 정부가 이 섬에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저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섬이 방사능에 대량 노출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1990년부터 반핵운동이 시작됐다. 핵폐기장 회사에는 복장규정도 없어 노동자들이 보호복도 안 입고 작업을 하며 노동자 중 70%가 원주민으로 작업환경과 임금 등 차별을 겪고 있다.


“죽음의 거래, 핵발전소 수출 즉각 중단하라”



반핵아시아포럼 3일째인 21일, 아시아 반핵활동가들은 부산으로 향했다. 이날 부산 벡스코에서는 제18차 태평양 연안국 원자력회의와 부산 국제 원자력산업전이 진행 중이었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와 반핵아시아포럼 반핵활동가들은 ‘죽음의 거래, 핵발전소 수출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오전 11시 30분 벡스코 광장에서 열었다.


부산 해운대구 기장군을 지역에 출마한 구자상 녹색당 후보는 “벡스코에서 진행되는 회의는 핵 기득권을 지키려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 핵마피아들의 회의이다”라며 “부산 고리 1호기를 폐쇄하고, 신규 원전 추진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무하마드 알리 아크바씨는 “경제발전은 필요하지만, 핵발전을 통한 발전은 필요없다”며 “인도네시아 지역 사회는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는 다른 에너지원이 많아 핵발전소 정책이 철수되었다”고 전했다.


태국에서 온 싼티 차오카이참난킷씨는 “한국 정부가 핵발전소 수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소식을 들었다”며 “이웃나라 일본의 비극을 보고도 어떻게 수출을 하려는 믿기 어렵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여기에서 진행되는 회의는 핵발전 산업을 주축으로 하는 이익일 뿐 국민의 위한 행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반핵부산대책위는 고리원전 1호기 사고와 관련, 정영익 전 고리원전본부장과 문병위 전 고리제1발전소장에 대해 사고은폐 및 관리감독의 책임을 물어 20일 부산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부산시의회는 22일 고리원전 1호기를 즉각 폐쇄할 것을 촉구하면서 ‘원전안전 개선대책 조속 이행 및 고리원전 1호기 폐쇄 촉구 대정부 건의안’을 채택했다.


“후쿠시마 사람들의 희망은 세계 핵발전소를 멈추는 것”


21일 오후 2시 ‘핵사고의 교훈과 핵발전소의 문제점’을 주제로 한 반핵아시아포럼이 부산진구청 대회의장에서 진행됐다. 쿠로다 세츠코씨는 “10년 후가 아니라 지금 바로 핵발전소를 멈춰야 한다”며 “후쿠시마의 비극이 세계 핵발전소를 멈추는 큰 첫걸음이 되는 것, 그것만이 후쿠시 사람들의 희망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노 사에코씨는 “현내 학교 70% 이상은 출입이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방사선관리구역’을 초과하는 오염지역인데도 방지용 마스코조차 쓰지 않고 보통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공포스러운 상황이다”라며 “우리는 제염 전에 피난하길 원하며, 안전한 장소에서 살 권리,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를 다른 국민과 마찬가지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 와타나베 미키코씨는 “일본 원전은 70년 이후 가동된 상당히 노후된 원자로로, 노후화되면 피폭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며 “노동자들은 후쿠시마 1호기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후쿠시마 핵사고를 처리하던 노동자들은 과도한 피폭으로 사망했다”며 “피폭 노동자를 위한 기숙사는 높은 벽을 외부와 차단돼 있으며, 지난해 5월부터 피폭 노동자와 교섭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 부산에서의 일정을 마친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은 22일 오후 1시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대응 국제포럼에 참석해 자국의 핵발전 정책과 반핵운동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핵군축과 핵발전 폐쇄 없이 핵안보?



23일 오전 11시에는 핵안보정상회의 부대행사로 열리는 핵산업계 정상회의(Nuclear Industy Summit)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삼성역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경찰이 삼성역 출구를 통제하면서 마찰을 빚었고, 결국 삼성역 통로에서 기자회견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반핵운동가들은 “No Nuke Asia!”를 외치며 핵안보를 빌미로 핵발전소 수출 기회를 노리는 행위를 강력 규탄했다.


반핵아시아포럼은 이날 오후 3시 녹색교육센터에서 반핵아시아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고 인도네시아를 다음 개최국가로 확정하면서 마무리됐다.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가 집중 논의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하지만 참가국들이 보유한 핵무기를 감축하겠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또 참가국들이 핵물질 감축 선언에 동참할 것이란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핵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선언은 하지 않는다. 더구나 ‘국민’을 위한 ‘안보’일 터인데, 국민들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통제된다.


한국 정부와 경찰은 핵 없는 아시아를 바라는 반핵 평화운동가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면서 반핵아시아포럼 기간 동안 내내 미행했다. 한국은 핵발전소라는 ‘위험’을 아시아 국가에 수출하려고 시도하면서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바라는 아시아인들을 ‘범죄자’ 취급했다.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핵 없는 안전한 한국’을 위해 노력해 준 아시아인 친구들에게 한국의 국민이자 반핵활동가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권승문(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오마이뉴스에 동시게재됩니다.(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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