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녹색하기④ 그러니 와인, 사라지지 말아라.

2016.12.12 | 행사/교육/공지

“친구 삼촌이 와이너리를 하신대. 한번 같이 놀러 가보지 않을래?”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술 마실 틈과 술 마실 에너지는 있는 나에게 친구의 제안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와인은 맛도 모르고 마시는 와알못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와이너리라니. 포도향에 취해 끝없는 포도밭을 걸어다니고, 포도를 함께 수확하고, 오크통에 있는 와인을 들여다보고, 함께 포도알을 발로 밟으며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그렇게 프랑스로 갔다. 도착해보니 사실 와인 제조와 관련한 모든 일정이 끝난 후라 민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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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식은 여행하지 않는다.

파리로부터 남서쪽으로 304km떨어진 Anetz는 Loire강이 유유히 흐르는 평화로운 동네다. 때는 벌써 12월 중순, 파리의 날씨는 매서웠건만 이곳은 꽤 포근했다. 우리가 왔다는 소식은 작은 동네에 퍼졌고, 동네 사람들이 각자 먹을 것을 들고 삼촌 부부(잭과 아녜스)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동네에서 버터와 치즈를 만든다는 아저씨, 빵을 굽는 청년, 푸줏간을 하는 아가씨 등이 각자의 것들을 들고 하나 둘 저녁을 준비했다. 올리브 오일과 각종 채소 또한 동네에서 기른 것들로 유기농마트에서 구입했다고 귀띔했다.
와인2
“여기 있는 모든 음식은 이 동네에서 나고 기른 것들이야. 프랑스에서 제일 맛있는 버터, 제일 맛있는 빵, 제일 맛있는 치즈, 제일 맛있는 와인이 여기 있어.” 정확하진 않지만 잭 삼촌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과연 좋은 음식은 여행하지 않는다더니, 모두가 가져온 각자의 음식에선 풍성한 자연의 맛이 났고 먹는 행위만으로도 자연이 내 몸안으로 쑥 들어온 듯 행복해졌다.

식사가 끝나 모두가 돌아간 후 잭 삼촌은 와인 창고의 문을 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와인저장고에 가득 들어찬 저장통, 내 키의 두 배가 넘는 저장통뿐 아니라 작게 모여 있는 오크통까지. 잭 삼촌의 설명을 들으며 한 잔 한 잔 맛보았다. 술 욕심은 못 버린다고, 헹구고 버리라는 말을 가볍게 무시했던 우리들은 스무잔이 넘는 테이스팅의 중간쯤에 완전히 취해버렸다.

환경운동은 삶과 함께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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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우리는 함께 탄소발자국 없는 와인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당장은 괜찮지만 먼 미래에 이 와이너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이 아름다운 Anetz에 공항이 세워질지도 모른다는, 정치인들은 당장의 이익만 보기 위해 공항을 추진하고 있고 몇몇 멋모르는 주민들은 공항으로 이 동네가 부자가 될 수도 있다며 찬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인은 처음만나본다며 한국에도 녹색당이 있는지 궁금해 했다. 자연에 기대어 살 때만이 진짜 삶이고 평생 이곳을 지키면서 살 거라고 강하게 말하는 잭 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나라가 생각났다. 할매들의 논밭을 빼앗은 송전탑과 산양의 집을 빼앗은 케이블카와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송두리째 앗아간 핵발전소가 떠올랐다.

기후변화가 와인에 미치는 영향.
딱 일주일 머물렀을 뿐인데 (와인을 얼마나 많이 마셨으면!) 자연스레 와인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보르도 샴페인 등 프랑스 최고급 와인, 기후변화로 위기”
“제11회 국제 떼루아 의회, 기후 변화가 와인과 떼루아에 미치는 영향 및 대책 논의”
“세계적으로 포도 생산지 온도 0.8도씨 상승”
“칠레 와인 생산량 무려 25% 감소 예상, 엘니뇨로 인한 폭우 때문”
“스페인의 셰리 와인 생산 걱정, 올해 최악의 봄 날씨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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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와 하버드대학이 공동연구를 진행한 결과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가뭄과 포도 수확시기의 연관관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포도는 이른 시기에 풍부한 강수량과 일조량이 필요하고, 수확시기에는 적당한 가뭄이 필요하다. 이 같은 연결고리가 기후변화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연구의 결과이다. 기후변화는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번 여름 전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던 최악의 폭염, 내렸다 하면 한 곳에만 퍼붓는 국지성 호우 등 굳이 인터넷을 뒤적거리지 않아도 어제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 모두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로 인해 와인까지 사라진다면?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 마음이 급해진다.
그러니 와인, 사라지지 말아라.

글 신지선 에너지기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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