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는 열리게 되어 있다.

영화를 허구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일 수는 없다. 이는 현실보다 더 정확하게 현실을 묘사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현실보다 더 심각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상관없다. 적어도 영화 판도라가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참혹함과 파장을 과장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니까.

오히려 핵발전을 통해서, 핵발전소 가동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이익을 취하는 집단에 대한 묘사가 부족할 지경이다. 영화에서 본 바와 같이 수명을 다한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지 않고 단기간에 안전성 검사를 졸속으로 완료해버리는 것, 우리와 다르지 않다. 폭발위험을 앞두고도 발전소의 용도폐기가 두려워 가까운 곳의 바닷물조차 끌어 쓰지 않으려는 행동 유형은 곳곳에 있다. 각종 악역을 도맡아서 대통령을 겁박하고, 정보를 차단하며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총리와 그 이하들의 태도도 익숙하다. 영화 속 최고결정권자의 우유부단하거나 무기력한 모습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스스로 직접 나서서 특정 기업이나 재벌들의 이익을 함께 도모하고 나누는 것이 우리가 아는 현실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개 현장소장의 보고서 문건이 비선!을 타고 대통령의 책상 앞에 도착하고, 그것을 읽어보는 일이란?

판도라의 상자는 인간에게 몰래 불을 건네준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의 아내 판도라가 부주의하게도 열어서는 안 되는, 온갖 나쁜 것들이 담겨있는 봉인된 상자를 말한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상상력과 시대에 따라 변곡을 긋고 해석 또한 다양하다. 넘쳐나는 해석 중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희망이란 놈의 정체에 대한 질문이었다. 판도라가 금단의 상자를 열자마자 그 안에 있던 질병과 죽음, 질투와 증오, 재앙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게 된다. 허둥대며 급히 상자를 닫았을 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희망’뿐이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희망이 고통스런 것들과 함께 상자속에 담여 있는 이유는 뭘까? 결국 희망이란 녀석은 고통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게 만드는, 실제로는 오지도 있지도 않을 희망을 기대하며 절망을 감내하게 만드는, 끝없는 고문을 주는 고통의 최고지존이 아닌가라는 해석이었다. 그렇다면 판도라의 상자에는 나쁜 것만이 담겨있었다는 말이 옳다. 영화의 제목이 판도라인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아주 적절한 제목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만든 최악의 물질과 발명으로 꼽히는 것들은 참으로 많다. 꼽히는 것들은 편리란 측면 혹은 과학기술의 발전이란 측면에서만 보면 획을 긋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중 잣대로 볼 것은 아니다. 하나의 기술을 기술로 등극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작동하는 사회적 맥락과 이해 및 역학관계라는 것이 있으니까. 플라스틱도 그러한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유전자조작기술도 이에 해당한다. 그 중 핵이란 것의 위험성은 폭발적이면서도 점진적이며, 유전성을 모두 갖고 있다.

값싸고 편리한 전기를 공급한다고 누누이 강조되어 온 핵발전에 의한 전력. 우리는 그것이 희망인 줄 알았던 것일까? 그것은 사용하면 할수록, 철저히 봉인시켜 수만 년간 묻어두어야 할 핵폐기물을 생성하는데? 이 핵폐기물은 끝끝내 지구의 모든 생명들과 미래세대를 위험과 두려움에 빠뜨린다. 사용 후 핵연료뿐만 아니라 각종 부산물, 그리고 수명을 다해 가동을 멈춘 발전소까지 그 자체가 접근해서는 안 되는 거대한 핵폐기물이다. 사용 중에도 지진이나 외부의 테러, 고장으로 인한 사고의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사고뿐만 아니라 가동 중 유출되어 나오는 방사성물질로 인해 주변 지역 주민들은 높은 암 발생률로부터 주변지역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사후처리비용을 고려하면 핵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이 저렴하기는커녕, 산정이 불가능할 만큼 막대하며, 감당하기 어려우며, 부당하게도 미래세대에게 전가되게 되어 있다. 판도라에 남아있는 희망이란 녀석은 그런 의미에서 고통이다.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핵발전소 – 판도라의 상자는 열고자 해서 열린 것이 아니다. 많은 이야기가 그렇듯이 요망하거나 참을성 없고, 호기심 많은 여성의 부주의한 행동 때문에 열려진 상자가 아니다. 판도라의 이야기 설정 자체가 문을 열도록 되어 있듯이, 핵발전소 그 자체가 열릴 수밖에 없는, 사고와 불가역적인 피해를 내포한 시설이며 발전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를 인접한 곳에서 목격하고도 발전소 수명을 연장하고,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핵발전소의 불은 무책임한 그들이 켰다. 그러나 핵발전소의 불을 끄는 것은 그들이 아니다. 핵발전소를 통해 이익을 나눠 갖는 그들, 판도라에 희망이란 것이 담겨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그들에게 희망이란 그들만의 이익(돈)이며, 그래서 그들은 핵발전소를 영원히 가동하려 할 것이다. 그렇기에 핵발전소의 불을 끄는 것은 우리들이어야 한다. 핵발전으로부터 아무것도 취할 수 없는, 취할 것이라고는 불안과 위험뿐인 우리들이 핵발전의 전원을 꺼야 한다.

– 녹색사회연구소 임성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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