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비닐을 먹었어요.

“엄마! 또 비닐 써? 유리 반찬통 있잖아. 그 썩지도 않는 비닐 좀 그만 쓰면 안 돼?”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는 일에 관심이 많은 저는 엄마와 자주 다툽니다. ‘촤르륵, 뜨드득’ 주방에서 비닐(일명 마트 봉다리) 뜯는 소리가 나면 참지 못하고 방문을 열고 뛰어나갑니다. 딸내미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엄마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게 더 편한 걸 어떡해.”

일부러 불편하게 사는 딸과 편한 게 좋은 엄마의 대결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전략은 있습니다. 요모조모 논리를 써가며 설득하기도 하고, 사진을 보여 가며 호소하기도 합니다. 가장 가까운 엄마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어찌 많은 시민들을 설득하랴! 언젠가 의지를 불태우며 엄마로부터 ‘비닐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지만 효과는 며칠 지속되지 않습니다. 결국 ‘편리함’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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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살 때도, 시장에서 떡볶이 살 때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새 옷을 살 때도, 냉동실에 음식물을 소분해서 얼릴 때도, 비 오는 날 백화점 입구에서도 이 편리한 발명품의 쓰임은 끝이 없습니다. 의식적으로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쓰이고 버려지는 비닐이 많습니다.

매일 챙겨 먹는 두유 패키지도 비닐이고요, 과자 봉지도 비닐입니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전철역 앞에서 싸게 산 우산도 비닐이네요. 한국인 한 명이 연간 370장의 비닐을 사용합니다.* 이는 독일인 1인 사용량인 70장에 비해 5배나 많은 사용량입니다. 한 사람이 하루 한 장, 4인 가족이라면 1년에 약 1,500장의 비닐을 쓰는 셈입니다.

편한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용 이후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비닐은 썩는 데 500년이 걸린다지요. 재활용도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재활용, 즉 분리수거 된 비닐을 모아 새로 가공을 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졌기 때문입니다.

몇몇 재활용 업체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비닐 재활용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땅에 묻자니 썩지 않고, 재활용이 안 돼 소각하자니 유해물질이 나오고 난감한 상황입니다. 개인의 의식과 실천도 중요하지만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해결이 함께 필요한 지점입니다. 엄마에게 비닐을 쓰지 말라고 무조건 닦달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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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노르웨이 해안가에 고래 한 마리가 떠밀려왔습니다. 고래는 고통스러워하다 생을 마감했는데, 배 속에서 수십 장의 비닐이 나왔다고 합니다. 기사에 첨부된 사진 속 바닥에는 색색의 비닐들이 전시물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비닐이 고래 배 속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소화되지 않는 내내 고래를 얼마나 괴롭게 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비닐을 삼키고 죽은 고래는 지구가 처한 슬픈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버린 비닐을 고래가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 고래에게는 아무 쓸모도 없던 비닐들이 고래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현실, 쓰임이 다해 버려진 비닐이 썩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지구 어딘가에 남아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 말입니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비닐을 비롯한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바다로 흘러들어 가 여러 작용들로 인해 잘게 부서지고, 갑각류나 물고기 배 속으로 들어갑니다. 썩지 않는 발명품들의 조각들이 우리 밥상 위에 올라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비닐은 어떤 과정으로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갔을까요. 궁금해졌습니다. 열심히 분리수거 하는 이 재활용 쓰레기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될까요. 소각? 매립? 아니면 바다에 몰래 버려질까요? 재활용되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했을까요? 이런 궁금증들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정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녹색연합이 한 번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생활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쓰레기를 비롯해 의약 폐기물, 전자 폐기물 등도 수거 후 어떤 과정을 거쳐 어디로 가는 건지. 또 어떤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지, 그분들은 어떻게 느끼고 계시는지. 쓰레기들의 여행에 동행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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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ney

빌딩 높이로 쌓여 있는 쓰레기들이 지구를 뒤덮고 있는 가운데 그사이를 작은 청소 로봇이 돌아다닙니다. 영화 <월-e>의 한 장면입니다. 쓰레기로 가득한 지구에서 사람들은 더는 살 수 없어 우주로 떠났습니다. 그 장면이 머지않은 우리의 미래라는 진부한 얘길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쓰레기가 종량제 봉투에 담겨 집 밖으로 버려진다고 해서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가끔 잊어버립니다. 쓰레기차를 타고 도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땅에 묻히고, 태워지고, 다시 태어나는 쓰레기의 생애에 관심이 필요합니다. 어떤 날 죽은 고래를 기억하며, 지구와 나를 위해 함께 하실 거죠?

<비닐 사용 줄이기 TIP>
① 시장에서, 마트에서, 편의점에서 비닐봉지 거부하기! 미리 에코백을 챙기면 좋겠지요?
② 김밥, 떡볶이 등 음식 테이크아웃 할 때 미리 반찬통 챙겨가기! 환경호르몬도 없어 내 몸에도 좋아요.
③ 비 오는 날에는 우산집 가지고 다니기! 건물 곳곳에 있는 비닐 우산커버는 지구를 위해 가뿐히 지나쳐주세요.

글: 평화생태팀 배선영
*출처: 자원순환연대
*관련기사 “노르웨이 어느 해안에 쓸려온 고래의 뱃속은 끔찍했다”, 허핑턴포스트, 2017. 2 .5
1 Comment
  • JeongA Lee

    2017년 4월 22일 at 11:39 오후 응답

    I wanna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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